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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의 인생 3막] “점심 뭐 하지? 설렁탕이나 먹지”

도일 남건욱 2007. 9. 16. 13:15
[이정숙의 인생 3막] “점심 뭐 하지? 설렁탕이나 먹지”
자기가 묻고 자기가 결론 내면 안 돼…아랫사람에게 결정권 줘야
그에게 별 생각 없이 최근 출간한 『행운을 부르는 대화법』을 선물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가 전화로 조심스레 물었다.

“그날 제가 말꼬리 잡은 것이 불쾌하셨나요?”

나는 그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는 책 제목만 보고, 며칠 전 그와 사소한 입씨름을 했을 때의 불편함을 표현하려고 책을 보낸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 책이 내가 쓴 것이라는 것도 몰랐다. 나는 곧 “내가 이번에 낸 책이야. 읽어주면 고맙겠어”라는 쪽지라도 같이 보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과 대화를 꺼리는 이유는 이처럼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무게감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나는 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이 정도의 일로도 민감하게 나오는데 나이가 많고 지위가 좀 높다고 해서 모든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리고 “내 결정에 따르라”고 말한다면 아랫사람은 얼마나 불편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깨지고 다쳐도 직접 체험하고 깨닫기를 원한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애들도 멋대로 걷다가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무릎이 깨진다고 외쳐도 기어이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어른들은 사람의 이런 기본 속성을 잊고 “내가 해 보았더니 그렇게 걷는 것은 위험하더라”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상대방은 이런 배려가 불편할 따름이다. 마치 서스펜스 영화의 줄거리를 미리 듣는 것처럼 떨떠름하다.

나이 들어 세대차를 줄이고 대화하려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일도 자신이 결론을 내 따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수록 상대방에게 결정권을 주는 게 낫다. 결정권을 주면 상대방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라 주는 것이 예의다. 나이 어린 사람은 자기가 결정한 일로 윗사람을 기쁘게 해 주면 기뻐한다. “나도 윗사람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 성취감을 안겨준 사람에게는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올 것이다.

나이 들어 아랫사람에게 진심 어린 존경을 받으려면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라고 묻고는 스스로 “오늘은 설렁탕 먹지”라고 결론 내지 말고 그들이 결론 낼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말해봤자 소용도 없는데 뭐”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할 테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 많은 상사가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린 다음 일을 시키면 부하 직원은 결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상사 또는 보스가 직원들에게 결론을 낼 권한을 준 다음 그 결론을 인정해 주면 부하 직원들은 결론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경험을 일반화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요즘처럼 변화가 많은 시기에는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이 자신의 나이와 직위 등을 내세워 “예전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우기면 그들은 당신이 나이 든 사장이든 전무든 상무든 “구식”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당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거나 건성으로 일해 일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당신을 비웃을 수 있다.

당신이 그들에게 결정권을 주고 그들의 결정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인정해 주면 그들은 진정으로 당신을 나이만큼 존경하고 자기가 내린 결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정숙 『인생 3막-열정은 나를 춤추게 한다』의 저자 [904호] 2007.09.0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