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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한 끼 20만원도 ‘선뜻’

도일 남건욱 2008. 5. 19. 08:45
스테이크 한 끼 20만원도 ‘선뜻’
뉴욕 점령한 일본 쇠고기 ‘와규’
캐비어 뺨치는 고급 음식으로 명성 … 최고가 정책으로 부자들 심리 자극

▶인기 와규 레스토랑 올드 홈스테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일본의 화우(일본어로 와규)는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다. 한 마리 값이 1억원이나 하는 소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우리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가면 쇠고기 시장을 개방해도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쇠고기를 개방한다고 한우가 저절로 최고급 ‘화우’가 될까. 화우가 최고급 쇠고기의 대명사가 된 데는 비결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몰려 있는 뉴욕의 일본 쇠고기 열풍을 취재했다.
“필렛마농 스테이크가 50달러(5만원)인데 198달러(19만8000원)를 주고 와규 스테이크를 먹는 이유가 뛰어난 맛 외에 또 뭐가 있겠나. 다른 어떤 이유도 없다. 와규는 세계 최고의 쇠고기다.”

세계의 식도락가들이 모여 있는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맨해튼 14가 ‘올드 홈스테드’. 수석 주방장 오스카 마르티네스(38)는 7일 와규 스테이크가 정말 인기가 좋으냐는 기자의 질문이 마음에 안 드는지 온갖 손동작을 다 해가며 와규 예찬론을 폈다.

이곳에서만 1주일에 100파운드(약 45㎏)가 팔린다고 한다. 와규 스테이크로만 1주일에 1만5000달러(15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린다는 얘기다.

마르티네스 주방장은 ‘아이언 셰프(최고의 요리사들이 요리 대결을 펼치는 미국 버라이어티쇼)’급 주방장이 몰려든다는 뉴욕에서도 정상급에 속한다. 그는 ‘고베 스테이크’의 명장이다.

마르티네스 주방장은 “우리는 뉴욕 스테이크 하우스 가운데 처음으로 15년 전부터 와규 스테이크를 메뉴에 넣었다. 우리는 항상 최고였지만 외국에서 기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이유는 아마도 5년 전쯤 와규 버거 메뉴를 개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올드 홈스테드는 최고급 와규로 버거를 만들어 81달러(8만1000원)에 팔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와규를 취급한 건 1990년대부터다. 마르티네스 주방장은 “와규 버거는 메뉴에서 제외시켰고 와규를 이용한 새 메뉴를 지금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와규는 고베와 동일어다. 하지만 와규는 1200년 전 일본 고베 지방에서 자란 소를 교배시켜 만든 소의 한 품종으로 일본 내 여러 곳에서 생산된다.

▶미국 최고급 식품점 일라이스에서 팔리는 와규.

호주와 캐나다, 미국에서도 와규 품종을 목축하지만 가격은 일본산보다 훨씬 싸다. 2006년 일본은 와규 1만264 t을 미국에 수출했다. 올드 홈스테드는 일본에서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후부터 줄곧 일본산 와규만을 사용하고 있다.

5월 6일 맨해튼 80가에 있는 미국 최고급 식품점인 ‘일라이스(Eli’s)’를 찾았을 때 최상급 육류로 가득 한 진열장에서 스테이크용 와규 쇠고기 팻말 아래 정작 쇠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산다는 맨해튼 어퍼 이스트 매장에서도 특별 주문이 있는 날에만 와규를 주문하기 때문이다. 뉴욕 스트립 최상급품이 파운드(약 453g)당 34.97달러(3만5000원)에 팔리지만 와규는 파운드당 189달러나 된다.

일본 낙농업체 S푸드(S Foods)의 미국법인 FBC의 나후미 다무라 와규 세일즈 매니저는 ‘일라이스’ 정육코너 담당자가 급하게 돌린 전화를 받고 6일 기자와 함께 매장을 찾았다. 20㎏이 조금 넘어 보이는 와규 쇠고기 한 상자가 1000만원을 호가하니 세일즈 매니저가 직접 한 상자씩 배달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무라는 “와규는 캐비어나 트뤼프처럼 최고급 식자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품질도 실제로 최고”라고 자랑 삼아 말했다.

FBC는 지난 1년 동안 자사가 취급하는 와규의 미국 동북부 배급을 맡겨왔던 미국 쇠고기 유통전문업체 오스틴과의 거래를 올해로 끝내고 직배에 나선다.

현재 FBC의 와규 브랜드인 와규 마스터는 미국 와규 시장의 35%, 동북부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유통업체 오스틴은 네브래스카에 본사를 둔 회사로 동북부 시장에 오랜 동안 와규를 공급해 왔지만 S푸드와 1년 단발 계약을 맺는 데 그쳤다. 그 만큼 와규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오직 차별화된 최고의 맛 만들기

뉴욕에서 만난 레스토랑 주방장, 배급업자, 수출업자들은 한결같이 와규의 성공은 오직 차별화된 맛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맛을 알리는 것도 전략이다. 다무라는 “와규의 성공은 타깃 마케팅에도 있다”며 “세계 최고의 식자재를 찾는 최고의 주방장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최고가 정책을 취한 것도 성공의 한 요소였다”고 강조했다.

뉴욕시 브롱스의 미트마켓에서 만난 오스틴의 팀 디캄프 회장은 “와규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품종이다. 여기에 기술자(축산농가를 이렇게 표현했다)들의 기술력과 사료를 먹이는 기간이 길다는 점도 품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미국 소는 500일이 지나면 도축하지만 와규는 1000일이 지난 후에 도축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맛’에 따라 30개월이 지난 소도 수입한다는 말이다.

다무라도 “미국 수출이 재개된 후 와규는 뼈와 내장 등을 제거했을 경우 일반적인 검역 외에는 30개월이 넘은 소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와규 농가는 특별관리 대상이다. 축산농가의 기술력을 측정해 인증을 한다. 와규종 소는 10개월 동안 지붕이 없는 축사에서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환경에서 키운다.

이후 소 두 마리씩 별도의 공간에서 기르는데 이때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준다. 이곳에서 와규종 소들은 18~22개월 동안 15가지 곡물을 섞은 특별 사료를 먹고 큰다. 하루에 두 번씩 사료를 제공해 신선도를 유지하고 특별히 청정수를 먹인다.

이렇게 해서 도축된 와규를 마블링(육질에 지방이 분포된 정도와 모양)과 고기를 덮고 있는 지방의 두께, 색깔과 윤기 정도에 따라 12등급으로 나눈다. A1(최하 등급)에서 A5(8~12점) 중 와규로 인정 받는 등급은 A2 이상이다. 일본축산농가연합이 인증하는 점수별로 가격이 정해진다.

모든 와규종 소는 도축되기 전까지 주민등록증과 같은 칼프(Calf) 등록증을 배부 받는데 지장처럼 코 모양을 등록증에 새겨 넣는다. 와규종 소는 일본에서 8만~12만 달러(8000만~1억2000만원)에 거래된다.

일부에서 와규의 마블링이 고루 분포되도록 하기 위해 소를 기를 때 일일이 온몸을 마사지해 지방을 퍼트린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이 경우 소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육질이 더 질겨진다는 것이 오스틴 측의 설명이다.

와규의 뛰어난 맛을 말할 때 대부분의 전문가는 ‘버터가 녹는 듯하다’고 표현했다. 스테이크를 주로 먹는 미국인의 경우 고기의 육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향과 육즙 맛이 아무리 좋아도 부드럽지 않으면 스테이크용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디캄프 오스튼 회장은 “한우도 먹어봤지만 너무 질겨(though)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와규의 부드러움은 지방이 골고루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방의 분포도인 마블링은 소가 30개월이 지나면서 완성기에 접어든다. 손석희 교수의 말처럼 일반적인 미국인과 재미교포들이 먹는 소는 연령이 20개월에 불과할지 몰라도 최고의 부자들이 먹는 쇠고기인 와규는 정작 30개월이 넘는 이유다.

와규는 대부분 30~34개월에 도축된 고기들이다. 일본에서는 와규종 소 한 마리 한 마리를 등록증을 교부해 관리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30개월이 지난 쇠고기라도 와규에는 전혀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뉴욕=한정연 미주중앙일보 기자 (hjy_ny@yahoo.co.kr [937호] 2008.05.1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