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경제기사모음

[양재찬의 프리즘] 맞서기보다 뜻부터 모아야

도일 남건욱 2008. 5. 19. 08:49
[양재찬의 프리즘] 맞서기보다 뜻부터 모아야
흔들리는 MB노믹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도 넘어섰다. 투기세력의 부추김이 있다지만 올 들어서만 배럴당 20달러 넘게 오른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곡물가격 상승과 함께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다 무역수지와 경제 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7% 성장에 그쳐 3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올해 성장률을 4.7%로 내다봤던 한국은행은 5월 8일 ‘잘해야 4.5%’(4.5% 이하)로 낮춰 잡았다.

4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3년 8개월 만에 4%를 넘어섰다. 대통령 지시로 ‘MB 물가지수’를 만들어 52개 생필품을 따로 관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급기야 제주도에선 휘발유 판매가격이 ℓ당 2000원을 돌파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초 2.8%로 예상했던 올해 물가 상승률을 4.1%(최악의 경우 4.6%)로 높여 잡았다. 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8일 하루 새 23원50전이나 올라 1050원에 바짝 다가선 원-달러 환율도 수출에 다소 도움을 주겠지만 물가에는 큰 부담이다.

최근 7거래일 사이 53원50전 급등하는 등 급격한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 자본이 국내 주식이나 채권을 처분하고 빠져나감으로써 추가적인 환율 상승과 자본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

또 환율 상승이 수출에 미치는 효과가 그전보다 크게 무뎌진 상황에서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 심리를 부추긴다. 수출 중심의 잘나가는 제조업체와 큰 기업이야 오르는 환율 덕을 보겠지만 더 많은 내수 중심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가계는 치솟는 물가고를 견뎌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물가는 거침없이 하이킥인데 투자와 내수, 고용은 제자리 내지 뒷걸음질이다. 설비투자와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이 꺾였고, 3월 중 신규 취업자는 20만 명에도 못 미쳤다.

이러다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7% 성장은커녕 3월에 낮춰 잡은 6%, 4월에 다시 수정한 5% 성장도 어렵게 생겼다. 성장은커녕 안정도 이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측이 분분한 가운데 벌써부터 하반기 경제운용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판에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문은 국회 청문회와 정부의 잇따른 담화에도 가라앉지 않고, 날씨가 더운데도 조류인플루엔자(AI)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바람에 갈비탕·설렁탕 집과 수입 쇠고기를 쓰는 레스토랑에 찬 바람이 불고 닭고기 판매를 거부한 대형 마트도 등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들이 울상이다.

기대를 모았던 MB노믹스가 출범 두 달여 만에 흔들리고 있다. 치솟는 국제유가와 곡물·원자재 가격 등 나라 밖에서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성장·물가·경상수지 등 세 마리 토끼 모두 계획대로 키우고 잡기는 어렵게 됐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8%로 뚝 떨어졌고, 규제 혁파와 감세·공공 개혁 등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지지율 하락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관련이 있다. 영어몰입교육 등 인수위 시절부터의 과속과 일방통행, 부실한 내각 및 청와대비서실 인선, 여당의 공천 파동과 추경예산 편성 논란 같은 정부·여당 간 정책 혼선 등이 누적된 데다 쇠고기 협상 파문이 가세한 결과다. 이런 상황이 오래 이어지면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로 연결된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거나 반대 세력이 나타나자 ‘정치 논리’라고 맞서며 이기려고만 해선 곤란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고집하기 전에 국민의 뜻을 묻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며 이해를 구하고. 과거 노무현 정권도 왜 진정성을 몰라 주느냐며 언론과 국민을 탓하다가 지지율 하락을 초래했다.

경제는 심리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3대 경제주체가 한 묶음으로 돌아가야 경제가 활기를 띤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기업, 그것도 큰 기업만 끼고 도는 듯한 느낌을 주어선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절대 다수인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약자를 보듬고 함께 가야 내수가 돌아가고 경제의 선순환도 가능해진다.
양재찬 편집위원 (jayang@joongang.co.kr [937호] 2008.05.1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