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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뛰는 경기도] “수도권 규제완화는 역사적 책무”

도일 남건욱 2006. 10. 27. 02:10
[세계로 뛰는 경기도] “수도권 규제완화는 역사적 책무”
취임 100일 맞은 김문수 지사 인터뷰
“현 정부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약탈경제’… 大수도론만이 모두가 살 길”

2639만2887평. “경기도 내 미군 반환기지 규모가 얼마나 되나”라는 질문에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런 수치를 불러줬다. 질문한 ‘규모’보다 제시해주는 ‘방식’이 더 눈길을 끈다. 담당자에게 자료를 가져오라며 스스로 ‘답’을 찾아 알려주는데, 단단위까지 읽어줬다.

매우 특이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다르게 답할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 수치 관련 질문을 하면 “나중에 자료를 드리겠다”는 답이 온다. 확인을 위해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수치는 ‘대충’ 얘기할 것이다. “대략 2600만 평쯤 된다”는 식이다. 꼼꼼한 사람이라 해도 1000만이 넘어가는 수치를 끝자리까지 정확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 사례 하나만 봐도 김 지사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꼼꼼하고, 명확하고, 정확하다. 좀 지나치게 말하면 ‘완벽주의자’ 성향을 보인다. 그 역시 이 점을 안다. 스스로 “명확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도 “수치를 중시하고 현실을 따지는 스타일”이라고 평한다.

그런 그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의 역할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 자기 역할 찾아야”

“지금 우리 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은 경제에 관여한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합니다. 그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지요. 기업이 할 일 아닙니까? 일자리 창출을 왜 정부가 하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기본을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답은 명쾌하다. “하천관리, 주택·도로 건설, 전기·통신시설 관리, 교통문제 해결 등”이다. 다 아는 얘기다. 김 지사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규제 완화다. “기업과 국민을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것이다. “현 정부는 기업과 국민을 도와야 하는데 가르치고 명령하고 못하게 하는 것이 본분인 줄 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정부 비판이 단순한 ‘역할 혼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초점은 ‘역할 과잉’에 맞춰져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이 도를 지나쳤다’는 게 그의 생각인 듯하다. “현 정부 역할은 과잉돼 있다”고 지적하는 그는 수도이전과 뒤 이은 행정수도 건설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예를 들어 봅시다. 현 정부는 수도를 이전하겠다고 했는데요. 이 일은 5년 임기의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의지로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지요. 수도 이전과 같은 큰 일은 역사와 민심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는 역사와 순리를 거슬렀습니다. 역사적 대세는 점점 더 중앙과 관의 역할을 줄이는 것입니다.”

“공공기관 이전은 떡 나눠주기”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해서는 비판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다. 서슴없이 “떡 나눠주기”라는 표현을 쓴다. 경기도는 이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 176개 중 3분의 1인 56개가 경기도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소재 공공기관은 73개에서 17개로 줄어든다.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공공기관을 이전시킨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무슨 떡을 나눠주듯 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공공기관 전체를 한꺼번에, 자기 마음대로 떼다가 마음에 드는 지역에 준다는 것 아닙니까?”

공공기관 이전 정책이 ‘예쁜 놈 떡 하나 더 주기’식이라는 얘기다. 비판은 여기서 안 끝난다. “이런 적이 있었는지 동서고금의 역사까지 일부러 찾아봤다”고 말한다. ‘약탈경제’라는 말도 썼다. ‘표현이 좀 지나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없지 않다.

“도로·토지·주택 등 전국 공사 사업량의 60%가 경기도에서 이뤄집니다. 자기 사업이 많은 곳에 관련 기관이 있다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토지공사는 전북으로 간다고 합니다. 거기 무슨 일이 있다는 것입니까? 주택공사는 서민들 집 지어주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경남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것도 말이 안 되지요. 옛날에 ‘약탈경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남의 것, 남의 나라 것을 빼앗아 자기 것을 채우는 것이지요. 이런 것이야말로 ‘약탈경제’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는 현 정부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는 것이 김 지사의 ‘경제론’이다. 공공기관 이전을 비롯해 최근의 부동산 정책도 “현실에 맞지 않는 인위적인 규제”라고 주장한다. 이런저런 규제와 강제가 투자 마인드와 기업가 마인드를 죽였다는 것이다.

김 지사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혼란스럽다. 현 정부는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꼽는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이 정책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김 지사는 완전히 잘못됐다고 얘기한다. 뭐가 맞는 것일까?

“국가균형발전 노력은 해야 합니다. 그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달라야 합니다. 한쪽을 묶어놓고 다른 쪽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균형발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향 평준화’라고도 말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반몰락이지요. 다 죽자는 말입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말 그대로 ‘국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각 지역에 기업도시나 혁신도시를 지정해 각종 지원을 해주고, 낙후지역에는 별도의 지원을 통해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다. 기업이 각 지방에 골고루 분포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각종 지원은 당연히 기업유치의 ‘당근’이 될 것이다.

“특정지역 규제는 어리석은 일”

그러나 당근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리적·경제적 여건이 좋다면 별다른 정책적 지원이 없어도 기업은 그곳을 찾게 마련이다. 기업이 몰리게 돼 있고 다른 지역에서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가지 않는다. 그런 곳에는 기업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도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한 부분이다.

경기도가 바로 그런 곳이다.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대규모 시장이 있고 인구의 4분의 1이 몰려 사는 곳인 만큼 인재도 많다. 기업이 있고 싶은 곳이 어디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 지역의 기업활동을 막는 제도가 있다. 바로 ‘수도권 규제’다.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야 환영할 일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경기도를 발전시켜야 하는 ‘수장’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하다.

“지방 단체장들이 ‘수도권 규제를 더 해 주시오’라고 하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특정 지역에 공장과 대학을 못 짓게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일은 세계 역사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방식에 가장 충실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균형과 평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지요. 하지만 공산국가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일이 없어요. 역사적 웃음거리입니다. 특히 다른 지방이 중앙정부에 특정 지역의 규제를 강화해 달라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경기도의 해묵은 과제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맞물려 있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임 손학규 지사도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적잖이 싸웠지만 안 됐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남다른 의욕을 갖고 있다. “경기도에서만 국회의원을 10년 했다”며 “인식도 방법도 지금까지의 다른 지사와 다르다”고 말한다. 나아가 “수도권 규제 완화는 역사적 책무”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의지는 쉽게 꺾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방분권 정책은 현 정부가 내놓은 또 하나의 주요 시책으로 국가균형발전정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각 지역이 나름대로 발전책을 쓰려면 권한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중앙정부 권한 상당량을 지방에 내주겠다는 것이 지방분권정책의 핵심이다. 김 지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분권이요? 지금 정부가 제일 반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시계획권입니다. 공공기관을 이전한 뒤에도 그곳의 활용을 지역 스스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건 분권이 아닙니다. 게다가 재정권마저 중앙정부가 가져갔습니다. 지방세와 거래세를 중앙정부가 가져갔지요. 거기다 경마장 레저세까지 중앙정부가 절반을 가져갔습니다. 재원을 줄이고 권한을 빼앗아 가고…. 어떻게 분권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서울·인천·경기 함께 가야”

결국 현 정부가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균형발전·분권정책 모두가 잘못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냥 “잘못됐다” 정도가 아니다. 비판이 신랄하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 것일까? 최근 그가 강력하게 제기하는 이론, 즉 ‘대(大)수도론’이다.

대수도론은 서울·경기·인천을 하나의 대수도 개념으로 묶어 동북아 또는 세계 수도권 지역과 경쟁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 지사가 취임 전부터 제기한 대수도론은 수도권 규제 완화와 맞물려 큰 파문을 일으켰다(상자글 참조).
“대수도론에 상당수 지자체가 반발해 왔습니다. 대수도론에 직접 반대하거나 아니면 몇몇 지자체가 통합하겠다고 나서는 형식입니다. 최근 부산·울산·경남이 통합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지역이 오사카나 후쿠오카 등의 경제권과 맞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은 이런 식으로 6개 지역으로 통합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 지사의 대수도론은 지난 수년 동안 논의돼 왔던 행정구역 광역화와 다른 내용이다. 행정구역 광역화란 기초단체를 없애고 서울은 5~6개 지역으로 쪼개 전국을 40여 개의 광역지역으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주창자들은 그럼으로써 행정 및 주민의 편의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대수도론은 이 같은 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반대가 많다는 것도 잘 안다. 김 지사의 말대로 대수도론이 현실로 이뤄지면 당장 지방은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도 반대할 것임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자는 “대수도론은 현실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일단은 협의체 형식이 되겠지만 향후 행정구역까지 합치자는 논의가 나올 수도 있다”며 “만일 행정구역까지 통합될 경우 막강한 권력이 형성됨으로써 ‘나라 안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과는 알 수 없다. 될지 안 될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김 지사는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 정부가 갔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중앙정부도 다른 지방정부도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수도론이란…
“서울·인천·경기 뭉쳐야 산다”


지난 6월 7일 취임 20여 일을 앞두고 김문수 경기지사가 제기했던 내용이다. 그는 당시 “서울·인천·경기를 하나의 대수도 개념으로 통합하는 것이 절실하다”며 “취임 후 정책공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파문은 즉각적이고 컸다. 바로 다음날 염홍철 대전시장이 우려를 표명했다.

염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빌미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국가균형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지사는 자신의 대수도론을 지속시켜 왔고 그에 따라 반발도 계속됐다.

지난 8월 31일 부산·울산·경남 역시 하나의 경제·생활공동체로 묶자고 합의한 데 이어 9월 21일에는 비수도권 13개 시·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지역균형발전협의체’를 결성하고 대수도론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대수도론은 그럼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서울·경기·인천 등 3개 시·도는 대기·수질·교통·복지 등 4개 분야에 대한 공동협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합의문 작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