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강남 삼성동 아이파크다. 아이파크 55평의 최근 매매가가 최고 32억원(19층)이다. 평당 5818만원. 2001년 55평 분양가가 7억원이었으니 최초 입주자는 5년 만에 25억원을 번 셈이다.
25억원은 정규직 근로자가 한푼도 쓰지 않고 109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올 9월 현재 정규직 근로자의 평균연봉은 2289만6000원(노동부 자료)이다.
강남 지역 집값 상승률은 2002년 평균 32%(한국은행)를 시작으로 2005년까지 매년 평균 15.7%씩 오르고 있다. 이 수치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3.33%)과 평균 국민소득증가율(5.7%)보다 훨씬 높다.
실제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은 5년 동안 약 7억2000만원이 올랐다. 2001년 2억8000만원에 거래됐던 매물이 5년이 흐른 지금은 10억원 선에서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은마아파트의 연간 평균 집값 상승률은 45% 정도다.
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년 1억원 이상씩을 번 셈이다. 문제는 이런 상승률이 강남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11월까지 전국 집값은 9.6% 올랐고, 서울 아파트 가격은 19.7% 올랐다.
정부는 ‘버블 세븐 ‘투기와의 전쟁’ ‘부동산 필패론’ 등 다양한 어휘와 각종 규제를 동원해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급기야 민간연구소들에서 버블 붕괴 시나리오가 자주 나오고 있다. 이미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국내 부동산 가격은 2001년 이후 저금리 기조 아래서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이 격화되면서 급등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급등세를 ‘버블’이라 주장하고 있다. 우선 집값에 거품이 있는지를 따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 비율)이다. 평형이나 주택 특성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전세 비율이 50%를 밑돌면 아파트값이 과도하게 올랐다고 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5월 현재 강남구 전세 비율은 28.7%다. 평균 평당 매매가는 3064만원에 달하지만 평당 전셋값은 880만원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서초·송파·목동, 경기도 분당·평촌·용인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들의 전세 비율이 모두 비슷한 상태다. 전세 비율이 목동 33%, 분당 34%, 용인 31% 등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집값에 어느 정도 거품이 끼었는지 정확한 수치를 낼 수 없지만 50%에 크게 낮은 전세 비율을 살펴보면 그동안 집값이 과도하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민간연구기관들도 현 상황을 ‘버블’로 보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도 비상식적 LG경제연구원은 2004년부터 부동산 거품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으며, 대신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월 발표한 ‘한국 부동산 거품 진단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강남 지역 아파트에는 25.8~78.6%의 버블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6일 삼성경제연구소도 ‘주택 시장 불안과 금리’라는 보고서에서 주택 버블을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2005년 상반기의 전국 주택 가격은 17.0%, 아파트 가격은 32.4%의 거품을 안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최호상 수석연구원은 “주택 가격에 낀 거품 중 11.6%가, 아파트의 거품 경우에는 23%가 금리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경제전문 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지난 1일 발간한 국가별 보고서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고려할 때 주택 가격에 20~30%의 ‘거품’에 끼어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주택 가격은 비상식적이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에 달하는 호주 같은 경우 건평 60평에 지어진 32평 주택이 7억원을 넘지 않는다. 최근 가파른 주택 가격 상승을 기록한 미국의 집값도 비슷한 규모면 50만 달러를 넘지 않는다.
이 집값도 서서히 조금씩 내리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인 우리나라의 강남 지역 32평 아파트 매매가는 평균 8억~9억원에 달한다. 평균적으로 32평 아파트의 대지 지분은 13평으로 토지 가치로 환산하면 가격은 더욱 높다.
이런 이상 징후 때문에 부동산 버블 붕괴론이 최근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다.버블 붕괴 시점에 대해 이르면 내년 2분기에 나타날 것이며, 늦어도 2008년 상반기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부동산 대책의 본질과 접근 전략’이란 보고서를 통해 “11·15 대책에 따른 주택 공급 확대 효과가 보이는 2008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2008년부터 서울과 수도권의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30% 이상 늘어난다”며 “이 상황에서 금리 상승과 주택 대출 규제 강화,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과표 적용률 상향 등으로 부동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낮아짐으로써 투기적 수요는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개인 자산의 80%가량이 부동산에 몰려 있기 때문에 부동산 거품이 급격히 꺼질 경우 일본보다 훨씬 충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경우 고가 주택뿐 아니라 전체 주택 가격이 함께 폭락하기 때문에 주택담보 대출 등 부채가 많은 서민층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9월까지 개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가계 부채는 사상 최대치인 558조8176억원에 이른다. 외환위기 당시보다 2.6배나 증가했다. 특히 개인들이 주택 구입을 위해 빌린 주택담보 대출은 전체 가계부채의 57.8%에 해당하는 322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광풍이 우리나라 가계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것이다.
부동산 대출만 무려 322조원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가계 부채가 5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급락은 가계 부실 심화, 개인 파산 증가 등 복합 불황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주택 보유자의 50% 이상이 부채에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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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작스러운 버블 붕괴는 이들 대부분을 파산자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소비 위축과 중산층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물론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안 가면 다행”이라고 전했다. 이들이 무너지게 되면 금융기관들은 연쇄 도산에 이르러 급기야 한국 경제는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남대 도시부동산학과 강병주 교수는 “고유가와 원화 강세 등의 이유로 기본 체력이 저하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버블 붕괴가 오면 개인 파산은 물론 주택담보 대출 연체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며 경제 전체에 미치는 여파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또는 금리 인상)→급매물 출현→주택가격 하락→대출 및 이자상환 불능→은행 부실→경제위기’라는 공식이 점차 우리 경제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IU도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 나타난 버블 붕괴 현상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2003년 카드에서 시작된 부실이 나라 경제를 출렁이게 한 점을 생각하면 부동산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액수로 보나 이해 당사자들로 보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 우리 경제 주축들이 한번에 무너지게 된다. 한때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잘 나갔던 일본조차도 부동산 버블로 10년 이상을 고생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면 한국 경제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지만 대한민국은 ‘잃어버린 20년’이 될지, 아니면 영원히 잃어버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파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담당자나 정치권은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