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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맹목적 반대투쟁에 국론분열 심각

도일 남건욱 2006. 7. 25. 06:04
맹목적 반대투쟁에 국론분열 심각
[FTA 내전] 대한민국은 지금 몇 시인가
방송사선 연일 FTA 반대 방송…찬성하면 친미주의자로 찍혀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한·미 FTA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 고구려 사극이 화제다. 하지만 고구려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고구려 패망의 가장 큰 원인은 연개소문의 세 아들이 힘을 합치지 못하고 내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고구려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당나라에 이보다 좋은 일이 있었을까.

한·미 FTA 협상을 놓고 의견 대립이 심각하다. 미국이라는 강적을 눈앞에 두고 내전을 벌인다는 말도 있다. 7월 10일부터 14일간 서울에서는 한·미 FTA 2차 본협상이 열렸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외신들이 전한 가장 큰 화제는 협상 내용 발표가 아니라 같은 기간 내내 벌어진 반대시위 소식이었다.

200mm의 폭우가 내린 12일 서울 도심에서는 수만 명이 FTA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온 시위대는 폭우 속에서도 밤 늦게까지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는 미국대사관에 계란과 돌을 던지며 ‘한·미 FTA가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외쳤다. 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앞에서도 매일 1인 시위가 벌어졌다.

1인 시위를 벌인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대표는 “현 정부는 그동안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하며 발생한 시행착오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은 채 한·미 FTA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FTA는 아주 위험한 도박이라며 한·미 FTA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발하는 보수단체들은 보란 듯이 이들 옆에서 한·미 FTA를 찬성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하지만 서로 토론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서로를 미 제국주의의 신봉자와 빨갱이라며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찬성하면 보수, 반대하면 진보라는 선도 확실하게 그어졌다. 경찰은 두 시위대 사이의 간격을 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계선이 없어지면 심각한 충돌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협상 대표단 관계자는 ‘착잡하다’고 표현했다. 미국과 치열한 협상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연일 FTA 반대시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촉매제 역할까지 하고 있다.
대표단 내부에서는 자조 섞인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 반대가 이 정도라면 몇 년 후에는 모두 검찰을 만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한·미 FTA 2차 본협상 마지막 날인 14일 한·미 양측은 모든 협상 일정을 취소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 시행에 불만을 표시하고 무역구제와 서비스분과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우리 측도 마지막 날 예정된 상품무역과 환경분과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 2차 본협상 마지막 날 전체 일정이 무산된 것이다. 너무나 먼 의견 차이를 넘기 힘들다는 것을 양국 대표단이 확인하며 한·미 FTA 협상 체결도 점점 멀어져 보이고 있다. 진보단체들은 그나마 다행이란 반응을 보인 반면, 보수단체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왜 일정이 취소됐는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미국과 협상 결렬될 수도

한·미 FTA라는 중대사를 놓고 왜 이런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국민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다. 조인스닷컴과 미디어다음, R&R이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6월 6일 조사에서는 찬성 36.8% 반대 35.1%로 팽팽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반대는 38.2%로 높아졌고 찬성은 29.5%로 낮아졌다. 찬성과 반대는 이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되어가고 있다. 진보단체면 반대, 보수단체면 자신들의 이익에 관계없이 찬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진보적인 성향의 소비자 단체는 반대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소비자 단체는 찬성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TA 2차 협상 마지막 날인 14일 미국 측 협상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은 심각한 국론 분열로 치닫고 있다. 아무런 논리나 토론도 없이 이념 논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일부 방송은 한·미 FTA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MBC의 경우 FTA 2차 협상이 시작된 이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총동원해 이와 관련한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가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는 듯 했지만 누가 들어도 FTA를 반대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MBC의 한 기자는 “FTA는 국익에 손상을 주기 때문에 대국적 차원에서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노무현 정권과는 무관한 역사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방송에서 연일 FTA 반대 목소리를 냄으로써 국민에게 개방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 대통령은 FTA로 인한 혼란이 심해지자 이를 설명하고 나섰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제도를 합리화·투명화해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형상시키고, 개방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강화하며 제도를 선진화시키기 위해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FTA 반대 여론을 직접 겨냥해 “반대하는 분들도 소신과 양심을 갖고 있겠지만, 대통령도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며 “‘한·미 FTA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은 도외시한 채 손실 부분만 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협상이 계속 진행돼 구체안이 나오면 정부도 확실한 대안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 나가겠다”면서 “정부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는 쉬우나 지금은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모든 영역에서 자기 책무를 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운용해 주길 바란다”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왜 FTA에 반대하나

FTA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협상 최고수인 미국을 상대로 너무나 준비 없이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 경제력에서 월등히 앞서 있는 미국에 개방함으로써 멕시코의 사례처럼 국가경제가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의료·교육·우체국 등 국내 공공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FTA에 대해 활발한 반대를 벌이고 있는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과연 FTA를 맺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예측에 대해서도 일본과의 FTA 경우는 한 100권의 연구가 있었는데 현재 미국과의 FTA의 준비 상태는 공식적인 연구가 3권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서 무리하게 FTA를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진동수 재정경제부 차관은 “수출이 늘어나면 노조에 직접적인 이익이 가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한·미 FTA의 대표적인 반대론자로 떠오른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서 접했던 정보는 일부일 뿐인데 그것만 가지고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멕시코 경제, NAFTA로 무너졌나

멕시코에 대한 논쟁도 치열하다. 정부는 NAFTA의 멕시코를 성공 사례로 보고 있지만 시민단체들과 일부 언론은 “NAFTA가 멕시코에 재앙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MBC PD수첩과 청와대 간의 설전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4일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한·미 FTA’란 제목의 PD수첩이 방송됐다. 주요 내용은 멕시코가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이후 실직자와 도시 빈민이 급증하고, 서민들의 생활고는 가중됐으며, 소비자 물가는 오히려 크게 뛰는 등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염물질을 방출해 지역 주민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한 미국 기업의 공장을 멕시코 정부가 폐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례도 보여줬다. PD수첩 관계자는 멕시코에서 현지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이를 감시하던 외교통상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백만 대통령 홍보수석은 13일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올려 “지난 7월 4일 방영된 PD수첩은 전형적인 편파 왜곡보도”라고 비판했다.

이 수석은 PD수첩이 “‘멕시코판 IMF사태’인 페소화 위기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에 따르면 NAFTA가 발효된 지 1년 만인 1995년 국가적으로 ‘큰 재앙’인 외환위기에 휩쓸리면서 멕시코 경제가 주저앉았다. 이러한 페소화 위기로 GDP가 6.2%나 감소했으며, 중소기업의 대량 부도, 대량 실업, 양극화 심화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

이 수석은 “ PD수첩은 1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에서 페소화 위기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며 “멕시코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데에는 NAFTA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나 페소화 위기로 인한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PD는 13일 저녁 “페소화 위기는 NAFTA 체결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방적 추진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NAFTA 체결 이후 농민 200만 명이 농촌을 떠났고,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한 개방정책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공공서비스가 후퇴했다. 이게 과연 페소화 위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멕시코 국립대 경제과 교수를 지냈던 김종섭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멕시코의 경제적 상황은 NAFTA를 했어도 어려웠고 안 했어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페소화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 조금씩 회복 단계를 거쳐왔지만 중국산 제품들이 멕시코 제조업계에 치명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냉정히 바라본다면 그나마 NAFTA를 체결했기 때문에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의료·교육·우체국 등 국내 공공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얼마 전 김종훈 수석대표는 “교육·의료 등 사회 공공제도는 통상 의제가 될 수 없고, FTA 협상 테이블에도 오를 수 없다”고 했다. 교육·의료 등 공공서비스가 한·미 FTA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은 반대론자들의 기우고 오해라는 것이다.

[한·미 FTA 일정]

2006년 2월 3일 : 협상 공식 선언
2006년 5월 19일: 협상 초안 교환
1차 본협상 : 2006년 6월 5~9일 미국 워싱턴
2차 본협상 : 2006년 7월 10~14일 한국 서울
3차 본협상 : 2006년 9월 4~15일 미국 워싱턴
4차 본협상 : 2006년 10월 한국 서울
5차 본협상 : 2006년 12월 미국 워싱턴
2007년 추가 협상은 추후에 일정을 잡음
2007년 3월 협상 타결
2007년 4~6월 : 미 의회 사후 검토
2007년 6월 30일까지 협상 서명 및 발효
하지만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지적재산권의 핵심적인 사항은 의약품 특허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특허기간을 연장해 값싼 복제 의약품 생산을 막으려 하고 있고 의약품 가격을 미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의약품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약값은 미국 약값의 33%, 선진국 약값의 48%다.

FTA 체결은 약값 상승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건강보험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값으로 나가는 돈은 8조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30%다. 이 돈이 증가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무리가 온다는 말이다.

NAFTA에서도 교육과 의료제도는 예외라고 했다. 하지만 NAFTA 실시 이후 캐나다의 의료와 교육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공공 의료보험 도입 계획이 취소됐다. FTA 아래서 민간 보험사의 영업이익을 침해하게 되면 정부가 손해를 배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넘어서면 더 이상의 FTA는 없다고 봅니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분야이고 5차에 걸친 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양보 없이 이해시켜 나갈 것입니다.”

수많은 논란이 오가는 가운데 3차 협상은 9월 4일 미국에서 시작된다. 당분간 국내의 의견 차이가 좁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집안 싸움 심한 집이 잘 풀리는 일은 없다. 한·미 FTA가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