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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학교보다 지독한 곳”

도일 남건욱 2008. 2. 25. 21:39
“기업은 학교보다 지독한 곳”
GE 아시아 CLO가 말하는 지식경영론
배우지 않고 회사생활 할 수 없어…이멜트 회장도 1년에 45일은 사내 강사

▶니나 당크포트 네벨

“회사가 학교야?”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에서는 이런 호통 섞인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업무시간에 책을 읽거나, 상사에게 교육 기회를 좀 달라고 하면 여지없이 돌아온 말이었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니 배울 건 학교에서 배우고 오든지, 아니면 자기가 알아서 공부하고 오라는 얘기다. 거기엔 ‘쯧쯧…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라는 한심한 눈초리도 배어 있었다.

CLO(Chief Learning Officer). 한국말로 ‘최고학습담당자’쯤 된다. GE의 니나 당크포트 네벨의 명함에는 ‘아시아/중국 CLO’라고 적혀 있다. 회사에서 학습을 관할하는 게 그의 임무다.

그에게 물었다. “회사가 학교냐? 회사는 일하는 곳 아니냐?”고. 간단한 질문만큼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회사가 학습 조직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사실 ‘회사가 학교냐?’는 논쟁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 많은 기업에서 회사 조직을 학습 조직으로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대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지식사회, 지식 경제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래 회사의 경쟁력은 설비나 상품이 아니라 지식임이 자명해졌다.

100년이 넘은 구닥다리 기업 GE를 세계 최강으로 바꾼 잭 웰치 전 회장은 이런 변화의 선봉에 섰고, 현 CEO인 이멜트 회장 역시 1년에 45일 이상을 사내 강사로 활동한다. 그들은 스스로 부하들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니나는 그런 GE에서 아시아와 중국의 학습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지식 기업인 GE의 학습은 직원에게 책 읽히고, 독후감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세미나를 열고, 강연을 듣는 것도 일부분이다. 니나가 말하는 지식 기업, 인재 육성, 학습 조직은 어떤 것일까? 직접 인터뷰에 e-메일 인터뷰까지 추가해 의견을 들었다.

가르치고, 공유하고, 배워야

회사를 학습 조직으로 바꾸려면…

■ 회의를 성공 경험의 장으로 만들어라
■ “지난주 무엇을 배웠나,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나?” 물어라
■ Leader를 Teacher로 만들어라
■ 사내 강사를 육성해 가르치고 배우게 하라
■ 동료의 성장을 방해하는 리더는 퇴출시켜라
-근래에 한국 CEO들이 교육과 학습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한국 기업의 교육은 아직까지 주로 독서, 강연 등에 의존한다. GE도 그런가?
“독서·강연·토론은 물론 학습 활동이다. 하지만 GE에는 이런 공식적인 학습 활동 외에 다양한 보완책이 있다.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사전 연구나 업무 후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일상 업무에 적용하는 것도 학습이다. 업무와 학습을 별개로 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예를 들어 대부분의 스태프 미팅이나 관리자 회의에서 항상 ‘경험의 공유(sharing of practices)’라는 시간이 있다. 회의에서 리더들은 어떤 식으로 문제(challenge)에 접근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공유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거기에서 배울 수 있다. 이건 고위급 임원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구성원이 해야 하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일하면서 배우는 셈이다. 책 읽고, 강의 듣는 것이 죽은 지식이라면 업무를 통해 깨닫는 노하우는 살아 있는 지식이고 현장 지식이다.

-공식적인 학습이 효과적인가, 업무에서 배우는 것이 효과적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mindset)이다.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 아닌가?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세상은 앞으로 나가는데 자신만 뒤처진다. 그걸 안다면 누구나 기꺼이 배우려 할 것이다. 많은 기술과 아이디어들이 매일 새롭게 나오고 있다. 그러니 배우지 않고 회사생활 할 수 있겠는가? 기업은 학교가 아니다. 학교보다 더한 곳이다. 그러니 학습에 소홀할 수 없다.”

-학습을 어떻게 회사생활에 접목시키나? 한국 기업들은 학습 시간과 회사 일하는 시간이 분리돼 있는 경우가 많다.
“GE의 모든 미팅에는 학습이 항상 고정된 어젠다다. 리더들은 회의 참석자에게 항상 ‘지난주에는 무엇을 배웠나’ ‘그 후 일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를 질문한다. 또 모든 직원은 자신이 이번 회의를 통해 동료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공유하고, 배울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GE는 임직원에게 사업분야나 국경, 부서 등을 초월해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I can learn from everyone’. 이는 실제로 사업 결과로도 증명되는데, GE 항공사업부가 보유한 원격 엔진 점검 기술을 GE 헬스케어에서 배워 원격진료에 활용하는 것이 그 예다.”

-‘GE에서는 학습이 비즈니스 프로세스’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GE는 회사 운영의 모든 과정에 학습과 관련된 일이 포함돼 있다. 한 예로 매년 1월 전 세계 GE의 CEO들이 모이는 글로벌 리더십 미팅에서도 전체 시간의 50%는 세계 각국 리더의 성공 경험을 나누는 데 쓴다.”
GE는 회의 자체가 학습과 공유의 장이다. 현안만 논의하는 회의가 아니라 노하우와 지식을 축적하고 공유하는 회의가 되면 회사의 지식경영은 저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회의뿐 아니다.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은 경영 프로그램에 있어 강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제프 이멜트 회장도 1년에 45일 이상을 크로톤빌에서 강의하며 보낸다. 회의·강의·평가를 통해 GE는 직원에게 지속적인 자기 계발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리더가 잔소리꾼 돼선 안 돼

-여전히 일부 CEO는 회사에서 왜 그렇게 교육에 몰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CEO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나?
“기업에 인적 자원은 경쟁사와 가장 본질적인 차별점(the most essential differen tiator)이다. 다른 모든 것은 벤치마킹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최상의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이 말은 직원의 학습에 투자하라는 얘기다. GE는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직원 훈련을 위해 쓴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옳은 일이라는 데 확신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하고 있다.”

-학습이 진짜 중요한가? 그렇다면 GE에서 학습 덕에 성과가 올라간 예가 있는가?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adaptable) 조직만이 요즘처럼 빨리 변하는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조직을 유연하고, 융통성 있고, 혁신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직원들의 학습이다. GE는 혁신의 중요성을 잘 안다. GE에서는 ‘한계를 돌파하는 혁신(Innovation Break through)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이멜트 회장이 자금을 지원한다. 최근 환경 관련 사업인 에코메지네이션(상상력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신환경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전략)도 한계를 돌파한 혁신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과들이 다 학습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식 경제에서는 ‘업무 조직’을 ‘학습 조직’으로 만들어야 이길 수 있다고 잭 웰치 전 회장이 수차례 강조했다. 어떻게 업무조직을 학습조직으로 만들 수 있나?
“GE에서 리더는 한편으로 가르치는 사람(teacher)이다. 이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리더가 잔소리꾼(teller)이 되거나 명령만 내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리더는 자기 동료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주고,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니나는 “성과를 많이 내더라도 조직을 무너뜨리는 리더들이 있다. 그런 리더들은 자신의 성과를 위해 주변 사람의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리더들은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고 부연 설명했다.

업무 조직을 학습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을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성과를 내도록 과업을 주고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925호] 2008.02.1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