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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투쟁 얼마나 값진가

도일 남건욱 2007. 9. 16. 14:11
자신과의 투쟁 얼마나 값진가
박삼구 회장 “사과도 내가 한다”…라응찬 회장 “내가 욕 먹겠다”
고독을 정면돌파한 CEO들
지난해 해고됐던 직원을 전원 복직시켜 화제가 됐던 GM대우 부평공장의 부활스토리를 보면, CEO의 외로운 선택과 투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평공장에선 날만 새면 파업이 일어나 공장이 멈췄다.

당시 공장 책임자였던 한익수 전무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빗자루를 들고 켜켜이 쌓인 공장 바닥을 쓸어내기 시작한 것. 이를 지켜본 직원들 모두 “쇼를 하고 있다”며 코웃음쳤다. 한 전무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파업 중인 직원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가 고장 난 환기시설을 복구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전무는 환기시설을 고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장 바닥과 설비에 두껍게 쌓여있는 먼지였다. 아무리 환기시설이 좋아도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먼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에 외로웠지만, 한 전무는 계속해서 비질을 했다. 몇 주가 지나도 ‘쇼’가 계속되자 처음에 비웃던 직원들도 하나 둘 청소에 동참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공장은 반도체 공장 못지않은 청결한 상태로 탈바꿈했다. 그제서야 직원들은 한 전무의 ‘외로운 실천’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이때부터 주인의식을 갖게 된 직원들은 각자 담당 청소구역을 정해 최고의 청결상태를 유지했다. 이것은 품질혁신과 의식개혁으로 이어져 GM대우 부활 신화를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공장장의 ‘외로운 빗자루’가 최악의 부평공장을 4년 만에 전 세계 GM계열사 가운데 최고 성과등급을 받는 공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한 전무는 현재 자신이 주도한 혁신 스토리를 쓴 책 『우리는 우리를 넘어섰다』를 영문으로 번역해 들고 GM대우 폴란드 공장으로 가서 재연하고 있다.

외로운 빗자루가 회사 살렸다

CEO는 하루에도 수없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CEO의 권한이자, 임무다.

CEO의 방침이 직원들에게 때론 고집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인기를 추구하는 CEO가 되기보다는 회사를 잘 키워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려는 CEO라면 그런 외로움쯤 극복해야 한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은행 상무 시절, 청탁 근절을 절대원칙으로 삼고 이를 제도화해 뿌리내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인들로부터 욕을 먹어도 할 수 없고, 정치권에 밉보여 불이익을 당해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라 회장은 그 어떤 청탁도 딱 잘라 거절했다.

신한은행이 생긴 1980년대는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정치권의 압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한번은 군부 실세가 신한은행 모 지점장을 임원으로 승진시켜달라고 라 회장에게 압력을 행사해 왔다.

당시 인사담당이었던 라 회장은 은행감독원장을 직접 찾아가 “그 사람 하나 임원 시키자고 그동안 지켜온 원칙을 깰 수 없다”고 설득했다. 사흘 뒤 유력인사로부터 “없던 것으로 하자”는 전화가 왔다. 행여 칼바람이 불까 두려움에 떨던 직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라 회장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해당 지점장은 끝내 사표를 내고 떠나야 했다. 그는 언제나 직원들에게 “여러분은 일만 열심히 하시오. 뒷일은 내가 다 맡을 테니”라며 외로이 외풍을 막아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사장이던 1994년 말, 이른바 ‘방울뱀 사건’이 일어났다. 사내 정보망(인트라넷) 게시판에 익명의 한 직원이 회사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상사와 회사 경영진을 향한 독설로 가득했다.

독설을 뿜어냈다고 해서 익명의 글쓴이에게 ‘방울뱀’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자칫 방울뱀의 독설이 일파만파로 회사 담장을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발단은 박 회장이었다. 누구든 무슨 말이라도 허심탄회하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도록 지시한 사람이 바로 박 회장 자신이었던 것이다. 박 회장은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방울뱀을 알고 있겠지?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어떤 이는 “그런 직원은 끝까지 추적해 처벌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당장 잡아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단호하게 “그가 누군지 알아도 그에게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방울뱀 사건은 일단락됐고, 그 방울뱀은 지금까지도 아무 탈 없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 파업으로 결항 사태가 빚어지자 아시아나항공은 신문에 대국민 사과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홍보실에서 작성한 사과문 시안을 보고받은 박 회장은 호통을 쳤다. 사과 주체가 ‘아시아나항공 임직원 일동’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임직원의 이름으로 사과하느냐”며 “경영 최종 책임자인 내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재하라”고 지시했다.

망한 회사 직원들은 새로 부임하는 사장에 대한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마치 점령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개혁을 한다며 안 그래도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우의제 사장은 하이닉스의 워크아웃 조기 졸업이 결정된 날에도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다. 대신 “들뜨거나 자만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모든 직원에게 돌렸다.

정상에 서 있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며 자기 만족은 실패를 낳고 지금의 껍질을 벗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였다. 직원들에게 그토록 자상하게 의욕을 북돋워준 그였지만 정작 성공의 문턱에 도달했을 때는 오히려 의연함을 보이고 직원들을 단속한 것이다.

“인기 얻자고 회사 망칠 순 없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LG카드 사장 시절, “망한 회사의 CEO는 조폭 두목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의 ‘조폭 경영론’의 핵심은 회생 기간 내내 조직을 긴장시켰다. 회사 전체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노조와도 타협이란 없었다.

취임 직후 노조 간부들을 만나 “나와 한 덩어리가 돼 회사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지금 이야기해달라”며 “안 하겠다면 나는 지금 그만두겠다”고 정면돌파를 강행했다. 그의 외로운 고집으로 끝내 노조로부터 무분규와 조기 출근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사장도 회생을 위해서라면 무서운 CEO가 돼야 한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98년 파산으로 치닫던 코리안리재보험(당시 대한재보험) 대표 자리를 떠맡은 후 조직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을 단행했다. 그 결과 아시아 1위의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해병대 출신이어서인지 그의 경영 스타일은 ‘독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취임하자마자 전체 인원 320여 명 중 3분의 1을 정리했다. 퇴출 대상에 전직 노조위원장까지 오르자 노조와의 갈등을 우려한 임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정치권 압력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 명이라도 예외를 두면 원칙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전직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대상자 전원을 예외 없이 정리했다. 전 과정을 투명하게 처리해 누구도 반론을 재기하지 못했다. 35년 동안의 누적 당기순이익이 827억원에 불과하던 코리안리재보험은 그의 재임 8년 동안 3700억원의 누적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CEO가 개혁을 하고 혁신을 추진하다 보면 직원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혁신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직원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면서 계속 밀어붙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성공한 CEO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런 외로움까지도 관리할 줄 알았다는 사실이다.



박삼구 회장은 자신을 비난한 직원을 감싸 안았다.

라응찬 회장은 인사 청탁을 결연히 거부했다.

박해춘 행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조와 맞섰다.

박종원 사장은 취임 직후 직원 3분의 1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