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떠들어도 시간은 간다
반복되는 관료개혁 실패의 역사 저항·아부·방해·결탁으로 개혁 무력화…조직 줄여도 시간 지나면 다시 비대 |
“한국의 금융위기 원인과 관련, 무엇보다 관료의 무능이 호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관료들은 금융기관의 자금 이동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그들은 정치와 결탁돼 있었다. 관료들은 또 경제위기를 속이고 엉터리로 보고했다… 한국인들은 저축도 많이 하고, 교육도 많이 받고, 일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이런 경제위기를 맞았다면 강간 당한 감정을 가져야 한다. 한국의 경제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관료들이며, 한국이 경제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관료들을 모두 국외로 추방해야 한다.” 망자가 된 그가 요즘 ‘관료사회에 부는 칼 바람’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추방 안 했어?” 관료들은 추방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0년간 큰 정부를 지향한 정권의 품속에서 왕국을 더욱 강하게 하고, 퇴직 후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왜 집단매도하느냐고. 과연 그런가? 다른 얘기도 필요 없다. 관료사회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얘기만 모아도 답은 나온다. 2급으로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전직 관료의 얘기다. “관료 벽을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당한 개혁에 대항하면 몇몇 고위직 옷을 벗기면 된다. 그러면 싹 조용해진다. 파벌이 심한 곳은 수장을 치면 된다. 내가 생활해보니, 관료들 스스로 바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장관이 마음에 안 들면 쓸데없는 행사까지 참석하게 하면서 일정을 빡빡하게 짜서 뺑뺑이를 돌려 결재할 시간도 안 주는 곳이 관료조직이다. 개혁하겠다고 들어온 장관들도 이러면 다 나가떨어진다. 그러면 국장급이 슬쩍 얘기한다. 관료들하고 친해지라고. 그러면 개혁은 물 건너간다. 효율적인 정부 만들자고 하면, 효율적으로 일하게 새로운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 관료들이다. 보유세 높이고 거래세 낮추자는 부동산 안을 사무관이 내면, 국장이 계산기로 자기네 집 재산세 계산하는 사람도 봤다. 대국민 서비스보다는 자신의 출세와 영달이 목적인 사람이 훨씬 많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25년간은 그랬다.” DJ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는 관료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더 살벌한 자아비판도 많았다. 배국환 현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이 2004년 행정자치부 국장으로 있을 때 내부 연찬회에서 한 얘기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관료가 많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고시 출신 젊은이가 관료사회에 들어오면 정부미가 된다. 그러면서 민간부문 사람들보다 우수하다고 착각한다. 민간이 갖지 못한 법률 집행권과 정보를 갖고 독점적 지위에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관료는 나이와 경력이 벼슬이다. 조선시대 조광조는 임용 3년 만에 대사헌이 됐는데, 500년이 지난 요즘엔 사무관이 1급 되기 위해서 29년을 기다려야 한다. 관료조직에 기름이 잔뜩 끼어있다. 아무리 조직을 줄여도 언젠가는 다시 늘어나고 비만으로 갖은 질병이 나타난다. 쉬운 일을 하든 어려운 일을 하든 관계없이 봉급이 같은 현재의 동일계급, 동일임금 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같은 계급에서도 보수가 크게 차이 나도록 보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보수규정도 폐지해 연봉계약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지, 부처를 위해 일하는지 모를 정도로 부처 이기주의도 만연하다.” 역대 정부 번번이 실패
“내가 지금 뭐 얘기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정부의 큰 틀에서 제도 같은 것이 바뀌지 않는 한 크게 변할 수 없는 곳이 공직사회지요. 별로 얘기할 것이 없어서 생략합시다. 얘기해야 입만 아플 테니.” 관료사회는 왜 변하지 않는가? 권오규 부총리가 “재경부는 영원하다”고 말했듯이 “권력은 영원하다”는 믿음을 왜 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정권을 잡자마자 서슬 퍼런 칼을 휘둘렀던 지난 역대 정부는 왜 모두 관료 개혁에 실패했을까? 행정학자들은 “관료들이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역대 정부는 늘 정부조직 개편을 서막으로 정부혁신을 추진했다. 문제는 어김없이 임기가 지날수록 정부가 다시 비대해지는 ‘요요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 배경에는 막강한 관료 권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고 가장 큰 폭의 조직개편을 했던 것은 김영삼 정부였다. YS는 1993년 출범 직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해 상공자원부(2차 정부조직 개편 때 통상산업부로 개칭)로 개편하고,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를 문화체육부로 통폐합하는 등 정부 규모를 줄였다. 공무원도 1400여 명이나 퇴출시켰다. 이때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여파로 ‘작은 정부’에 힘이 실릴 때였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정통부와 중소기업청이 신설되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장관급 부처로 격상됐다. 임기 말에는 해양수산부를 신설했고,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재정경제부를 대폭 확대했다. 98년 출범한 DJ정부도 처음에는 부총리(재경원, 통일원)제도를 없애고, 공보처와 정무장관을 폐지했다. 중앙부처 수도 줄이며 ‘작은 정부’를 표방했지만, 개혁의지가 꺾인 2차 정부개편 이후 다시 부처가 비대해졌다.
DJ정부는 외환위기 탈출이 최대 현안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부 혁신에 무게를 싣기 힘들었다. 다만 YS는 박윤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DJ는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를 각각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세워 경제개혁을 시도했지만, 모두 기존 경제관료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사실상 실패했다. 문제는 참여정부였다. 관료주의 혁파의 기회였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 않았다. 하드웨어적인 정부혁신도 단행하지 않았다. ‘공직사회가 스스로 개혁하라’는 모호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출범 초기 개혁성향의 교수그룹을 대거 관가에 포진시키며 고시 출신 관료가 고위직을 독식하는 벽을 넘으려고 했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아 주도권을 다시 관료 출신들에게 넘겨줬다. 결과는 ‘2원 18부 4처 18청 13위원회’라는 역대 가장 뚱뚱한 정부가 탄생했다. ‘공직사회에는 출세기회 확대와 조직 보호를 위해 부하를 늘리려는 경향이 있어 일의 유무나 경중과 관계없이 공무원 수가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 그대로였다. 최근 정부조직 개편과 맞물려 통폐합되는 부처는 인수위와 국회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부처 없애지 말아달라는 거야 그럴 수 있지만, 통폐합되더라도 부처 이름은 남겨달라는 대목에서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통합신당의 한 의원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보다 훨씬 심한 로비가 들어온다”며 “일부 부처는 관련 산하기관, 관련 민간기업과 단체에 총동원령을 내린 곳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저항과 굴복의 생존논리
참여정부에서만 정부조직은 560여 차례 개편됐다. 장·차관급 관료는 이전 정부보다 32명 증가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수만 2만7000여 명이 늘었고, ‘관료는 모두 법령(규제) 하나씩을 움켜쥔다’는 말처럼 정부 규제건수도 늘었다. 최근 인수위가 ‘경제규제 50건당 정원 1% 감축’ ‘각 부처가 시행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등 다소 무리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관료사회의 규제 만능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관료사회는 개혁의 바람에 일단 저항하고 본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에 따르면 관료가 저항하는 요인은 ‘개혁이 가져올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불안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과 재교육 부담’ ‘안정감이나 자존심의 손상’ ‘개혁이 개인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생각할 경우’ 등이다. 하지만 일단 저항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바로 생존을 위해 ‘영혼’을 판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 부분을 담당해 왔던 한 국장은 “참여정부의 정부혁신은 국민 체감도도 낮고, 효율적 추진에 한계가 있었다”며 스스로 5년을 총체적으로 부정했다고도 한다. 통일부는 “5년간 북한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이 많았고, 대북정책 효과가 미흡했다”는 자아비판을 했다. 한 부처 국장급 관료는 지인인 인수위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할 ‘팁’을 알려달라”고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대운하 건설을 반대했던 건교부는 이용섭 장관이 지난 1월 16일 “일방적 추진은 안 된다”며 새 정부와 각을 세웠지만, 내부에서는 “올 6월까지는 대운하 특별법 처리를 준비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관반민’ 조직인 금융감독원은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의 “금융감독기구 설치와 관련한 로비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심지어 금감원 직원이 설치한 ‘비상대책위원회를 폐지하라’는 장관의 지시도 묵살되고 있다. 한파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관료사회는 살아남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인적으로 발버둥 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통폐합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관료가 움켜쥐고 놓지 않는 과도한 특권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 한 부처에 오래 머무른 관료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규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자리를 거두고 이들에게 동료 공무원들의 규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게 한다”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는지 모른다. 한 전직 공무원은 기자에게 “관료들이 단체관람하면 좋을 것”이라며 한 영화를 추천해줬다. 내용은 이렇다. ‘한 노동자가 죽는다. 그 가족은 연금을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다. 하지만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서류가 미비하다며 퇴짜를 맞는다. 그 서류는 노동증으로 가족들이 관에 함께 묻은 것이었다. 미망인은 무덤 관리인을 찾아간다. 관료주의자였던 무덤 관리인은 무덤 파는 허가 서류가 없으면 관 뚜껑을 열 수 없다고 한다. 가족들은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하소연하지만 무관심할 뿐이다. 기어이 조카는 묘지 관리인을 죽이고 공동묘지에서 관을 훔쳐 나온다. 그러고 나서 가족들은 연금을 받기 위해 또 수많은 관공서를 돌아다닌다.’ 1966년 구티에레즈 알레아라는 쿠바 감독이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 ‘관료의 죽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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