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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믿고 10년간 뼈 깎았다

도일 남건욱 2007. 1. 1. 23:15
정부 믿고 10년간 뼈 깎았다
거래 투명화로 부동산 버블 깨고 해외 투자·엔저 정책으로 물가 잡아
일본은 어떻게 극복했나?

- 부동산 정보 공개시스템으로 가격 안정
- 임금 상승 자제, 엔저 정책으로 고물가 극복
- 고렬ㅇ 인력 활용, 출산·육아 지원책 추진

성장 잠재력의 하락 속에서 부동산 버블, 고물가, 저출산·고령화 등의 구조적인 경제문제를 겪어야만 했던 일본의 장기불황은 우리 경제의 현실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로운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경제도 고도성장이 마감되고 보다 성숙된 저성장 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구조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있고, 일본과 같은 각종 구조적인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장기불황 극복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에 발생한 부동산 버블을 오랫동안 방치해 경제적 피해 규모가 커졌다.

게다가 일본은 90년대 초에 정책 금리인 재할인금리를 2.5%에서 6%로 급격하게 올리는 바람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고 은행부실채권이 누적되었다. 이러한 인위적인 버블 붕괴 전략은 일본 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준 것이 사실이지만 부동산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신화는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의 유동성을 높이는 등 합리적 시장을 만들기 위한 개혁에 주력했다. 부동산 거래세는 인하되고 공장 부지를 상업 시설로 전환하는 데 따른 각종 규제도 완화됐다.

또한 일본 정부는 지적(地籍) 조사를 강화하면서 부동산 정보 공개 시스템을 정비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시책은 부동산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을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본의 노력을 볼 때 버블 조짐을 나타내고 있는 우리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우선 금리인상을 통한 버블 붕괴 전략은 경제적 피해가 크며, 금리 수준도 일본의 경우와 같이 파격적으로 인상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와 같이 한국은행이 금리를 소폭 올리는 것은 부동산 버블 억제 효과는 미약하고, 기업의 설비투자만 악화시키거나 원화 강세를 부채질하는 부작용만 클 것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서는 지금과 같은 일정한 규제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면서 중장기적인 차원의 부동산 시장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 인상 자제해 고물가 시정

요새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도 일본 물가가 의외로 낮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됐다. 반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고물가를 개탄하기까지 한다. 고물가 국가로 악명 높았던 일본이 장기불황을 거쳐 고물가구조를 어느 정도 시정할 수 있었던 것은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함께 엔화 약세와 임금상승률 둔화에 힘입은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수출산업의 사업 환경을 개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엔화 약세 유도에 주력해 왔다. 외환시장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2003년 1월 15일부터 2004년 3월 16일까지 35조 엔이 넘는 엔화를 매각했다.

일본 정부는 엔고 저지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면서 투기 세력을 견제해 엔고 추세의 역전 및 엔저 유도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한 것이다. 외환시장 개입과 함께 일본 정부는 0% 금리정책이나 해외투자 유도 정책을 통해 엔저 기조의 장기화에 주력했다.

장기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본 근로자들은 임금 상승을 자제해 고용조정을 피하는 데 주력했다. 1995~2004년 동안 일본의 현금급여 총액지수는 연평균 0.7%나 감소했다. 임금 유연성을 높여 고용조정을 최대한 억제한 것은 불황에서 탈출하는 데 유리한 방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05년부터 공식적으로 인구 감소 사회에 진입했다. 오랫동안의 저출산에 따른 결과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도 2006년 7월 잠정추정치 기준으로 20.5%나 된다. 이러한 인구 문제는 각 분야에서 시장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잠재성장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나 기업은 이러한 인구 제약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4월 1일부터 기업이 단계적으로 정년퇴직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도록 유도하는 개정판 고령자고용안정법을 도입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해 중장기적으로 노동인력의 확보와 연금재정의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다. 기업도 인구 고령화에 맞게 고령 인력의 활용 여건 정비에 주력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당장 정년 연령을 연장하는 것보다 60세가 되면 근로자를 일단 해고한 후 재고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기업은 여성 근로자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고령자, 여성 근로자들이 일하기 편한 직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일과 가정의 양립(Work Life Balance) 체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저출산 대책에 더욱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녀 양육 문제를 가정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녀 양육을 지원해 출산율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95년에 에인절플랜, 2000년 신 에인절플랜, 2003년 저출산 사회 대책 기본법, 20005년 자녀 양육지원 플랜 등이 잇따라 추진돼 자녀 양육보조금의 확대나 탁아소 정비 정책 등을 전개했다. 일률적인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는 대신 다자녀 가구의 세금 부담을 경감하는 조세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효과로 인해 2006년에는 일본의 출산율이 다소 회복될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2005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08명에 그쳐 일본의 1.25명보다 낮은 실정인데, 일본이 2006년에 다소 회복될 전망이어서 한·일 출산율 격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대로 갈 경우 수십 년 후에는 인구 노령화나 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열악한 상황이 되고 한국과 일본의 성장 잠재력마저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출산율도 높아져

일본의 저출산 대책은 초기에 효과가 미진했지만 지속적인 정책 추진을 통해 점진적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출산 장려 정책이 비경제활동 인구의 일시적 확대를 가져오는 폐해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본 인구가 1억 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이러한 인구 감소 추세를 가능한 한 빨리 역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국가적 생존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구정책과 더불어 일본 정부는 노령 근로자의 건강 증진과 함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의료나 노동 관련 규제를 완화해 시장메커니즘을 강화하는 한편 관련 기술의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첨단 의료 기술과 함께 로봇기술을 고도화시켜 고령 근로자의 체력 약화 문제에도 대처하고 있다. 아베 신임 총리는 ‘이노베이션 25 구상’을 내년 6월까지 구체화시키면서 이러한 사회개혁과 기술혁신을 결합한 종합적인 이노베이션 전략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일본 경제의 부활은 경제적 개혁뿐만 아니라 부동산, 의료, 인구 및 노동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개혁을 함께 추진해 분야별로 과감한 규제 완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일본식 인재 중시의 기업 관행 등 강점을 지키면서 규제행정에 기반을 둔 경제운영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있는 것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기업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감시와 자율 규제가 강화됐는데도 일본은 이미 버린 행정 지도 및 규제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jplee@lgeri.com [867호] 2006.12.1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