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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정치투쟁에 설 땅 잃은 협상

도일 남건욱 2006. 7. 25. 06:05
정치투쟁에 설 땅 잃은 협상



7월 12일 퇴근길이 막힌 것은 비단 폭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거칠게 벌어진 FTA 반대 시위는 시민들의 빗속 퇴근길을 막았다. 이날 도심 저녁 풍경은 서울발로 외국 TV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방송됐다. 일제히 충돌(CRASH) 자막이 붙었다. 2006년 7월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전(內戰)을 방불케 하는 충돌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 중심에는 FTA가 있다. 사실 어지간한 식자층도 FTA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워낙 방대하고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이 우리 경제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단언하기도 어렵다.

하물며 일반 시민들이야…. 실상이 이런데도 각종 정치구호식 깃발을 내건 도심 시위대는 전국을 마구 휩쓸고 있다. 이성적 토론과 협상은 사라지고 격한 정치투쟁만 난무하는 모습이다. 통상 협상의 기술상 90%가 내부용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이것도 안 보인다. 한국 경제는 이미 문을 닫고는 못 산다. 바깥시장과의 무역이 70%를 넘는다.

은행 자본의 80%는 외국 돈이다. 실물이든 금융이든 국제시장에서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한시도 지탱하기 힘들다. 서푼짜리 자존심만 내세운 채 국제시장과 담을 쌓고 독불장군식으로 살아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개방 체질을 강화해야만 주저앉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줄 것은 주고, 얻을 것은 얻는 현실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제때 개방하지 못하고 뒤늦게 외국의 힘에 밀려 억지로 빗장을 열면 결과는 뻔하다.

일찌감치 개방 체질을 익힌 일본은 우리보다 앞섰고 ‘실리형 개방’을 취한 중국은 경제대국이 됐다.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 함대가 강화도에서 문을 열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 고종은 청나라에 ‘SOS’를 쳤다. 일본이 문 열라고 야단이니 “어찌하오리까” 한 것이다. 그때 구체적인 협상 내용도 청에서 만들어주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얘기다. 130년 뒤.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중차대한 길목에서 주변의 반대 목소리를 물리치고 FTA를 결단한 대통령은 어디에 있고, 책임을 맡고 있는 관료들은 무엇을 하는가.

대통령은 실무전담팀에 일을 맡으라고 엄명을 내렸을 ?자주 동원하던 대국민 TV토론 같은 것도 아예 없다. 각료들은 팔짱만 낀 채 구경꾼 노릇만 하는 듯하다. 그저 실무협상 대표단만 고군분투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의 반대 목소리를 유리한 대미 협상 카드로 활용할 생각은 애당초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다.

협상 전에는 더러 전문가들의 득실 따지기의 찬반 소리도 있는 듯했지만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그런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정치구호만 한국 거리를 뒤덮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 시민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지상파 TV들은 아예 입장을 정리한 듯 FTA 반대 프로그램 일색이다. 일본이 농산물 협상을 할 때 농민들이 반대하고, 나카소네 당시 총리가 웃으며 미국산 오렌지를 집어드는 장면은 우리에겐 왜 없는지-. 도심 시위대 모습과 거친 반대 목소리만 들리는 지금의 한·미 FTA 협상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