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기사모음

노후엔 자식보다 현금이 중요

도일 남건욱 2007. 9. 2. 16:32
노후엔 자식보다 현금이 중요
포트폴리오 다시 짜기
변하는 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일 뿐…자산 우선순위 잘 정해야
은퇴 후 재무설계 전략④
은퇴 준비자인 40대 A씨가 재테크 전문가를 찾아가 물었더니 그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

“100% 위험한 일에 몸을 맡기시겠습니까? 아니면 3.7%(전체의 27분의 1)의 위험밖에 없는 곳에 인생을 맡기시겠습니까? 간접투자 하고, 분산투자 하고, 장기투자 하면 위험도를 96.3%나 줄일 수 있습니다.”

투자위험 27분의 1로 줄여라

은퇴 준비자들이 분산투자를 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펀드를 여러 개 가지고 계시네요.” 내가 A씨에게 물었다.

“네, 분산투자 차원에서 이것저것 나누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삼성그룹 적립식, 동양 모아드림 같은 각 운용사의 대표적 펀드들이네요. 분산투자를 운용사를 기준으로 진행하고 계시군요.”

“네.”

“운용사는 확실히 다른데, 제가 보기에는 펀드들의 성격으로 분리하면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장기·분산투자는 기본

사실 A씨는 더 나아가 대형주와 중·소형주를 비롯해 해외투자에도 골고루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현재 각 운용사의 대표적 펀드는 주로 대형주 편입 비율이 높은 주식형 펀드인 경우가 많다. 그간 3년여의 상승장에서 주가의 상승을 대형주(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같은 시가총액이 큰 기업의 주식)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중·소형주는 대형주와는 다른 궤적을 그린다. 대형주가 상승을 주도한 후 약간의 기간을 두고, 상승 곡선을 그린다. 하락시에는 더 빠르게 내려간다.

해외펀드는 우리나라 증시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기가 좋지 않아도, 나라별로 증시는 다르게 돌아간다. 연관성은 어느 정도 있지만, 우리나라 증시가 상승한다고 홍콩 증시가 동일한 수치만큼 상승하지 않는다.

A씨의 경우, 주식형 펀드의 투자가 하나의 변수에 의해 모두 동일한 궤적을 그리는 펀드로만 구성되어 있다. 즉 우리나라 증시가 하락장으로 접어들면 모두 하락하는 스타일의 펀드만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하락장에서 현금화를 한다면 필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금리 상승기엔 ‘채권형’낮춰야

같은 맥락에서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를 비교해 보자. 주식시장의 등락과 함께 웃고 우는 것이 주식형 펀드라고 한다면, 금리의 등락과 함께 웃고 우는 것이 채권형 펀드다.

다시 말해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는 갈 길이 다르다. 동일한 변수에 따라 동일하게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즉 증시 하락으로 주식형 펀드가 울음을 안겨주어도, 채권형 펀드는 그 영향을 덜 받아 웃음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채권은 금리 상승기에는 값이 떨어지고, 금리 하락기에는 값이 오른다. 채권형 펀드는 채권이 지급하는 금리만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채권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도 중요한 수익원이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기에 채권형 펀드는 고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지속적인 금리 상승기에는 채권형 펀드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수익을 고려한다면 채권형 펀드보다는 잠시 은행의 고금리 상품으로 달려가는 게 상책일 수도 있다.

해외펀드 비중은 30% 이하로

해외투자는 신중함을 요한다. 환율 변동성이나, 각 나라의 상황 변화, 외국기업의 실적 추이를 우리가 알 수 없고 잘 알아볼 수도 없다. 그런 대상에 투자하는 게 해외투자다.

전문가를 통해 간접투자를 하고, 적립식으로 기간을 분산해 투자한다고 해도, 해외펀드 투자는 투자자가 대략 예측 가능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또 투자 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품이기에, 상품 자체의 위험성을 사전에 체크해야 한다.

현재 재무상담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새겨듣자. 투자성향별, 연령대별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때도 해외펀드 투자는 운용자산의 3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투자자산의 30%가 넘는 건 위험하다.

지역적 투자 분산은 국내 증시와 영향이 없는 지역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보통 국내 증시와의 상관계수가 0.5 이하인 지역을 말하는데, 신흥시장(이머징 마켓), 자원 중심 지역(남미, 러시아 등), 유럽을 들 수 있다.


상품별 수익성과 위험 따져보자

포트폴리오의 구성은 수익성과 안전성의 조합에 있다. 어떻게 위험을 분산하면서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수익성을 추구하면 위험이 높아지고, 위험을 낮추면 수익률이 떨어진다.

상품별 연관성을 분산하기 위해 주식과 채권, 투자 대상, 지역(국내, 해외)을 도표를 통해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투자자의 투자성향에 따른 상품 선택과 직결되는 문제다.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표준화된 질문지는 없다. 금융사마다 각각의 상품을 고려해 별도로 체크한다. 다만 어떠한 유형의 질문도 그 핵심은 똑같다.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수익률을 기대하며 인내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라는 걸 알고 있자.

보통 투자성향은 무위험형, 안정투자형, 성장투자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 공격투자형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얼마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한다면, 얼마 이상의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큰 것’을 두고 공격투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연령대에 따른 투자성향을 알아보자. 통상적으로 위험도와 수익률에 따른 투자성향의 분석 이외에 중요하게 보는 잣대가 하나 있다. 투자자의 나이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연령대별로 라이프 사이클 주기에 따른 자산의 형성과 운용, 보존 필요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 성향보다는 객관적인 환경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분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보통 30대는 조금 공격적으로, 40대는 조금 안정적으로, 50대는 안정적인 투자, 60대는 자산을 보존하는 것으로 간략하게 연령대별 자산운용의 틀을 규정지을 수 있다(도표 참조).

은퇴 포트폴리오 준비하자

퇴직하는 시점에서 투자 포트폴리오가 특별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삶은 연속적이고, 라이프 사이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퇴직 시점에서 변하는 것은 가족 상황만이 아니다. 내 나이도 변한다. 앞으로 가족이 성장해 가면서 일어날 일들(교육, 결혼 등)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변하는 것은 가정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뿐이다.

연금수령 시기(은퇴)와 퇴직 시점을 구분하는 것은 자산을 운용할 시간을 버는 개념이다. 연금 상품이나 장기 투자된 상품이 조금이라도 복리나 장기투자의 수혜를 더 입을 수 있도록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노후가 조금이라도 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연금은 자식보다 든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후에서 중요한 것은 현금이다. 쓸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쓸 수 없는 부동산은 내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자산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안분할 내용을 정리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의 교육비나 결혼자금이 아니다. 내가 노후에 현금으로 쓸 필요자금이다. 필요자금을 활용 가능한 자산에서 먼저 준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남은 돈으로 자녀 교육비나 결혼 자금으로 사용하는 게 노후 준비의 기본자세다.

톨스토이는 단편소설에서 세 가지 즐거움(재롱·봉양·제사)을 주는 자식이라는 규정을 내린다. 하지만 지금은 세 가지 즐거움을 주는 자식은 없다. 자식보다 든든한 연금이 노후의 ‘믿는 구석’이 된다. 노후에 나에게 필요한 것으로 우선 순위를 바꾸어야 한다. 이게 얼마를 모으느냐보다 앞서야 한다. 이게 노후 준비의 기본이다.

시간의 마술 믿어보자

노후 준비는 당장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가는 속도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서구 유럽이 100년 동안 진통을 겪으며 진행된 연금의 사회적인 정착과 고령화를 우리는 앞으로 20~30년 동안의 짧은 기간에 모두 다 겪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불안감이 더 크다.

불안감은 노후상품을 내놓은 업체들에는 좋은 먹잇감이다. ‘노후 필요자금이 7억원이다, 8억원이다, 15억원이다’는 식으로, 전자계산기의 숫자만으로, 각 노후 관련 업체들은 우리를 떨게 만든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숫자와는 분명 다르다. 숫자와 싸울 필요도 없다. 우리 집의 상황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 준비해 나가면 된다. 50줄에 접어든 이들은 아직 젊다. 은퇴 시기를 65세로 잡는다면 앞으로도 15년을 일하면서 준비할 수 있다. 40세라면 25년을 준비할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해 준비를 못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조금 더 일찍 노후를 준비하면, 할 수 있다면 좋다. 시간이 주는 복리효과와 장기투자의 안전성을 통한 고수익의 추구가 한층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더 나은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아주 좋은 그리고, 검증된 방법이다.

자산의 투자성향이나 나이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복리효과를 볼 수 있도록 장기간 투자하도록 하자. 이게 시간이 주는 마술이기도 하다. 막연한 불안감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단기간의 수익률이 아니다. 그건 바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