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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추락하는 ₩ 치솟는 ¥, 뭐가 문제인가

도일 남건욱 2006. 10. 26. 08:51
[커버스토리] 추락하는 ₩ 치솟는 ¥, 뭐가 문제인가
 
 
자동차 등 수출 경쟁력 급감… 일본 기업들에 시장점유율 잠식

원·엔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10월 11일에는 100엔당 원화 환율이 마침내 799.92원까지 떨어졌다. 다음날 다시 회복하기는 했지만 800원선이 무너진 것은 1997년 11월 18일 이후 거의 9년 만이다. 11월 16일에는 다시 796.98원까지 떨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궁금증
원·엔 환율, 왜 떨어지나

ⓒ로이터/연합
원·엔 환율은 2000년대 이후 1천원 수준에서 안정적인 등락을 거듭해 오다가 지난해 1월을 기점으로 급격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800원선이 무너진 것은 그런 추세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상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원·엔 환율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원화를 엔화로 교환하는 비율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작년 1월에는 1천원을 100엔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이제는 800원을 100엔으로 바꿀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원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궁금한 것은 원화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왜 높아졌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떨어지고 원화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외화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는 의미다. 거꾸로 말하면 원화로 바꾸려는 외화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수출이 잘 돼서 외화를 마구 벌어들이거나 외국 자본의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원·엔 환율의 움직임은 조금 다르다.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펀더멘털이 더 나쁘다. 경상수지도 일본은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적자로 돌아섰다. 경기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도 우리나라는 7개월 연속 떨어지고 있지만 일본은 5월을 고점으로 2개월 연속 떨어졌다가 8월 들어 소폭 반등에 성공했다.
그런데 원·엔 환율은 왜 떨어지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단순히 원화와 엔화의 수요·공급뿐만 아니라 달러화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월 1,050원에서 최근 950원 언저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엔·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동안 100엔에서 120엔 언저리까지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동안 달러화를 기준으로 원화의 가치는 오르고 엔화의 가치는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원화와 엔화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고 ‘디커플링’이라고 한다. 탈동조화라는 의미다. 특히 원화 강세보다 엔화 약세가 더 두드러진다. 도대체 이들 세 나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 것은 미국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경상적자와 무역적자를 충당하려고 국채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로 혼쭐이 났던 우리나라는 이 미국 국채를 사들여 천문학적인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쌓아두고 있다. 미국 정부가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서 뿌리고 그 달러화를 우리나라 정부가 사들여 왔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달러화의 공급이 넘쳐나면 당연히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원화의 가치가 올라가고 환율이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수출기업들 경쟁력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늘려가면서 환율을 방어해왔지만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에 맞서기에는 힘이 달렸다.
그렇다면 엔화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엔화의 가치는 왜 오히려 떨어진 것일까. 펀더멘털도 우리나라보다 더 좋고 게다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외환보유액을 쌓아두고 있지 않은가.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를 누르는 엔화 약세의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는 무엇일까.
ⓒ로이터/연합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적되는 건 일본의 파격적으로 낮은 금리다. 일본 정부는 올해 7월, 5년 4개월 만에 제로금리 정책을 해제하고 기준금리를 0.25%로 올렸다. 제로금리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5.25%인 것과 비교된다. 상대적으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도 주목된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다가 다른 통화로 바꿔 쓰는 걸 말하는데 일본의 낮은 금리를 활용한 엔 캐리 트레이드가 특히 인기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나면 엔화 공급이 늘어나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경기 회복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는 것. 따라서 일본 정부가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엔화 탈출에 부채질을 하는 요인이다. 오죽하면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요즘은 상대적으로 이자가 높은 해외 채권에 투자하는 게 유행일 정도다.

두 번째 궁금증
원·엔 환율,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원·엔 환율 하락은 수출 기업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된다. 당장 우리나라 제품의 일본 수출 단가가 올라가게 된다. 이를테면 같은 제품을 지난해에는 1만엔에 팔았는데 이제는 1만2천엔에 팔아야 한다. 또한 일본 제품의 해외 수출 단가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과 경쟁에서도 불리해지게 된다.
무역연구소 신승관 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10% 떨어지면 수출이 앞으로 4년 동안 해마다 107억7천만달러씩 줄어든다.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이 3.8%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쟁 관계에 있는 수출 품목이 많고 이 품목들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상위 50대 수출 품목을 기준으로 이 비중은 2000년 28.8%에서 지난해에는 50.6%까지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수출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더 낮은 가격으로 일본 제품과 경쟁해 왔지만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서 이런 가격 메리트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팔리지 않거나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로이터/연합
올해 들어 8월까지 대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1.2% 늘어났는데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제품 수출이나 한일 합작법인의 내부 거래 같은 특수 요인을 빼면 2.5%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체 수출의 22.1%를 차지하는 석유제품과 평판 디스플레이 품목이 21.0% 늘어났을 뿐 나머지 품목들은 오히려 2.1% 줄어들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43억달러. 전체 무역흑자 총액 231억달러를 넘어서는 규모다. 전체 수출에서 대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도 원·엔 환율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수출이 줄어드는 것과 달리 대일 수입이 전체 수입의 20%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미국 수출도 영향을 받는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우리나라 제품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2000년 3.3%에서 지난해에는 2.6%까지 줄어들었다. 환율 하락 폭이 컸던 올해 들어 7월까지만 놓고 보면 2.5%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걸 알 수 있다. 1982년 2.4% 이후 24년만의 최저 수준이다.
한편,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가격인하에 나서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올해 들어 수출단가를 2~5%까지 내린 덕분에 수출이 15% 이상 늘어났다. 반면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은 채산성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수출 가격을 2% 가까이 올렸고 그 결과 수출 물량은 2% 늘어나는데 그쳤다.
반도체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수출 단가를 10~20%까지 낮췄고 덕분에 수출이 30~40%까지 늘어났다.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들도 수출 단가를 5~10% 정도 올렸지만 수출은 10~20% 늘어나는데 그쳤다. 가격경쟁력을 잃으면서 시장 점유율을 뺏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가전제품의 경우는 그 격차가 더 크다. 일본의 가전제품 회사들은 올해 8월 수출 단가를 4~5% 낮춰서 수출을 43%나 늘렸다. 반면 우리나라 회사들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10대 수출 품목의 대일 수출 실적을 원화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2004년 7조원에서 지난해에는 5조7천억원으로 18.5%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소형차 ‘야리스’의 미국 판매 가격을 현대 베르나보다 1,200달러 가량 싸게 책정한데 이어 인도에서는 대당 600만원 가량의 최저가 차량 판매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샤프전자도 삼성 · LG전자 제품보다 가격이 30% 저렴한 LCD TV를 미국에서 출시했고 일본 철강업체들은 동남아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벌이고 있다.
무역연구소 신승관 연구원은 "올해 9월까지 수출이 견조세를 지속하고 있는 건 세계 경기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연구원은 "그러나 경기선행지수가 최근 둔화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 4분기를 기점으로 수출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원·엔 환율 하락으로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세 번째 궁금증
원·엔 환율, 앞으로 어떻게 되나

최근 엔화 약세에 외환시장의 투기적 움직임이 개입했다는 분석도 있다. 엔·달러 환율 매도 포지션이 1990년대 이후 최대 규모로 늘어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물론 매도 포지션이 무한정 늘어날 수는 없는 일이고 이 포지션이 일부 청산되는 과정에서 엔화 약세가 다소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원·엔 환율이 한동안 지금 추세를 이어가겠지만 지금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메리츠증권 고유선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서 원·엔 환율이 775원까지 떨어질 수도 있지만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 여건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 연구원은 엔화 약세가 마무리되는 시점을 글로벌 경기 둔화가 마무리되는 신호가 나타나는 시점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될 가능성을 보이고 일본 경제의 회복과 금리 인상 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한동안 금리 인상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상대적으로 일본 경제에는 우호적이다.
국제유가 하락이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제유가 하락은 우리나라나 일본에 모두 긍정적이지만 GDP(국내총생산) 대비 원유 수입의 비중이 우리나라는 5.8%인 반면 일본은 2.5% 밖에 안 된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더 큰 혜택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 규모는 연간 8억4천만 배럴, 배럴당 유가가 20달러 떨어질 경우 우리나라는 168억달러의 외화를 줄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수입 규모가 19억6천만 배럴, 392억달러의 외화를 줄일 수 있다. 절대금액은 일본이 더 크지만 GDP 대비로는 2.1%와 0.8%로 우리나라가 훨씬 더 크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조만간 우리나라 경상수지 적자가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원·엔 환율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증권 이석진 연구원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고 "국제유가 급락이 가져온 나비효과"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분석은 국제유가의 추가 하락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과 함께 원·엔 환율 역시 안정을 되찾을 거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전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안팎에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전제로 올해 연말까지 원·엔 환율이 780~810원 범위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우증권 이경수 연구원의 전망도 비슷하다. "엔화 약세가 일본의 경기 둔화를 반영하고 있는가.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일본의 내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기와 연결된 경기 둔화라면 딱히 엔화만 약세로 갈 이유는 없다. 소득과 고용지표가 견조하기 때문에 생산 역시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계 경제가 안정을 찾고 일본 경제가 회복한다는 가정 아래 원·엔 환율은 제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시기인데 그때까지 수출 기업들은 심각한 도전을 겪어야 할 전망이다. 그 시기는 올해 말이 될 수도 있고 내년 상반기까지 늦춰질 수도 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엔화 대출, 낮은 금리에 환차익은 덤으로

요즘 시중은행에는 엔화대출을 받을 수 없느냐는 문의가 속출하고 있다. 대출금리가 연 2~3% 밖에 안 되는데다 원·엔 환율이 떨어지면서 환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실제로 올해 초에 100만엔이 862만원이었지만 이제는 환율이 떨어지면서 8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100만원을 대출 받아서 잘 쓰고 지금 갚는다면 환차익이 62만원, 이자 16만원을 갚고도 46만원이 남게 된다는 이야기다. 대출을 받았는데 오히려 돈을 버는 셈이다. 엔화 예금이나 일본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크게 손실을 보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상황이라면 원화대출과 엔화대출 사이에 금리 차가 3~4% 나는데 환율이 25원 이상 오르지 않는 이상 국내에서 대출을 받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환율이 더 떨어진다면 환차익까지 기대해볼 수도 있다.
당연히 지금이라도 엔화 대출을 받는 게 어떨까 고민해볼만 한데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대출 대상이 외국환거래 규정에 따라 외화결제자금 수요가 있는 기업 또는 수출입 업자의 운전 자금에 한정돼 있다.
환율 급등과 외환시장 불안을 우려한 한국은행이 직접 창구 지도에 나서기도 했지만 엔화 대출은 여전히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10월 11일 기준으로 6개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규모는 지난 달 말 현재 1조2,388억엔으로 지난달보다 128억엔 가까이 늘어났다. 올해 1월 8,339억엔과 비교하면 48.6%나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