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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플 주사’로 언제까지 버티나

도일 남건욱 2008. 3. 31. 08:36
캠플 주사’로 언제까지 버티나
금융 구도 바뀌는 일대 전환기
몸집 큰 금융기관들 너무 오랫동안 재미…자산 버블 꺼지면 공멸 우려

▶서브프라임 문제로 BRICs 등 신흥개도국이 금융자산의 새로운 큰손으로 대두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에 발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새해 들어 국제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이른바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금리를 내리고 금융시장에 돈을 퍼붓고 있지만 위기감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특히 지금까지 경제가 튼실했던 유럽과 아시아도 주가 폭락과 반등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경제의 혈액’인 돈을 유통하는 금융기능이 과도하게 떨어져 기업의 자금 사정이 빡빡하게 되고, 결국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여러 설명이 있지만, 우리 몸에 비유하자면 많은 혈액(유동성 과잉)이 빠른 속도로 핏줄(국제 금융시장)을 돌다 혈전(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막혀 못 돌게 되자 심근경색에 걸린 꼴이다.

먼저 2000년대 들어 나타난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 현상을 보자. 그 시작은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직접금융에서 시장형 간접금융 중심으로 바뀐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보통의 경우 돈이 늘어난다면 은행 대출을 통한 신용창출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대출 이외의 경로를 통한 금융이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은행들은 고도의 금융기술을 이용해 론 채권의 증권화(자산담보증권인 ABS 발행 등)를 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은 채 이 기관, 저 기관으로 옮겨가면서 유동성 증가를 일으킨다.

여기에 금융규제 완화와 기술 혁신에 의해 글로벌한 투자활동이 촉진돼 왔다. 2003년 이후 세계 각국의 대미 증권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 금융정책에 대한 신용이 높은 데다 미국 금융시장이 규모와 다양성, 유동성, 수익성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실적을 내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경영기반 빠르게 악화

일본종합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런 모습을 2000년 이후 세계적인 유동성 과잉이 지탱해 온 ‘평안한 불균형’이라고 했다. 불균형이 평안하게 유지돼 온 배경은 이렇게 설명된다.

첫째, 실물경제 면에서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개도국의 고성장을 배경으로 원유, 자원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반면 세계적으로 소비자물가가 안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가 세계시장에 들어옴으로써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흥 개도국이 저임금을 무기로 값싼 상품을 세계에 공급하고 있어 세계적인 인플레 억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금융 면에서 신흥 개도국들의 무역흑자 분이 만들어 낸 유동성 과잉을 발판으로 다양한 금융주체가 오랫동안 재미를 봐왔다는 점이다. 이번 국제 금융위기의 근저에는 이런 성공신화 속에서 잉태된 자산 과잉과 리스크 경시 풍조가 자리잡고 있다. 평안한 불균형이 마침내 자산가격 상승, 즉 버블 발생 그리고 붕괴의 수순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세계경제 차원에서 다시 요약해 보면 지금까지 미국·유럽·일본 등 3개 축을 중심으로 자금이 흘러왔던 구도가 2000년대 들어 원유 값 상승, 신흥 개도국의 고성장으로 세계적으로 돈이 풍부해지자 자산 인플레가 생기고, 과잉 유동성이 더욱 팽창하는 구도로 바뀌었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의 결산 악화가 상징하듯이 증권화 상품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면서 CDO(채권담보증권)와 RMBS(주택론 담보증권) 등 주택론 채권의 증권화 상품에서 발생한 손실이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기관의 경영기반 취약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기관 전체로 현재까지 100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더 악화한다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는 터라 금융시스템 불안으로부터 ‘flight to quality’(質로의 도피)가 대규모로 발생, 세계적인 주식의 대폭락도 우려된다.

여기서 주목 받는 것이 이른바 국부펀드(소버린 웰스 펀드·SWF)다. 예컨대 메릴린치는 지난해 4분기의 대폭적인 적자결산 공표 후 싱가포르·쿠웨이트·한국·일본 등으로부터 총 128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 따르면 국부펀드와 같은 뉴파워 브로커(아시아 각국 중앙은행, 오일 달러, 헤지펀드 등)의 운용자산은 2006년 8조7000억 달러에서 2012년에는 15조2000억 달러까지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다.

서브프라임 문제로 세계적인 신용 수축이 심화하는 가운데, 오일 달러와 신흥 개도국이 금융자산 운용에 새로운 큰손으로 대두하고 있다.

한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최근 발표한 2007년 해외직접투자(속보치)는 세계 전체로 전년 대비 18% 늘어난 1조5379억 달러로 과거 최고였던 2000년 1조4110억 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의 동요 때문에 다국적기업의 M&A 붐이 연도 후반에 전기를 맞고 있어 금후 직접투자가 냉각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투자 유치액에서 수위는 미국으로 전년 대비 10% 증가한 1929억 달러. 달러 하락으로 통화가치가 오른 유럽과 아시아로부터의 투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문제로 은행의 대출능력이 떨어져 생긴 감소분을 국부펀드 등이 보충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투자은행 6만5000명 감원

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 최근호는 금융업계의 실업자가 2007년에 전 세계적으로 20만 명을 기록해 2005년, 2006년 평균의 3배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서브프라임 문제의 영향으로 금융기관의 실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가장 실업자의 증가가 심각했던 곳은 부동산 금융 부문으로 주택론 회사의 도산과 관련 부문 폐쇄로 8만6000명 이상이 직장을 잃었다. 미국 투자은행도 관련 운용상품에서 대거 손실을 입어 6만5000명 이상의 인원을 삭감했다.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이번 사태는 이제 캠플 주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보스포럼과 오는 2월 9일 일본에서 열리는 선진국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모임 등 일련의 대책회의에서 근본적인 처방전이 나올지 관심이다. 올해는 서브프라임 문제로 글로벌 금융의 구도가 바뀌는 일대 전환기가 되는 1년이 될 것이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통일문화연구소장 (kjwon@joongang.co.kr [923호] 2008.01.2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