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 침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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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거품경제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펀더멘털이 튼튼하니 걱정 마라”고 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 서민들은 부동산 폭등에 경기 침체로 “IMF보다 더 하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 전반은 문제 없다”고 장담한다. 96년 겨울, 대선을 앞두고 경제 해법은 정치논리로 헝클어졌다. 2006년 오늘, 과연 1년 뒤 또 그런 위기가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2007년 8월 16일.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큰 폭(1%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발표한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금리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부동산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자 정부·여당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경제도 경착륙하면서 수출마저 어렵게 됐다. 은행들도 가계 대출 부실로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금융 시스템도 대혼란을 겪고 있다.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물가 때문에 경제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철수 단계에 들어갔다. 고임금·강성 노조·고령화 등으로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점점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국내 대기업도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다고 발표한다’ . 물론 가상 시나리오다. 하지만 2007년 한국 경제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몇 달 만에 수억원씩 오르는 집값, 어느 선진국도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출산율 저하, 미국·일본·유럽보다 높은 주요 서비스와 제품 가격, 만성화된 파업과 반기업 정서 등 한국 경제는 이미 지난 몇 년간 말 못할 속병을 앓아 왔다. 다행히 세계경제가 호조를 보여왔고, 외환위기를 거친 일부 대기업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그럭저럭 버텨왔다. 그러나 부동산 버블은 붕괴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정부청사나 청와대 문밖만 나가 보라. 경제심리나 민생경제는 완전 바닥이다. 버블 징후가 완연한 부동산값은 한국 경제의 목줄을 죄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대응이나 미국발 경기 침체 등 외부로부터 약간의 충격만 와도 대출에 의존한 가격 상승은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자 상환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급매물이 속출할 것이고, 연쇄적으로 대출 부실을 떠안은 은행과 금융권은 연쇄 도산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산업일꾼도 줄어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부동산으로 촉발될 금융과 가계 위기를 경고했다. 이것만 터져도 한국 경제는 사실상 끝장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보다 경제 기초 체력이 몇 배인 일본도 14년간 주저앉았는데 우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부동산 버블을 다행히 넘긴다고 해도 한국 경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위기에 이미 직면해 있다. 너무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2015년을 기점으로 전체인구에서 생산활동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당장 2007년부터는 ‘산업역군’으로 불리는 30~40대 인구가 줄어든다. 노동력을 밑천으로 이룬 제조업이 제대로 돌아갈지 의문이다. 게다가 한국 시장을 뒤덮을 중국 제품의 홍수사태까지 겹치면 문닫는 공장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대응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10년 안팎이다. 이 기간 안에 일본이나 미국처럼 경제를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그나마 지켜왔던 개발도상국 위치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20여 년간 각종 정치, 사회 어젠다 생산에 시간을 쓴 한국에 남은 시간은 결코 넉넉지 않다. 물가 비싼 서울은 썰렁 경제는 힘 빠지고 답답한데 물가는 천정부지다. 특히 외국 비즈니스맨들이나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장소의 물가는 이미 우리보다 몇 배나 잘 사는 선진국보다 비싸다는 지적을 받는다. 호텔비, 각종 고급 식당의 밥값, 수입 명품의 가격, 골프장 사용료는 물론 일부 생필품조차 선진국보다 비싸다. 고물가는 한국의 관광산업은 물론 한국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미 한국의 관광수지는 큰 폭의 적자(올 7월까지 46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부자들은 물론 중산층도 이제 한국에서 소비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 투자하기 위해 오는 외국인 CEO들도 고물가에 손을 내젓는다. 그렇다고 품질이나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다른 나라 주요 도시엔 비즈니스맨과 관광객들이 붐비는데 서울은 썰렁하기만 하다. 일반 관광지도는 물론이고 비즈니스 지도에도 서울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더욱 문제는 물가가 비싸 우리 관광객이 동남아·일본 등으로 떠나 달러를 쓰고 온다는 점이다. 고물가는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을 상승시킨다. 부동산이 버블이라면 고물가 역시 재화나 서비스 가격에 버블이 끼어 있다는 뜻이다. 유통구조의 개혁, 제조업의 혁신 등이 일어 나지 않았다는 뜻이고,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향후 자유무역협정(FTA) 위주의 경제 체제 아래서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누가 기업하려 하겠나 가뜩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회시스템에 기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까지 겹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둘째고, 기업 할 마음조차 안 생길 건 뻔하다. 주변에 자신이 애써 키워온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줘서 번듯한 기업인으로 만들겠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고용하고 세금 잘 내는 게 기업을 하는 보람이었다면 이젠 그런 보람조차 찾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분위기다. 기업이나 기업 오너에 대한 시선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차갑다. 2003년 기준으로 월마트(1억2000만 달러, 약 1100억원)보다 사회 공헌에 많은 돈을 내놓은 삼성(3200억원)에도 국민은 더 많은 사회 환원을 요구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국내에 계속 머무르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여기에 노조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소문이 나 있을 정도다. 2000년 이후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국가 경쟁력이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노사 관계는 2002년까지는 ‘거의’ 최하위(44위/47개국, 46위/49개국, 47위/49개국)였고, 그 이후 올해까지는 ‘진짜’ 최하위(59위·60위·60위·61위)였다. 이런 마당에 세계적인 한국 기업에 애국심과 민족성을 내세우며 한국에 남아 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대기업의 해외 고용은 83.5% 늘어난 데 비해 국내 고용은 5.3%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미 LG전자는 해외 직원이 국내 직원보다 더 많다. 이런 기업이 더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한국 기업마저 한국을 외면하면 그때 한국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까? 경제는 뒷전 정치에 올인 정치권은 이런 심각성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설마 망하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가계 빚은 이미 558조원선. 언제 터질지 모른다. 서민들은 “IMF 때보다 어렵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여기에 리더십을 잃은 국정 운영, 진보하지 않고 반복되는 정쟁 등 정치적 요인도 시한폭탄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단골 메뉴인 북핵 위기는 가능성에서 현실로 변했다. 외국인들이 더 민감해 하는 북핵 위기는 실제로 한반도에 폭탄이 될 수 있다. 북핵 위기가 위기로 끝나지 않고 분쟁으로 비화한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끝이다. 그냥 망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망할 수 있는 요인은 지뢰밭처럼 주변에 산재해 있다. 지뢰를 제거하지 않고 피해다니는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외환위기도 극복했는데 이쯤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늙어가고 있다. 장사도 젊을 때 망해야 재기할 수 있지, 늙어서 망하면 복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몇몇 경제연구소와 경제전문가들은 “2007~2008년에 버블이 붕괴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자칫 경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는 뒷전인 채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는 2006년 겨울.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에 둔감한 정부가 이런 일을 지혜롭게 처리해 나갈지 의문이다. |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 [867호] 2006.12.1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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