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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시계는 쌩쌩 돌아갔지요”

도일 남건욱 2008. 3. 2. 10:35
“시청 시계는 쌩쌩 돌아갔지요”
음성직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이 말하는 MB
새벽 2시 집에 찾아가 결재 받기도…공무원에 기업 마인드 심기 안간힘
음성직(60)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사장은 자신만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자부한다. 음 사장은 3년 넘게 서울시 교통관리실장·교통정책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시장이던 이 당선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 당선인이 추진한 교통개혁의 ‘책사’ 역을 맡아 심야 시간대 지하철 1시간 연장운행을 비롯해 버스 노선을 간선-지선 연계형 갈아타기 시스템으로 재편하는 데 공을 세웠다.

무료환승 체계, 버스중앙차로제를 도입하고 교통정보센터를 설치해 과학적인 버스 운행통제 시스템도 구축했다. 청계·삼일·미아·원남 고가를 폐쇄해 시내 교통지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서울광장 조성, 광화문 교차로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도로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었다.

음 사장은 이 당선인이 서울시를 ‘아침형’ ‘기업형’으로 만드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했다. “끊임없이 개선과 개혁하는 시장이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박혀 있었죠. 제게도 늘 ‘음 실장하고 나하고 민간인이 와서 얼마나 바꿔놓는지 공무원들에게 보여주자’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당선인은 형식을 깨는 것으로 서울시의 아침을 열었다. 형식을 갖추면 그만큼 돈과 시간이라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게 이유였다. 시청 공무원들이 오전 업무를 결재 받느라 다 허비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다. “이 당선인은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에 결재 받으러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통체계 개편으로 보고사항이 많았던 음 사장은 당선인에게 ‘거리 결재’ 받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시청 앞 건널목에 서 있는 당선인에게 다가가 결재판을 내밀었죠. 주위에 있던 공무원들이 아연실색했지만, 정작 당선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인했습니다. 과연 야전 CEO 출신답구나 했죠.”

당선인은 누구라도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필요하면 전화로 보고해도 좋다고 했다. “이 당선인이 미국 출장 때, 급한 보고사항이 있어 전화를 건 적이 있었죠.” 새벽 4시 일어난다는 걸 감안해 그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당선인은 자다 전화를 받았다. 시차 적응이 제대로 안 된 탓이었다. “놀라 얼른 끊으려 했더니, 웬걸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하고 보고를 다 받더군요.”

한밤중에도, 새벽 2시에 집으로 찾아가 결재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아 하거나 언짢다는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중요한 일이니까 이 시간에 찾아왔겠지’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고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긴 해도 아무 때나 보고하러 왔다고, 격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음 사장은 이 당선인을 가리켜 ‘멀티 CPU를 장착한 컴퓨터’라고 기억했다. “그것도 대용량이죠. 보통사람은 CPU가 하나여서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처리할 수 없지만, 이 당선인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각각의 일이 일관성 있게 이뤄지는 데다 처리 과정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다는 점이다. “도시계획이든, 교통이든, 문화든 어느 것이 들어와도 머릿속에서 옛날 데이터가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서울시 근무 시절, LA 시내 급행버스를 시승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음성직 사장.


“MB는 CPU 여러 개 장착한 컴퓨터”

음성직 사장이 말하는 MB

▶ 멀티 CPU를 장착한 리더
▶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믿는 현장형
▶ 길거리에서도 결재하는 실무형
▶ 신중한 판단, 거침없는 실행 ‘생각하는 불도저’
▶ 시작과 끝을 동시에 보는 직관과 통찰의 달인
음 사장은 이 당선인과 현장을 함께 돌았다. “현장을 뛴 리더는 어떤 일을 달성하는 데 현장에서 걸림돌이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알게 마련이죠. 이 당선인이 바로 그랬습니다. CEO 시절 건설 현장에서 온갖 기관과 제도에 부닥쳤을 것이고, 적잖은 민원이 앞을 가로막았을 테죠.”

그런 오랜 경험을 통해 이 당선인은 현장에서 먹힐 것이라고 생각지 않으면 절대로 프로젝트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게 음 사장의 얘기다.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항상 현장을 확인했죠.” 남이 써 온 보고서는 소용없었고, 눈으로 직접 봐야 믿었다고 한다.

버스 개편을 구상할 당시, 음 사장은 이 당선인과 브라질에 있는 ‘쿠리치바’라는 인구 200만의 작은 도시로 날아갔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이 도시는 시장이 1975년 대대적인 도로 개편을 통해 버스를 부유층의 교통수단으로 만들었다”는 음 사장의 얘기에 당선자가 “현장을 확인해야겠다”며 브라질로 간 것이다. 연초라 아주 바쁜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현지에서 이 당선인을 수행한 음 사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작 그곳 시장과는 형식적으로 인사한 게 전부였어요. 곧장 담당 국장과 실무를 맡고 있는 과장들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물어보더군요. 명색이 올림픽까지 개최한 서울시장이 말이죠.” 당선인은 도로에 서서 묻고 또 묻고 확인을 반복하다가 ‘중앙차로로 간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때도 마찬가지다. 그땐 미국 보스턴으로 날아갔다. 시내를 관통하는 고가도로를 없애고 지하도를 만든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 편으로는 지하철이, 다른 편으로는 버스가 달리는 굴 속을 걸으며 눈에 띄는 모든 걸 확인했습니다.”

음 사장은 이 당선인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시스템을 숙지하고 그 장단점까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보고할 때 외국 어디서는 어떠하더라고 보고해봐야 소용없었다고 한다. 외국 사례를 더 많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할지 제목만 보고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도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스타일이다.

음 사장은 이 당선인의 놀라운 직관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어떤 일에 착수하기 전 처음부터 끝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끝이 어떻게 될 것이란 걸 미리 그려놓고, 과정을 생각한다는 얘기다.

음 사장을 비롯해 서울시 공무원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아침형’ 시장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과를 보내야 했다. 누구든 한번 일을 맡기면 담당자의 진을 뺄 정도로 닦달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청 공무원들이 큰 무리 없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당선인의 뛰어난 용병술 덕분이란 게 음 사장의 얘기다.

“일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은 전폭적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실무자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주었죠. 필요하다면 일하는 환경까지 바꿔주었으니까요.” 음 사장이 버스개혁안을 당시 부시장에게 제출하자 첫마디가 “그게 되겠나”였다.

일을 추진하기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시장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하소연했다. 그러자 이 당선인은 음 사장 부서를 다른 부시장 산하로 옮겨주었다.

▶브라질 쿠리치바의 버스환승센터 육교 위에서 시찰 중인 이 당선인과 음 사장.


의사 결정은 속전속결주의

음 사장은 이 당선인이 시청 공무원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다른 비결을 빠른 판단과 효율적 조정 능력에서 찾는다. 일주일에 한 번은 어김없이 시장 주재 회의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모든 의사 결정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을 낸다. “다음에 논의해 보자”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버스 색깔을 결정할 때도 시안 10개를 제시하면 장단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이게 낫구먼”하고 시행토록 하는 식이었다. 공청회나 토론회는 없었다. “어찌 보면 의견수렴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가 판단할 일은 전문가에게, 시민이 판단할 일은 시민에게 맡기자는 것이었죠.”

당선인은 의사 결정 속도뿐 아니라 실행 속도도 빨랐다. 속전속결이 가능하도록 부서별로 업무를 분담하게 했다. 예컨대 음 사장에게는 교통 시스템에 관한 기술적 문제를 해결토록 하는 한편, 이 당선인은 버스에 프로그램이 제대로 입력됐는지 자정까지 공무원들을 동원해 일일이 점검해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그렇게 이중, 삼중으로 점검하니까 어느 한 군데서 거짓으로 대충 보고할 수 없도록 한 것이죠.”

당선인은 서울시청을 기업형으로 바꾸는 데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공무원의 안일한 예산집행을 보면서 “기업은 돈 버는 일에 전사적으로 움직이는데, 시청은 있는 예산을 쓰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며 질책하곤 했다고 한다. 준비 없이 방심하는 공무원도 용납하지 않았다.

미국 출장 때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직원 실수로 놓쳤을 때의 일이다. 당시 당선인은 “기업에서는 이럴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항공, 기차, 자동차 편 등 세 가지 수단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라며 “수천 억짜리 계약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당선인이 서울시청 공무원의 업무 방식과 마인드를 바꿔놓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음 사장은 “공무원은 변화를 꺼리지만, 일단 결정된 사항은 잘 따른다는 것을 당선인이 간파했기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MB를 화나게 하는 보고서
“지난번하고 얘기가 다르잖아?”

“이거 이상한데, 스펠링이 맞는 거요?” 서울시장 시절, 이 당선인은 보고서를 받아들고 ‘청계천’을 영문으로 표기한 지점을 가리키며 문제를 제기했다. 보고자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표기가 이상했던 것이다. 안경도 쓰지 않고 깨알 같은 글씨를 읽고, 철자가 틀린 것을 찾아내다니. 관련 부서의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당선인에게 보고서 양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한 장짜리도 좋고, 수십 장을 묶은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단 제출된 보고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는다. 당선인의 기지는 그런 다음 발현된다.

계산이 틀린 숫자는 물론, 원고 교열을 보듯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까지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앞뒤가 안 맞는 문장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무엇보다 일관성 없는 보고서를 가장 싫어한다.

당선인의 기억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보고서 분량을 문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문서 없이 구두로 보고하는 것도 “OK”다. 보고자가 두서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을지라도 일단 끝까지 듣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당선인에게 보고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지난번하고 얘기가 다르잖아?” 다 좋은데 사실과 다르면 큰일이다. 또 전에 보고한 내용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절대 용납지 않는다.

보고자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시장 시절, “청계천 상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담당 국장이 “장기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동남유통단지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당선인이 “국장이 직접 들은 겁니까”라고 다시 묻자, 국장은 “과장으로부터 보고 받은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자 당선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 상인들을 만난 그 과장보고 직접 와 보고하라고 하세요.” 그 뒤로 국장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확인해야 할 사항을 확인하지 않는 것도 불호령 감이다. 시장 시절, 하루는 대변인에게 “오늘 신문 봤습니까? 기사가 이상하던데” 하고 물었는데, 대변인이 “미처 못 봤다”고 하자, “대변인이 신문도 안 보느냐”며 호통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