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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세금 걱정에 기가 찰 노릇”

도일 남건욱 2008. 5. 21. 19:01
“자식 세금 걱정에 기가 찰 노릇”
이동현 모건알루미늄 회장의 토로
40년 기업인 외길에 증여세 폭탄 … 퇴직금으로 내줄까 고민
□ 평생 몸 바친 회사 누구에게 주고 싶겠는가
□ 외환위기 때도 살렸던 회사 세금으로 휘청
□ 세금 때문에 회사 쪼개고 팔고 이 무슨 짓인가
□ 기업인들은 정부와 세금 씨름에 시간 낭비


▶1937년생
1968년 6월 동영기업사 창업
89년 모건알루미늄공업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
현재 모건알루미늄 회장

1968년 종자돈 15만원으로 회사를 차린 이동현(71) 모건알루미늄 회장. 수차례 어음 부도로 문 닫을 위기에 처했지만 ‘산업역군’이란 자부심 하나로 40년 외길을 꿋꿋이 걸었다. 지난해엔 자체 기술개발로 조폐공사 수주를 따 주목 받았던 그가 요즘 시름에 빠졌다. 증여세 폭격 때문이다. 5월 14일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그는 과중한 세금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너무 늦었어요. 늦었어. 만약 내가 15년 전에만 미리 준비를 했어도 이런 후회는 안 할거요. 그때는 증여세가 지금처럼 높지도 않았고 주식 가치도 높지 않았잖아…. 일 하느라 정신없었지 뭐야. 열심히 일만 한 사람은 후회하고 머리 써 요리조리 피해 간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자고 세상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이동현 회장은 올해 71세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가업승계를 고민할 때를 놓쳤다고 한탄했다. 회사 키우는 데 여념이 없던 그에게 승계 작업은 사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올해 초 이 회장은 외부 기관에 가업승계 컨설팅을 의뢰했다. 경영수업 중인 아들과 사위에게 회사를 물려줄 채비를 한 것이다.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간 컨설팅 비만 1000만원이 들었다.

이 결과 증여재산 100억원에 부과된 증여세는 15억원 정도였다. 이 돈을 마련하려면 공장 부지 일부를 팔거나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 그에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픈 현실이다.

“15년 전만 해도 우리 주식 평가액이 6000원에 불과했어요. 공장 부지 땅값이 오르고 영업이익이 늘면서 주식 평가액이 2만원으로 훌쩍 올랐죠. 주식 값이 헐값일 때 자녀들에게 증여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뿐입니다.”

모건알루미늄은 연 매출 130억~150억원 되는 중소기업이다. 처음엔 주방용품을 만들다 지금은 알루미늄의 용해와 주조, 압연을 전문으로 한다.

각종 전기와 전자제품, 금속과 기계, 건설자재와 주방용품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판재에 이 회사가 만든 제품이 쓰인다. 한때는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 해외 수출에도 주력했으나 요즘은 단가가 안 맞아 일본 수출과 내수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 회장이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본인의 책상 서랍을 열어 불쑥 10원짜리 동전 다발을 건넸다. 기존 10원짜리보다 작고 가벼웠다.

“우리 회사 원자재로 만든 돈입니다. 동판 동전은 원가가 40원, 알루미늄판은 그 절반인 20원이죠. 지난해 기술개발에 성공해 조폐공사 수주도 땄습니다. 우리보다 큰 알루미늄 회사들도 많은데 수주를 따낸 건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공장 시설투자 결과라고 믿고 있습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그는 1968년 종자돈 15만원을 가지고 서울 마포에 알루미늄 회사를 차렸다. 종자돈 15만원은 그가 알루미늄 공장을 다닐 때 매월 월급으로 받은 3000원, 4000원을 모아 마련한 것이다.

공장 종업원 7~8명을 데리고 주방용품을 만들던 그는 점점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78년엔 허허벌판인 서울 등촌동에 500평 규모의 땅을 사들여 공장을 지었다.

“처음으로 가진 내 땅에 공장을 짓는 기분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거요. 우리 회사에서 만든 알루미늄 주방용품을 니꾸사꾸(배낭) 안에 넣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땀의 결과였죠. 공장이 쑥쑥 크는 걸 보면서 고생도 꿀맛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는 95년 평당 50만원에 지금의 남동공단 땅 1500평을 매입해 공장을 이전했다. 지금 이곳의 평당 가격은 70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땅값만 100억원대가 넘는다.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외환위기 때는 30억원에 달하는 어음 부도를 맞아 수출 길도 끊기고 원자재 살 돈도 막혔죠. 그래도 회사는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키운 회사인데…. 개인 자산을 처분하고 은행 융자를 받아 겨우 위기를 넘겼죠. 이후로 돈만 조금 있으면 기술개발에 투자해 품질 향상에 힘썼어요.”

“자식에게 현금으로 물려주긴 싫어”

그는 지금 실낱 같은 희망으로 증여를 보류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상속·증여세 완화에 관한 세제 개편안이 상정 중이니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겠다는 것. 기업 친화정책을 펴겠다는 정부 방침을 믿어볼 작정이란다.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능사일까. 1~2년 후 주식 가치가 더 올라가면 후손들의 부담은 더 가중되기 때문이다. 굳이 회사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묻다 되레 호통을 당했다.

“기업인들이 사회환원 안 한다고 욕하는 거요?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한국 사람 누가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회사를 남에게 주고 싶답니까. 젊은 날 회사 키우려고 가정을 돌보지 못했단 말입니다. 가정도 버리고 몸 바친 회사를 자식 아닌 누구에게 주고 싶겠습니까. 대신 저에게도 원칙은 있습니다. 현금으론 안 줍니다. 일할 여건만 만들어 주는 거예요. 부모한테 거저 받은 돈은 흥청망청 쓰게 돼 있어요. 요즘 증여세, 상속세 부담 줄여준답시고 30~40년 된 기업 문 닫고 이리저리 현금 만들어 자식들한테 왕창 주는데 이게 자식 망치는 길이에요.”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도 그는 회사를 키울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2005년엔 알루미늄 용해 자동화 시설, 2006년엔 압연기를 설치하고 올해 ‘대폭 압연기’를 들여왔다.

“일흔 넘어 공장 확장한다고 했더니 다들 미쳤다고 합디다. 지금도 증여세 부담만 아니면 어느 공단이든 3000~5000평 추가로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에요. 기업인이 세금에 걸려 기업 키울 생각을 주저한다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일본은 우동집을 해도 가업승계를 하지 않습니까. 가업승계를 해야 기술 노하우도 전수되고 회사에 대한 애착도 생기는 겁니다. 세금 때문에 너도나도 회사를 쪼개고 가르고 여차하면 팔고 이 무슨 짓인지…. 100년 기업이 한국에서 몇 개나 나오겠습니까.”

그는 증여세 납부 방법으로 본인 퇴직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내가 40년을 일했으니 퇴직금이 얼추 20억~30억원은 되지 않겠습니까. 죽기 전에 자식들한테 내 퇴직금으로 상속세 내라고 할 생각도 하고 있어요. 죽은 후 자식들이 낼 세금 걱정까지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죠.”

퇴직금은 법인자산에 속한다. 법인자산의 돈이 빠져나가면 비상장 주식의 가치는 큰 폭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만큼 투자 자금은 줄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몇 년간 인건비와 원자재 값 상승으로 외부 환경까지 열악해졌다. 젊은 사람들은 공장 일을 꺼리고, 중국에서 절반을 수입해오는 알루미늄 원자재 값은 1년 만에 30%가 올랐다.

“경쟁국들은 무섭게 쫓아오는데 한국 기업인들은 정부와 세금 씨름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습니다. 30년만 지나면 지금 2세들 살길이 더 막막해질 겁니다. 인구는 늘고 먹을 거는 없고…. 땅 덩어리 작고 석유도 안 나오는 우리가 잘사는 길은 기업 키우는 일밖에 없어요. 가업승계 기업인에겐 세금 걱정 안 하게 해줘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병원에 전화 예약을 했다. 18년 전부터 앓고 있는 당뇨병 때문이다. 회사에 부침이 있을 때마다 스트레스로 얻은 ‘훈장’이다. 그의 지병이 세금 고민으로 더 악화될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