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200만 명 어디에 숨겨져 있나
허점투성이 실업자 통계 공식 실업률 3.2%에 불과 … 10% 가까운 체감 실업률과 큰 차이 |
정부야 국제 기준에 맞춘 통계라고 설명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취업 준비생(55만 명)과 구직 단념자(11만 명), ‘그냥 쉰다’(132만 명)는 사람들이 조사기간에 구직(求職)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취업자는커녕 실업자 축에도 못 끼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그 결과 그 뒤에 공인 실업자의 두 배도 넘는 200만 명의 백수가 숨어 있다. 여기에 취업자라곤 해도 알바·파트타이머 등 하루 8시간 기준 일주일에 사흘도 일하지 못하는 주당 18시간 미만 불완전 취업자가 84만 명에 이른다. 고용시장 형편이 이런데 정부 발표 실업률을 보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 100명 중 97명이 취업해 있고 실업자는 3명뿐이라니 ‘못 믿을 통계’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코노미스트가 실업자 통계의 허구성을 심층 취재했다. 2월 졸업 시즌이 가고 3월 신입생 입학철인데, 한국 대학 캠퍼스에는 ‘졸업 유예족’이 넘쳐난다. 대학 졸업자보다 취업에 유리한 졸업예정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늦추는 ‘엔지(No Graduation)족’‘대오(대학 5학년)족’들이다. 그중 상당수는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상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 이어 ‘삼태백’(30대 태반이 백수) 신세로 전락한다. 어느 새 ‘1년 휴학’은 필수가 됐다. 군 입대 부담이 없는 여학생들도 휴학계를 던진 뒤 해외로 연수를 떠나는 ‘영어 난민’ 대열에 합류한다. 이력서를 수십 장 냈지만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고, 자나깨나 고시와 공무원시험을 파고드는 고시족·공시족으론 모자라 일단 어느 시험이든 붙고 보자는 ‘고공(考公)족’까지 등장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실업률은 예나 지금이나 3%대다. 선진국 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주변을 보면 청년실업자는 물론 평일에도 하릴없이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사오정’과 ‘오륙도’(56세까지 남아 있으면 도둑)가 수두룩한데 말이다. 왜 그런가? 다음 문제를 풀어보면 그 답이 보인다. <문제> 아래 여섯 가지 항목 중 실업자는 누구인가? 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직장을 구하다가 힘들어서 포기한 채 최근에는 아예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았다. ② 새벽에 도시락 두 개 싸 들고 집을 나와 동네 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뒤 하루 종일 공무원 수험서와 씨름한다. ③ 아프거나 취업이 어려울 정도로 나이도 많지 않은데 당분간 그냥 쉬고 있다. ④ 일자리를 못 구해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돈도 안 받고 가끔 일을 거든다. ⑤ 직장 분위기 때문에 결혼과 함께 사표를 냈다. 아이 낳아 키우고 집안 살림하면서 다시 직장을 잡으려고 생각 중이다. ⑥ 하릴없이 PC방에서 죽치다가 어쩌다 도배 일을 하는 삼촌이 부르면 가서 도와준다. 정답은 6개 항목 전부 실업자가 아니다. 한국적인 고용 현실에선 취업자 통계로 잡히기는 쉬운 반면 실업자로 불리긴 여간 어렵지 않다. 통계청이 고용동향 조사를 나와 묻는데 그달 15일이 낀 일주일 동안에 단 한 시간이라도 돈을 받고 일을 했으면 실업자가 아닌 취업자다. 가족이 하는 일을 도와줘도 취업자로 잡힌다. 백수라고 대답하기 뭐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답해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모두 실업자가 아니다. 일반 상식과 너무 다른 실업자 기준
노동법상 최저 근로연령인 15세 이상이 조사대상이며 현역 군인과 공익근무요원, 교도소 복역자, 전투경찰, 의경은 조사대상에서 빠진다. 취업자는 조사대상 주간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자를 말한다.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이나 사업장에서 일주일에 18시간 일하면서 돈을 받지 않는 경우와 노사분규나 질병·사고 때문에 잠시 쉬고 있는 경우도 취업자로 본다. 실업자의 요건은 까다롭다. 조사대상 주간에 수입 있는 일을 하지 않았고, 조사대상 주간을 포함한 지난 4주 동안 구직활동을 했으며, 일이 주어지면 즉시 일할 수 있었던 자를 말한다. 세 가지 요건 모두를 충족해야 실업자로 분류되며, 어느 하나라도 어기면 실업자가 아니다. 이 같은 잣대에 따라 구한 실업자 수를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로 나눈 백분율이 실업률이다. ①번처럼 과거(조사시점으로부터 1년~한 달 전)에는 일자리를 구했는데 최근 4주 동안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실업자 대열에서 아웃 당한다. 그리고 취업자도, 실업자 축에도 끼지 못한 채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된다. 이런 구직 단념자가 지난해 10만8000명이었다. 취업 의사와 일할 능력은 있는데 ‘그전에 (일자리를) 찾아봤는데 없어서’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지 않아서’와 같은 이유로 조사시점에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경제활동인구에서 빼는 것은 지나치게 옹색하다. 구직활동을 포기한 이유야 어떻든 분명한 것은 직장이 없다는 점이므로 구직 단념자를 실업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는다. 구직 단념자를 실업자에 포함할 경우 2007년 실업률은 정부 발표(3.2%)보다 0.5%포인트 높은 3.7%가 된다. ②번과 같은 취업 준비생도 고용 통계는 실업자로 보지 않는다. ①번과 마찬가지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취업 준비생은 모두 54만6000명. 고시학원 등을 다니며 준비하는 경우가 22만 명, 집이나 가까운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32만6000명이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가장 ‘억울한’ 경우가 취업 준비만 하고 이력서는 내지 않은 취업 준비생으로 해마다 몇 만 명씩 늘고 있다. 또 그 대부분이 20대로 그만큼 청년실업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③번처럼 통계청 조사에서 ‘그냥 쉬었음’이라고 응답하는 경우도 계속 늘고 있다. 2004년 100만 명 수준이던 것이 지난해 130만 명을 넘어섰다. 또 이들 중 남성이 107만 명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④번의 경우 가업을 무보수로 돕는데 무슨 취업이냐고 하겠지만 고용 통계에선 ‘무급 가족 종사자’로 취업자다. ⑥번도 일주일에 하루 아니면 이틀, 그것도 한 번에 몇 시간 일하고 마는 불완전한 상태지만 취업으로 간주한다. ⑤번은 전업 주부로 대표적인 비경제활동인구다. 이처럼 일반인들의 상식에 비춰보면 현재 일자리가 없으니 실업자로 볼 만한 인구가 통계상으론 취업자(④ ⑥)로 잡히거나 취업자도, 실업 상태도 아닌 비경제활동인구(① ② ③ ⑤)로 빠져나간다. 실업자가 구직 단념자로 바뀌어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져나갈 경우 당사자에게는 변함 없이 실업 상태의 연장인데 사회적으론 실업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실업률과 지표 실업률 간에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가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5년 7월부터 국제노동기구(ILO)보다 깐깐한 OECD 기준 통계를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취업자나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다. 특히 한국 사회의 독특한 구조상 실업자로 간주할 만한 인구가 실업률을 산출하는 분자·분모에서 원천적으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실업률 대신 고용률에 주목할 필요
이를 감안한 체감 실업률은 10%에 가깝다. 게다가 취업자라곤 해도 알바·파트타이머 등 주당 18시간 미만 불완전 취업자가 83만5000명에 이르고, 특히 이 중 추가 취업을 원하는 경우가 13만 명이다. 15~29세 청년실업자도 통계청 공식 통계로는 지난해 32만8000명(청년 실업률 7.2%)이다. 하지만 취업 의사를 갖고 있을 만한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를 감안하면 청년실업률이 20%대로 올라간다. 취업 준비생의 대부분은 20대다. 구직 단념자와 그냥 쉰다는 경우는 약 4분의 1이 20대다. 그냥 쉰다는 사람 중 33만 명, 구직 단념자 중 약 3만 명이 20대란 이야기로 공식 청년실업자에 이들 세 부류의 넓은 의미의 ‘실망 실업자군’(90만3000명)을 더하면 청년 백수는 123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가 공식 통계를 믿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군데서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물가와 실업 통계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과 동떨어진 숫자가 발표돼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의 경우 소비자들이 자주 접하는 기본 생필품 154개의 가격 변동을 보는 생활물가지수를 별도로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실업자 지원 제도를 잘 갖추고 있어 실업자들이 바로 구직 등록을 해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실업 통계가 상대적으로 정확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실업(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실업상태란 점을 밝히기 꺼리기 때문에 체감 실업률과 지표 실업률 간 격차가 큰 편이다. 통계청은 체감 실업률을 개발·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현애 고용통계과장은 “구직 단념자와 주당 근로시간이 적은 불완전 취업자 등을 감안한 체감 실업률 지표 개발을 전문가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인 U3 외에 다섯 가지 개념의 실업통계를 함께 발표한다. 올 1월 공식 실업률(U3)은 4.9%인데 체감 실업률(U6)은 9.0%로 공식 실업률의 두 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이 미국의 U6 개념을 적용, 지난해 상반기 우리나라 체감 실업률을 추산(공식 실업자에 OECD 기준 주당 근로시간 19시간 미만 불완전 취업자와 구직 단념자 등 합쳐 환산)한 결과 8.1%로 나타났다.
또 어떤 기준으로 실업자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는 달리 고용률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중 취업자가 얼마인지를 본다. 실업률이 3%대로 낮은데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실제 취업자 비율인 고용률이 올라가지 않아서다. 실제로 지난해 평균 고용률은 59.8%로 2006년보다 0.1%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한창 일할 20대 고용률(60%)은 2006년보다 0.2%포인트, 30대 고용률(72.9%)은 0.3%포인트씩 각각 낮아졌다. 1년 사이 20대 취업자가 6만9000명, 30대 취업자가 10만 명 줄어든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연간 취업자도 28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쳐 정부 목표치(30만 명)에 미달한 가운데 나타난 20대·30대 취업자 감소는 20대 청년실업은 물론 30대에도 취업난 및 취업 행태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20대에선 55만 명의 취업 준비생이 보여주듯 취업을 미루거나 준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30대에선 서른이 넘어 비로소 첫 직장을 잡거나 20대 후반에 눈높이를 낮춰 취직했다가 30대 들어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준다. 대졸자의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첫 직장을 잡는 입직(入職)연령이 늦어지고 사회 활력도 떨어뜨리게 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입직연령(1999년 기준)은 27.2세로 OECD 회원국 평균치(22.1년)보다 5.1년이나 늦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이 더욱 심각해지고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대졸자의 입직연령은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늦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고용률은 경제 발전과 함께 높아져 1997년 60.9%까지 올라갔다. 15세 이상 인구 셋 중 거의 둘꼴로 취업자였다는 의미다. 이것이 환란과 함께 50%대 중반으로 급락했다가 2002년 60%에 턱걸이하더니만 다시 오르락내리락하며 여태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65~70%인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 그만큼 일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등 유휴인력이 많다는 얘기다. 선진 경제로 가는 길은 쉬는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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