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기사모음

대학 ‘돈바람’ 왜 부나

도일 남건욱 2006. 10. 27. 03:03
대학 ‘돈바람’ 왜 부나
경쟁력 위한 ‘필살기’…‘아직은 배고파’
‘사립대학의 누적적립금이 지난해에 비해 2,700억원 증가해 4조 3,000억원에 이르렀다.’

최근 열린우리당 최재성 의원이 146개의 사립대학을 조사한 결과다. 이에 대해 최의원은 사립대학이 교육 자체보다 외형 부풀리기에 몰두하고 있다며 등록금 인상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민주노동당의 최순영 의원은 4년제 사립대학은 연간 8,000억~9,000억원, 사립 전문대학은 매년 2,000억원을 모아 사립대학의 적립금이 무려 5조3,000억원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학이 적립금의 사용계획조차 없어 적립금 규모에 상한선을 둬야 한다고 최의원은 제안했다.

두 의원의 조사결과만 보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립대학의 경영난은 ‘허구’ 또는 잘해야 ‘엄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대학 관계자들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서울시 소재 한 대학의 관계자는 “적립금은 대학의 향후 발전을 위한 일종의 종자돈”이라며 “무한경쟁체제에 접어든 대학 입장에선 여전히 자금이 부족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기부금 모금 확대 등 재정 확충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경쟁력 세계 54위

대학들의 ‘자금 유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돈’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까닭이다. 이와 관련, 삼성경제연구소는 <대학 혁신과 경쟁력>이라는 보고서에서 ‘대학의 경쟁력이 미래 국가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지만 ‘한국 대학은 괄목할 만한 외형 성장에 비해 질적 수준이 취약하다’며 혁신을 주문했다.

실제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수준에 한참 뒤져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조사 대상 60개국 가운데 54위에 머무르는 망신을 당했다. 교육 전체의 순위는 44위여서 초·중등교육에 비해 고등교육의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200대 대학’에서도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의 대학에 크게 밀렸다. 한국은 서울대(63위), 고려대(150위), 카이스트(198위) 등 3개 대학만 순위 안에 든 반면, 중국은 6개, 일본은 11개 대학이 2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렸다.

일단 외형적인 면은 어느 선진국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고등교육 진학률이 무려 82%에 달해 핀란드, 미국 등 세계 선두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2003년 기준 SCI논문수가 1만8,635편으로 세계 14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피인용도는 0.22회로 세계 34위에 머물렀다. 논문의 질이 양에 비해 처진다는 얘기다.

교육환경도 열악하다. 대학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교수 1인당 학생수가 국립대학이 30명, 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40명, 사립 전문대학은 무려 72명에 달한다. 미국 하버드대가 14명, 일본 도쿄대가 10명, 중국 칭화대가 9명임을 감안하면 콩나물시루나 다름없다. 국내 고등학교의 교원 1인당 학생수인 15명과도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의 대학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에 대해 <우리 대학의 경쟁력, 이대로 좋은가?>라는 보고서에서 저투자와 저효율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투자재원이 적은데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대학의 재정상태는 세계 수준의 대학에 비해 ‘가난뱅이’의 그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원에 그나마 여유가 있다는 서울대의 경우 2004년 예산은 7,401억원으로 이는 2조4,859억원인 하버드대와 2조1,942억원인 도쿄대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도 국립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립대학들의 재정상황은 썩 좋지 않다. 상당수 사립대학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는 것이다.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 적자를 내는 대학이 적지 않다. 열린우리당 이인영 의원이 지난해 181개 사립대학을 분석한 결과 적자를 낸 대학이 13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대학 국고보조금 ‘유명무실’

사립대학들의 ‘돈 가뭄’은 구조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수입의 대부분이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0.6%에 이른다. 반면 국고보조금은 1.3%에 그쳐 유명무실한 상태다.

정부의 공교육 예산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2001년 21조7,000억원에서 올해 29조2,000억원으로 연평균 6.2% 불어났다. 이 가운데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 예산은 3조6,800억원으로 전체의 12.6%를 차지한다. 연평균 6.8% 증가해 전체 평균 6.2%보다 많다. 대학원연구중심대학육성(BK21),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 대학특성화사업, 대학구조개혁 지원 등 고등교육 역량 강화에 집중 투자한 결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교하면 여전히 예산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공교육비에서 민간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 대비 2.9%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0.7%보다 무려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에 비해 정부의 부담은 4.6%로 전체 평균 5.2%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대학 학비는 국립대가 3,623달러, 사립대가 6,953달러로 세계 4위였다. 결국 부족한 정부지원으로 민간의 교육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선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국고보조금이 부족한 마당에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등록금뿐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사립대는 물론 국립대도 매년 등록금을 인상해 왔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올해만 해도 국립대는 10%, 사립대는 6.6%나 등록금을 올렸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마냥 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학부모와 학생의 저항이 거세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비 근로자 소득 증가율인 2.4%보다 몇 배나 등록금을 올리겠다는 데 순순히 응할 사람은 흔치 않다. 게다가 정부도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가칭 ‘등록금 인상제한법안’을 통해 3년 평균 물가인상률의 1.5배 이하로 등록금 인상폭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에 따르면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 물가인상률(2.7%)보다 2배 이상 올린 사립대학은 전체 161개 가운데 102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등록금을 낼 학생이 부족하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차별화되지 않은 대학이 난립하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숱하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한국 대학의 특성상 정원미달은 곧바로 존폐의 위기로 치닫게 돼 있다. 특히 지방대학의 미충원율이 높아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2004년 기준 서울의 일반대학 미충원율은 2.2%인 데 비해 지방대학은 14.8%에 달했다. 지방 전문대학의 미충원율은 28%에 이른다.

이래저래 ‘돈줄’이 막힌 상태에서 대학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업과 동문들의 기부금을 확대하는 것이다. 최근 ‘CEO 총장’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대학 총장들이 ‘돈’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종 수익사업을 전에 없이 강도 높게 벌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이 기부금 운동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등 상위권 대학에 기부금이 몰리고 있어 중하위권이나 지방대학들에 돌아갈 몫이 적은 것이다. 대학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대학 위기설’이 힘을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대학들의 ‘돈 사냥’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글 변형주 한경비즈니스 기자 hjb@kbizweek.com
입력일시 : 2006년 10월 23일 16시 18분 1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