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세계 최강 상권의 핵
‘대연방 코리아’의 탄생 반경 1000㎞ 안에 사람·돈·상품 집중 … 한국이 네트워크 무역구조 주도해야 곽재원의 ‘21세기 공간 경제학’① |
세계 시스템 변혁의 엔진은 정보통신을 비롯한 망(네트워크)혁명을 통한 넓은 의미에서의 물류비 절감에 있다. 사람·돈·상품·정보가 국경을 넘나들며 지구적 규모로 경제·사회 시스템을 재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국경의 역할이 줄어드는 대신 국지경제권이 형성되고 도시와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동아시아를 보더라도 주요 도시 중심으로 다핵적 경제로 발전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통합과 국경 없는 경제의 진전은 지역통합의 대표적인 모델로 단순한 지리경제를 넘어 공간개념을 넣어야 이해가 된다. 곽재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이 쓰는 ‘21세기 공간 경제학’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여러 경제 현상을 정치·사회·문화 등 입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그 시사점을 추려내는 것이다. 인구 4억 명 전후, 개인소득 연 3000~3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복합국가가 있다. 이 나라는 세계 제1의 철강·조선·자동차·반도체 생산량을 자랑하며, 각종 전자부품과 화학소재의 세계 최대 공급지이기도 하다. 이제는 세계의 소비대국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반경 1000㎞의 원을 그리면 이 나라의 영역이 된다. 한반도가 그 안에 들어가고, 중국 동북3성과 베이징 일대, 그리고 산둥반도에서 상하이까지 포함된다. 북으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껴안는다. 남쪽으론 일본의 규슈지방이 담기고 오사카, 고베 일대가 원의 안팎에 놓인다. 한반도가 중심이 된 이 복합국가의 이름은 ‘대연방 코리아’(The Great Korea). 반경 1000㎞는 비행기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세계가 지구촌이란 이름으로 하루 거리로 좁아진 것에 비하면 한동네나 다름없다. 2008년 새 정부가 출범하는 데 맞춰 이런 ‘대연방 코리아’를 꿈꿔본다. 한국이 신진 선진국으로 웅비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비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환(環)황해권이나 환동해권이란 이름으로 주변국들과 경제협력을 해왔으나 이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대연방 코리아를 상정한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옌볜-선양-다롄-베이징-칭다오-상하이-후쿠오카-고베를 일주해 보면 한반도가 모든 교류의 중심에 서있음을 알게 된다. 한반도는 거쳐 지나가는 정거장이 아니라 사람·돈·상품이 모이고 문화가 창출되는 극동의 허브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한반도가 매력적이어야 한다. 먼저 남한의 발전력에 북한의 충분한 개방이 합쳐져야 한다. 한반도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문턱을 낮춰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globalization+localization) 전략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매력은 최근 현지 취재에서 목격했다. 러시아의 하산(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는 북한 접경지역)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하산역에서 두만강 철교를 통해 청진으로 가는 철도는 앞으로 늘어날 물량을 소화할 수 없어 육로로 갈 길을 뚫고 있다. 이에 필요한 두만강 새 다리도 놓을 예정이다. 먼저 북한의 ‘문’ 활짝 열어야 그런가 하면 러시아 측 철도 전문가들이 북한에 들어가 북한의 협궤철도와 러시아의 광궤철도를 직접 잇기 위한 북한 철도 개량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 열차가 청진에 화물을 내려놓은 다음 북한 열차로 바꿔 싣고 있다. 중국의 훈춘-나진-하산의 3국 국경 삼각지대가 극동 물류중심으로 크게 변모할 전망이다. 러시아 측은 북한지역의 항만건설에도 손을 대고 있고, 장차 원산을 거쳐 부산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이나 가스 파이프라인 연결도 남북한 측과 논의 중이다. 군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1992년 개방된 이래 도시 리노베이션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모스크바 중앙정부로부터 바이칼-극동 개발특구로 지정받은 데다 2012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어서 개발 열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의 KT가 통신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고, 건설노동자들은 거의 북한 측이 제공하고 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중국 단둥은 이미 물류단지와 공산품의 부품생산단지를 만들고 있고, 위화도를 비롯한 압록강의 섬들을 물류거점으로 만든다는 청사진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단둥은 외국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물동량의 70%를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3성에서 나는 곡물과 철광석·석탄 등을 실어 나를 철도망이 대거 확충 중에 있다. 일본 규슈의 중심 후쿠오카는 장기적인 포석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이 뚫리면 일본은 대륙으로 이어지는 물류망을 확보하고 동남아시아에 건설 중인 물류망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치인 등과 재계가 합동으로 만든 재단법인 일·한해저터널협회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를 고비로 한·일 간의 관광객이 우리 쪽에서 나간 숫자가 많게 역전된 것도 이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한반도는 물류 전문가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3양3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다. 양은 선양-평양-한양(서울)을 잇는 망이고, 산은 하산-원산-부산을 잇는 것이다. 한·중·일 3국 간의 무역은 2005년 한국이 중국에서 232억 달러의 흑자(수출 619억 달러, 수입 386억 달러)를 봤고, 한국이 일본에서 244억 달러의 적자(수출 240억 달러, 수입 484억 달러)를 봤다. 일본은 중국에서 164억 달러의 흑자(수출 1005억 달러, 수입 841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자료) 중국은 두 나라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데 그 몇 배의 흑자를 미국에서 기록하고 있다. 한국으로 보면 일본에서 잃은 것을 중국에서 만회하고 미국 등 다른 시장에서 흑자를 내는 구도다. 이 같은 절묘한 구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중국은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부품, 소재, 장비 등을 수입해 완성품으로 제조하는 구조(3각무역과 중간재 상호공급)지만 향후 중국이 부품, 소재, 장비분야에서 기술력이 향상돼 경쟁력을 갖게 되면 중국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무역규모는 축소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무역협회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진출한 일본계 제조기업의 30%가 한국기업(중국 주재 기업 포함)과 거래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거래확대를 원하고 있다. 양측은 ‘규모의 경제성’ ‘경영자원의 상호보완’ ‘스피드’ 등을 이유로 제휴를 확대해 가는 모습이다. 한반도는 강해지는 중국의 성장엔진이 되는 동북3성과 황해 연안지역, 일본 경제의 1할을 차지하며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해 고성장을 노리는 규슈와 지정학적 결합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자원을 무기로 한 극동 러시아가 제3의 세력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거침없이 떠오르는 극동 러시아 이런 환경을 협력으로 유도하는 선도력을 갖자는 것이 ‘대연방 코리아’의 전략적 개념이다. 지난해 9월 일본에서 개최된 제1회 한·중·일 물류 장관회의에서 ‘동북아시아의 끊김 없는(seamless) 물류시스템’ 구축을 공동성명으로 채택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000km 안에 형성된 자동차·철강·반도체·조선·에너지·바이오 등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세계적인 제조 거점으로 키우고 한반도를 허브로 한 네트워크 무역구조를 한국이 주도해 만들 기회가 왔다. 그 다음은 세계적 창조거점, 세계적 문화중심이 되는 지식창조사회(brain power society)를 선도하며 동아시아의 르네상스에 공헌하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단둥, 후쿠오카 등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모습은 한국에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하나의 단초인 셈이다. |
블라디보스토크·단둥·후쿠오카= 곽재원 중앙일보 경제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장 | [919호] 2007.12.24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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