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경제기사모음

겉으론 견제 속으론 비밀 거래

도일 남건욱 2008. 4. 27. 15:13
겉으론 견제 속으론 비밀 거래
미국과 중국 ‘적과의 동침’
6자회담에서 중국 움직이는 손은 미국 … 일본은 북한 둘러싼 삼각관계서 소외
일본에서 본 중국

▶6각 테이블에 마주앉은 6자회담 대표들.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 마련된 회담장의 좌석은 의장국인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러시아, 미국, 북한, 일본이 시계방향으로 배치돼 있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 3월 31일 중국국제항공은 베이징~평양 간 정기항공 편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지극히 조용하게 보도된 뉴스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사안이다.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물밑 작업’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중국이 북한에 더욱 접근하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다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일본 외무성에서 북한 대책 반장을 담당했던 2005년 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관여하는 방식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우선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2003년부터 시작된 6자회담을 보자. 이 사안의 발단은 2003년 10월에 있었던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 특사의 방북이었다.

그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작된 게 바로 ‘핵 문제’였다. 미국이 지적함으로써 명백해진 문제이기 때문에 북·미 간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부시 정권은 서서히 “이것은 국제문제다. 북·미 간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북한은 정색을 하고 나왔고 북·미 양국은 서로 온갖 험한 표현을 써가며 기싸움을 벌였다. 이 때문에 북·미 간 대화는 이뤄질 수 없었다. 그래서 제3국이 관여하는 가운데 사태 해결이 추진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이 ‘미·중·북 협의’ 를 처음 구상해냈다. 즉 미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 3개국에 의한 협의였다(2003년 4월). 이때 미국은 원래 동맹국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본, 그리고 한국을 교섭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은 “중국이 관여하는 것은(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해하겠지만, 한국과 일본이 이 협의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 결과 이른바 ‘6개국 협의’가 2003년 8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일본 외교관이었던 나의 눈으로 보면 의문점이 없는 게 아니다. 몇 가지 의문 중 가장 큰 것은 ‘6자회담 의장국이 왜 언제나 중국이냐’는 점이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중국은 6개국 협의의 의장국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얘기가 여러 차례 흘러나왔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중국은 항상 ‘의장’으로 있었다. 이에 대해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미국은 북한과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 의장이 될 수 없다. 일본도 납치 문제를 떠안고 있으니까 안 된다.

한국은 북한과 같은 동포, 즉 대등한 관계이기에 발언권이 약하다. 러시아는 다른 문제로 바쁜 것 같으니 북한 문제에 신경 쓸 틈이 없다’ 같은 것이었다.

미국의 원유 정제기술 절박한 중국

하지만 이 무렵 외교 경로가 아닌 비정규 경로, 더 쉽게 얘기하자면 ‘정보기관 루트’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을 6개국 협의 의장으로 ‘임명’한 ‘보이지 않는 손’은 미국이었다는 얘기다.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증거가 외교 경로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나오지 않아서다. 하지만 미·중 사이의 실제 거래는 미군(특히 육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실제로 미·중 양국 군 관계자의 왕래는 지극히 빈번하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미국연방의회조사국 보고서(미-중 군사 접촉: 의회 제출용)에 따르면 2007년만 12차례나 군 관계자들이 미·중 양국을 오갔다.

물론 이것은 의회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된 횟수다. 실제로는 훨씬 더 빈번했을 것이다. 특히 양국 군부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반드시 신분을 ‘군인’이라고 떠벌리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이들은 훨씬 빈번하게 왕래했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어째서 인민해방군을 경유해 중국을 움직이고, 6개국 협의 의장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일까. 여기에서 핵심 변수로 등장하는 게 석유정제 기술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중국이 가장 절박해 하는 것은 에너지다. 특히 원유다. 이를 위해 중국은 1990년 후반보다 더 왕성하게 중동 지역에서 유전을 사들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국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거리가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중동산 원유는 유황 성분이 높아 고도의 기술로 정제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기술을 어느 나라가 가지고 있느냐 하면, 바로 미국과 일본이다.

하지만 안전보장 차원에서 중국에 경계감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이 기술을 중국에 공짜로 넘길 까닭이 없다. 이런 점을 주목한 것이 미국이다. 6개국 협의 의장국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에 이 기술을 공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중국이 그 정도까지 관여하게 된 배경에, 중국 자신이 국익을 챙기면서 대미 관계, 중국의 경제발전이란 변수들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돋보인다. 이처럼 북·중 관계에 미국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의문점을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탈북자 문제’다.

일본에서는 한때 ‘탈북자 증언에 기초한 납치문제의 진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 빈번히 방영되면서 화제가 됐다. 그들 탈북자의 상당수는 북·중 국경을 경유해 ‘탈북’한 사람들로 한국 또는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일본의 미디어와 접촉해 왔다.

이런 보도가 줄지어 나오면 당연히 “일본 정부는 도대체 뭐 하고 있나. 탈북자가 수없이 많은 북·중 국경까지 가서 한 건이라도 납치 피해자 관련 정보를 수집해 와야 할 게 아닌가”라는 여론이 높아진다.

일본은 선양(瀋陽)에서 총영사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단한 정보 수집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나에게 들어온 얘기는 일본의 정보수집 활동을 미국 정보기관이 제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중 국경에는 미국 정보기관이 대규모로 활동하고 있다.

원래 탈북자를 ‘탈북’시키는 작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 있는 이들에게 비밀 루트를 통해 자금을 대주고 탈북을 성공시키는 것은 미국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이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가서 헛걸음질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중국 쪽의 북·중 국경 부근에서, 예를 들어 수많은 기독교계 종교단체가 미국에서 건너와 주재하면서 인도적 지원을 명목으로 탈북자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나는 들었다.

그러나 그런 탈북자 지원은 어디까지나 명목이고, 실제로는 미리 점 찍어둔 ‘유익한 정보제공자’를 탈북시켜 국경을 넘는 순간 미국인 패스포트(여권)를 건네준다고 한다.

‘미국인’이 된 탈북자는 그대로 베이징 또는 다른 도시로 향해, 항공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물론 미국인으로서다. 이렇게까지 손을 쓰는 비밀 작전에 아무 생각 없는 일본이 관여해서는 곤란하다.


북·중 국경에서 미국 정보원 활개

그러나 이 이야기는 잘 생각해보면 미국 이외에도 빼놓을 수 없는 ‘등장국’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공안당국은 공산권이 원래 그렇듯 매우 섬세한 정보 네트워크를 국내외에 구축하고 있다. 마침 이 얘기의 경우 실제로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가 움직이는 곳은 다름 아닌 중국 영토다.

중국 정부, 특히 공안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오히려 미국은 당연하게도 협력관계에 있다. 즉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탈북자’를 둘러싼 도망극은 미·중 합작의 연극일 가능성이 크다.

잘 생각해보자. 이쯤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은 2007년 1월 베를린 북·미 협의 이후 갑자기 북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핵 문제’ 완전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경제 제재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중국 항공사가 평양을 오가는 노선 개설을 단행했다. 하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조차 이에 대해 항의하지 않고 있다. 이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가 있을까.

나는 몇 번이나 6자회담에 일본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회의장이 됐던, 중국 영빈관 댜오위다이(釣魚臺)의 호화로움이다. 완전히 키는 똑같고 몸매는 ‘쭉쭉빵빵’인 여성 접대원들의 서비스는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섬세했다.

그러나 미·중이 이런 정보 경로를 통해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인상을 받는 것 자체가 큰 연출이자 프로파간다(정치적 선전)였다는 생각이 든다.

베이징 올림픽의 ‘예행연습’으로, 중국은 현재 일류 대국이 된 것을 어필하고 있다. 그런 미·중 합작 연출에 앉은 채로 한 방을 먹은 건 일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