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기사모음

대학가 돈사냥 열풍

도일 남건욱 2006. 10. 27. 03:02
대학가 돈사냥 열풍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교수 확충은커녕 좋은 교수들이 이탈하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습니다. 영어권 대학이나 기업체에서 대학에서 받는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고액으로 교수들을 스카우트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갈수록 우수한 교수들을 유치하는 게 어렵습니다.”(어윤대 고려대 총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대학가의 대표적인 ‘CEO형 총장’으로 꼽힌다. 취임 후 각계에서 유치한 발전기금이 3,5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다양한 혁신 프로그램을 실시해 고려대를 세계 명문대학 200위권에 진입시키는 등 고려대의 위상을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돈’이 부족해 발전기금 마련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고려대뿐만 아니다. 국립과 사립을 가리지 않고 대학들의 ‘돈사냥’이 치열해지고 있다. 총장들이 기부금을 받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각종 수익사업을 벌이는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총알’이 필요하지만 예산이 넉넉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한국 대학의 예산은 세계적인 대학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게 사실이다. 자금 사정이 가장 좋다는 서울대학교도 연간 예산이 하버드대학이나 도쿄대학의 30% 언저리에 그친다. 5,000억원이 넘는 대학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이 정도로는 ‘글로벌 대학’은 ‘그림의 떡’이란 게 대학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의 대학이 이렇게 ‘가난’한 이유는 수입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대학들의 경우 기업 기부금이나 국고보조금, 대학기금 운영 등 다양한 수입원이 있지만 한국의 대학은 등록금에 예산의 상당부분을 의지해 왔다. 지금도 예산의 60% 이상이 등록금에서 나온다.

하지만 등록금으로는 현상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을 조달할 수 있을 뿐이다. 미래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엄두도 낼 수 없다. 1인당 GDP에 비해 대학의 학비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이 높지만 대학 입장에선 더 올리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도 그래서다. 국고보조금이나 재단 전입금도 그다지 기대할 게 없다. 결국 해법은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든지 자체 수익사업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부금 마련을 위해 수많은 대학들이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재계에 이름을 올려놓은 기업치고 대학의 기부금 제안을 받아보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정도다. 어떤 기업이 어떤 대학에 기부를 했는지는 각 대학 캠퍼스에만 가도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대학들이 삼성, LG, 포스코 등 기부금을 낸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을 불쑥불쑥 세우고 있는 것이다.

공격적 재테크 줄이어

기업과 대학의 협력관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보다 밀도 높은 협력관계가 조성되고 있는 것.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서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순히 기업이 발주한 연구를 대학이 수행하는 차원이 아니라 대학에서 특정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성균관대 반도체학과의 경우 삼성전자 차세대연구팀의 연구원들이 강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비용은 전액 삼성전자가 부담한다. 연세대는 하이닉스반도체와 제휴, 관련학과를 신설하기로 했다.

동문을 대상으로 한 기부금 모으기 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단순히 동문회보에 지로용지를 끼워 보내는 ‘낡은’ 방법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ARS, e메일,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을 활용하는 등 ‘첨단’ 모금법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등록금 한번 더 내기’나 ‘장학금 보태기’ 등 다양한 이벤트도 개최된다.

수익사업도 다각화하고 있다. 우선 금융 재테크에서 변화가 많다. 정기적금이나 국공채에 유휴자금을 ‘몰빵’하던 수동적인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회사채, 주식 등에 투자하는 ‘공격적’인 투자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심지어 서울대의 경우 중앙상호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사모펀드에 50억원을 투자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모교 출신의 금융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는 등 동문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외에도 부동산, 학교기업 등을 활용한 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학들이 ‘돈사냥’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면서 총장들의 역할도 완전히 달라졌다. 상아탑의 수장이라는 근엄한 학자에서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총장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기부금 규모가 거론되고 신임 총장들은 ‘몇 년간 얼마를 모으겠다’는 출사표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다. ‘세일즈 총장’, ‘CEO 총장’ 같은 표현이 난무할 정도로 총장의 위상은 180도 바뀌었다.

대학과 총장들이 외부의 자금을 유치하는 데만 골몰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내부의 시스템을 혁신하는 데도 팔을 걷어붙였다. 한정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교수에 대한 평가를 본격화하고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등 ‘안이했던’ 교수사회에 경쟁을 유도하는가 하면 총장에게 집중돼 있던 권한을 분산해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등 기업과 유사한 성과주의적 조직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이건 사립이건 간에 거의 모든 대학이 ‘돈사냥’에 나서기는 했지만 성과는 천차만별이다. 상위권 대학과 중하위권 대학,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수도권과 지방대학 간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 대학시장에서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부 지방대학은 교육환경 개선은커녕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이 없는 대학은 퇴출될 것이란 전망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한국의 대학이 위기를 넘을 길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뿐이고 이를 위한 자금유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 변형주 한경비즈니스 기자 hjb@kbizweek.com
입력일시 : 2006년 10월 23일 16시 14분 1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