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무서워 지갑 못 연다
서울 물가 높기로 악명…감원,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 큰 일 물가 일본보다 비싸다 |
또 올 들어 10월까지 소비자물가는 1.6% 오른 데 그쳤다. 데이비드 버튼 국제통화기금(IMF) 국장도 지난 10월 16일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타깃 정책을 매우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이 정책은 강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국에 다니는 사람들은 한국의 체감 물가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특히 서울의 물가는 지갑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각종 조사가 이를 입증한다. 국제 컨설팅 업체인 머서 휴먼 리소스 컨설팅(MHRC) 조사에 따르면 뉴욕(100)을 기준으로 봤을 때 서울의 생활비(121.7)는 세계 144개 도시 가운데 둘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위였던 도쿄(119.1)를 제쳤고, 높은 물가로 악명 높은 런던(110.6)보다도 더하다. 이 회사가 발표한 도시별 물가 순위는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파견 직원의 체재비를 책정하는 데 참고 지표로 삼기 위한 것이다. 외국인들 한국 기피 현상 뚜렷 또 다른 자료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상대국 물가지수’에 따르면 한국 물가를 100으로 놓았을 때, 미국의 물가는 2000년 171이었지만 올 6월엔 110까지 떨어졌다. 2000년에는 미국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71% 비쌌는데 지금은 10% 비싼 수준으로 격차가 좁혀졌다는 뜻이다.
이들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2~3배 많은데 물가는 1.1~1.6배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득을 감안하면 한국은 이미 고물가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내 외국인들 사이에도 한국의 고물가는 소문나 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호텔스재팬의 매니저인 다카히로 이토씨는 “일본에서 프랑스 코스 요리는 3000엔이면 충분한데 한국에서는 그 정도를 먹으려면 1만엔 이상이 든다”고 얘기했다. 그가 한국에서 묵은 호텔은 특 1급 호텔이 아니었지만 하루 숙박비가 160달러에 달했다. 이토씨는 “일본에서 이 정도 돈이면 훨씬 깨끗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불평했다. 단순히 이토씨 개인의 체험일까? 국제 인력자원 자문기구인 ECA 인터내셔널은 지난 5일 전 세계 250개 도시를 대상으로 국외 거주자 생활비 수준을 조사했다. 서울은 아시아에서 1위, 세계에서 4위를 기록했다. 1,2위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는 아프리카 국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노르웨이 오슬로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 셈이다. 한국에서 3년 반을 생활한 도쿄 출신의 한 일본인은 “한국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일부 한국인은 일본 물가가 더 비싼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 호텔 식당이나 고급 식당의 가격은 일본보다 비싸고, 심지어 명품 가격도 비싸다”면서 “이런 인식은 주한 일본인 사이에선 상식”이라고 했다. 한국인 임원 A와 일본인 임원 B가 각각 도쿄와 서울로 출장을 갔다고 치자. 인터콘티넨털 호텔 (조식 포함) 하루 숙박료는 한국이 24만2000원, 일본이 22만4000원(2만8000엔)으로 일본이 오히려 싸다. 고급 골프장에서 주말 골프까지 즐기려면 한국은 30만원가량 드는 반면 일본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골프장에서 12만~16만원(1만5000~2만엔) 이면 된다. 일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의 번화가인 42번가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메리어트 호텔 라운지에서 맥주 두 병에 14인치짜리 피자 하나 시켜 먹으면 팁을 포함해 27달러(2만2000원) 정도면 된다. 한국의 비슷한 호텔에서 같은 식으로 주문해 먹으면 4만원 이상 나온다. 2배 정도 비싼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은 이미 외국인에게 비싼 도시로 낙인찍혀 있다. 외국 관광객 입장에선 비슷한 거리에 위치한 도쿄나 오사카·베이징·상하이 등과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이렇다 보니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줄고 있다. 관광객 감소는 시작일 뿐 물가가 비싸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은 문제의 일단에 불과하다. 물가가 높다는 것은 유통을 비롯한 기업들의 생산성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일본의 최대 발명품은 한국에도 익숙한 ‘100엔숍’(모든 품목을 100엔에 파는 상점). 제품을 대충 만들어 저가에 파는것이 아니라 치열한 원가 절감과 해외 아웃소싱을 통해 가격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이런 혁신은 일본 산업 전체에서 일어났고, 격렬한 가격 전쟁에서 못 버틴 유통·생산업체들은 속속 몰락했다.
실례로 한국의 자동차는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서 국내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는 반면 일본 자동차는 자국에서 보다 비싼 값으로 한국에 팔고 있다. 만약 한·일 FTA가 체결돼 자동차 시장이 개방되면 한국 기업은 내수 판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고 감원 등의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감원으로 개인 소비가 줄어들면 내수 부진 등 경기 침체도 불가피하다. 문제는 최근 정부의 실책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등 물가 불안 요인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름값도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있다. 노동 생산성 등에서 아직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이 물가와 임금 등 가격경쟁력에서마저 선진국에 밀리면 외국인들은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진다. 관광산업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우려는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벌써 한국에서 씀씀이를 줄여나가고 있다. 2000년 6조원에 달했던 외국인 국내 지출이 2006년 상반기에는 1조9244억원으로 떨어졌다. 올해 10월까지 관광수입은 39억5000만 달러로 지난해 46억1000만 달러에 비해 15% 가까이 줄었다. 올해 10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은 193만여 명으로 지난해 202만 명에 비해 4% 정도 줄어들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 요인도 있지만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들이 지출을 많이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행객이 서비스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한국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 [867호] 2006.12.1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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