축구이야기

[FIFA 은밀한세계 1] FIFA…이상한 돈 80만달러의 주인은 ?

도일 남건욱 2006. 6. 28. 19:36

FIFA…이상한 돈 80만달러의 주인은?
◆파울! FIFA의 은밀한 세계(1)◆

"이건 사기다 ."

지난 17일 한국과 스위스 월드컵축구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주심이 일방적으로 스위스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자 MBC 해설자로 나선 차두리 선수가 외친 말이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이 말에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사실 경기 시작 전부터 심판들이 스위스 편을 들 것이란 염려가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스위스 출신이기 때문이다.

최근 FIFA와 블래터 회장에 대한 비리 의혹을 파헤친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파울! FIFA의 비밀세계: 뇌물과 투표 부정, 티켓 스캔들'이 바로 그것. 매일경제는 영국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앤드루 제닝스가 쓴 이 책을 긴급 입수해 저자의 허가를 얻어 책 내용을 요약ㆍ소개한다.

1998년 어느날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 본사. FIFA 재무책임자인 어윈 슈미트는 FIFA 채권은행인 유니온 스위스은행으로부터 온 봉투를 집어든다.

봉투를 열고 입금내역서를 확인한 후 얼굴이 창백해진다.

슈미트는 황급히 건물 바로 2층 위에 자리한 블래터 FIFA 사무총장을 찾아간다.

블래터는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17년간 FIFA를 이끌어왔다.


당시 블래터는 2002 한ㆍ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시청권과 저작권 등 판매를 직접 담당해왔다.

각국에서 방영할 수 있는 권리, 각종 음료와 면도기 등에 월드컵 로고를 붙일 수 있는 권리 등이다.

이 같은 이권의 대부분을 그는 FIFA를 스폰서하는 '비밀기업(secretive company)'인 국제스포츠레저(ISL)를 통해 지인들에게 나눠줘왔다.

액수로는 약 23억달러에 달하는 거액 비즈니스 사업권이다.

이로 인해 당시 FIFA와 ISL간 비리와 뇌물에 대한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FIFA의 충신들은 이 같은 소문을 믿지 않았다.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 서류는 다르다.

어딘가 분명 잘못이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경위는 이러했다.

ISL은 100만 스위스프랑(약 80만달러)을 FIFA 계좌에 입금했다.

문제는 입금자였다.

입금자는 누구나 알 만한 축구업계의 고위 관계자로 이 돈은 무언가에 대한 '성의' 표시처럼 보였다.

이 서류를 본 후 블래터 사무총장은 "큰 문제군"이라고 혼자 말했다.

그는 돈을 입금자에게 돌려주라고 슈미트에게 말했다.

그리곤 그것으로 끝이었다.

블래터는 이 돈을 국세청에 신고하지도, FIFA 재무위원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거래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블래터는 하지 않았다.

이 의혹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블래터가 FIFA 회장이 된 이후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고 있다.

1978년 6월 25일 아르헨티나월드컵 결승전. 주최국 아르헨티나는 네덜란드를 3대1로 대파하고 안방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안았다.

당시는 아르헨티나에서 군부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였다.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정권은 자신의 통치를 공고히 할 목적으로 월드컵을 이용했다.

마치 1936년 아돌프 히틀러가 올림픽을 이용한 것처럼. 군부정권은 월드컵 승리를 위해 페루 등 상대팀을 매수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스포츠를 통한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다.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개최는 이들 군부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주앙 아벨란제 당시 FIFA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2년 전인 1976년 아르헨티나에 군부 독재가 들어서자 세계 많은 인권단체들은 월드컵 개최지를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아벨란제는 이를 묵살하고 대회를 강행했다.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아벨란제에게로 거액의 로비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브라질 출신의 아벨란제는 1974년 FIFA 회장이 됐다.

이후 90년까지 5회 연속 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1994년 선거에도 나가 6번째 회장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벨란제는 1994년 큰 정치적 위기를 맞는다.

월드컵 조 추첨 행사에 펠레를 초청하지 않은 탓이다.

아벨란제가 펠레를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사위가 회장으로 있는 브라질축구협회(CBF)를 펠레가 공공연히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펠레가 명단에서 빠지자 브라질 언론들은 아벨란제의 어두운 과거를 들쑤시며 그의 자리를 위협했다.

상황이 아벨란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당시 사무총장이던 블래터는 유럽 축구 고위층을 만나 회장 후보로 출마할테니 지지해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한다.

사무총장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아벨란제는 블래터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본선 진출팀을 8개 늘려 32개팀이 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카리브해 국가들의 염원을 아벨란제가 들어준 것이다.

분위기는 반전됐다.

블래터는 자신의 보스 자리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아벨란제는 사위인 리카르도 테세이라를 심판협회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프랑스월드컵 조직위원회에 집어넣었다.

또 블래터의 수족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블래터는 사무총장에서 잘릴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정리 = 오화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