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영기사모음

[이정숙의 인생 3막] 말을 줄여야 대접받는다

도일 남건욱 2007. 9. 16. 13:20
[이정숙의 인생 3막] 말을 줄여야 대접받는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같은 말 반복하면 다 싫어해
“제가 어제 회장님이 와인 사는 것 봤습니다. 좋은 와인으로 사시더군요. 회장님이 좋은 와인을 기부하신다는 것을 제가 보증합니다.”

그는 그날 하루 동안 이 말을 열 번 이상 반복했다. 한 회사의 대표이사인 그가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모임의 회장이며 대기업 회장인 그 분이 모인 사람들을 위해 어떤 와인을 들고 왔는지를 그렇게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자 마자 이 말을 시작해 식사할 때, 식사를 마칠 때, 잠시 차를 마실 때, 그리고 와인 병을 딸 때와 잔에 따를 때 등, 시간 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와인을 협찬한 당사자로서야 같은 말을 반복해 들어도 싫증나지 않겠지만 와인을 얻어 마시는 입장에서는 딱 한 번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반복해 들으면 짜증이 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자기가 한 말을 금세 잊는 심한 건망증 환자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 “에이 알았으니 그만 좀 하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게 만들었다.

사람은 나이 들면 별 거 아닌 일을 반복적으로 말해 듣는 사람을 식상하게 하기 쉽다. 나이가 들면 두뇌가 좋던 사람도 기억력이 떨어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자기가 한 행동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반면에 그 말을 들어야 하는 젊은 사람은 기억을 지속하는 시간이 길어 같은 말을 반복해 들으면 짜증이 난다. 말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제발 그만 좀 하시지”라는 생각만 든다.

마음을 닫고 건성으로 듣게 된다. 상대가 나이 든 상급자일지라도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길고 지루하게 말하면 듣는 데서는 “정말 말씀을 잘 하십니다”라는 입에 발린 말을 해도 돌아서면 친한 동료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정말 ○○ 말 들어주느라고 죽을 뻔 했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알잖아. 그 사람 말하는 스타일. 고장 난 레코드판 듣는 기분 말이야. 이미 수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 또 들어야 하니 어찌나 졸리던지… 그 사람 눈을 속여 졸려니 여간 힘들지가 않더라고.”

그와 동년배인 그의 동료 역시 “맞아, 나도 그렇게 걸려서 남은 일 처리 다 못 하고 야근 한 적이 많아”라고 맞장구 칠 정도라면 당신은 직급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귀를 막고 당신이 실컷 떠들도록 놔두면서 “빨리 좀 끝내시지”라는 생각만 할 것이다. 당신을 마음으로 존경할 수 없어 당신의 직급에 맞는 형식적인 대접만 하고 마음으로부터는 무시할 것이다.

나이 들면 기억의 지속력이 떨어지는 반면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 습득한 지혜 등을 후세에 알리고 싶은 새로운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며, 상대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습관이 생긴다.

아집이 강한 사람은 “젊은 애들이 하는 말은 다 쓸데없는 말”이라고 무시하고 자기 말만 하려고 해 젊은 세대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나이 든 사람의 독특한 경험이 새로운 사회 시스템 하에서는 일반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경험이 아무리 독특해도 한 번 이상 되풀이해서 들을 가치를 못 느낀다.

부자 할아버지를 둔 한 대학생은 “우리 할아버지는 정말 부자입니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다른 데서는 먹을 수 없는 진귀한 음식과 멋진 와인도 주십니다. 사양해도 용돈까지 듬뿍 주시지요. 그런데도 할아버지 댁에는 잘 안 갑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물질적인 것은 충분히 제공해 주지만 말할 자유를 안 주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독특한 경험만 들려줘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물질적인 혜택보다 말할 자유를 더 원하는 것이다. 나이 든 다음 세대 간의 의사소통을 단절시키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존경 받으려면 의도적으로 말수를 줄여야 한다.
이정숙 『인생 3막- 열정은 나를 춤추게 한다』 저자 [905호] 2007.09.1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