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 탈출’탓할 수 있나
규제와 공격적 노조 피해 해외로…리더십 부재로 위기 관리 ‘구멍’ 기업들이 떠난다 |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경기 진작에 힘쓰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말 뿐이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 7836건이던 정규 규제는 2004년 7846건, 2005년 8017건, 2006년 8083건으로 증가했다. 각 지방자치 단체들은 투자 기업을 모시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간신히 투자 기업을 찾는다 해도 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규제다. 파주에 LG필립스 LCD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손학규 전 지사는 청와대와의 일전을 불사해야 했다. 준공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손 전 지사에게 “이제 속이 시원하십니까”라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경기도 기업규제 사례집에 따르면 2005년 대기업 23곳과 중소기업 22곳이 정부 규제로 투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 국가를 지향하는 세계 추세와 현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다. 해외에서 우대받는 기업도 한국에 오면 항상 몸조심하기에 바쁘다. FTA, 부동산 버블 등 국가 경제적 난제를 앞에 두고도 정부와 여당은 통합신당 논의에 함몰돼 있다. 당 운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노 대통령도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정치 게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 과정에서 경제와 국가 경쟁력은 사라지고 정치적 이해득실만 앞세울 것으로 경제계는 우려하고 있다. 대선 기간 전후로 외환위기와 카드 대란을 겪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치 리더십 부재를 넘어 이것이 경제의 발목을 잡을까 기업인들은 걱정하고 있다. 한 중견 기업 사장은 “요즘 기업인들이 만나도 정치 얘기가 주된 화제”라면서 “기업인들이 사업보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개탄했다. 그만큼 사회가 정치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반 기업정서 심각한 수준 강성 노조도 기업인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대기업일수록 고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쟁의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6년 6월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의 협약 임금인상률은 5.2%로 전년동기(4.7%) 대비 0.5%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5000인 이상 대기업의 인상률은 6.9%로 전년동기(4.5%) 대비 2.4%포인트 높아졌다.
노조 문제는 국제적으로 봐도 이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2000년 이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노사관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도맡고 있다. 2002년까지는 ‘거의’ 최하위(44위/47개국, 46위/49개국, 47위/49개국)였고, 그 이후 올해까지는 ‘진짜’ 최하위(59위, 60위, 60위, 61위)였다. 아무리 기업 하기 좋은 국가를 만든다고 해도 기업 하는 사람의 직접적 파트너인 노조문제가 이렇게 어렵다면 외국인 투자는 고사하고 한국 기업이 안 떠나면 다행이다. 오히려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규제나 노사분규가 눈에 보이는 어려움이라면 최근 몇 년간 고착된 반 기업정서는 훨씬 심각한 문제다. 몇 해 전 전경련이 사법연수생 100여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결과가 놀라웠다. 사법연수생들은 재벌에 대해 10명 중 7명이 부정적 인식을 나타냈다. 또 출자총액제한제 등 논란이 되고 있는 각종 재벌 규제도 대부분 찬성(80%)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수생들은 또 ‘재벌 오너의 사유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게 바람직하다’(60%)고 답했고, 재벌 창업자들은 정경유착으로 기업을 일으켰다(58%)고 봤다. 국민의 반 기업정서도 이에 못지 않다. 지난 6~7월 중앙일보 주관으로 한·중·일 3국에서 2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를 보면 한국의 반 기업정서는 3국 중에서 가장 높았다. 기업에 대한 호감은 한국 59.8%, 일본 72.9%, 중국 77.4% 순으로 한국이 가장 낮았다. ‘기업 오너가 사망 등의 이유로 개인 재산을 처리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중국인들은 63.6%가 ‘오너의 자유의사에 맡길 문제’라고 답변했지만, 한국인은 77.6%가 ‘일부 또는 전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용열 홍익대 교수는 “한국 경제가 한번 더 도약하려면 반 기업정서는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반 기업정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재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임금 낮은 생산성 안에서 갑갑한 기업들은 해답을 밖에서 찾고 있다. 주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보다 생산성이 앞서는 곳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대우일렉(옛 대우전자)은 아랍에미리트에 중동 최대 규모의 가전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국에서 이공계 출신이 일자리가 없는 것은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한국 기업을 유치하려고 혈안이다. 미국 앨라배마주는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주 헌법까지 고쳐가며 210만 평에 달하는 공장 부지를 제공했다. 기아차 공장을 유치한 미국 조지아주 정부도 부지와 인프라를 무상제공하고 세금 감면을 통해 4억1000만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은 기업 유치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투자를 결정한 해외 기업들에 세제 혜택은 물론 세관·은행·우체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한 기업이 불안정한 전력 공급을 불평하자 공단 안에 발전소까지 세워줬다. 한국 기업의 해외직접투자 건수는 2003년의 2806건에서 2004년 3765건, 2005년에는 4391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6년은 상반기에만 3000건을 넘어서 지난해보다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국내 설비투자는 지난 86년에 비해 5.5배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해외 직접투자는 35.5배나 늘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들이 생산거점 해외 이전 명분으로 글로벌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공격적인 성향의 노조, 고임금, 그리고 갈수록 심해지는 정부 규제를 해외 진출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기업 환경, 이런 추세라면 생산기지뿐 아니라 본사가 이전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러다 한국에는 빈 껍데기만 남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 [867호] 2006.12.1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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