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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공포에 기업인들 잠 못 든다

도일 남건욱 2008. 5. 21. 19:01
상속세 공포에 기업인들 잠 못 든다
세금 때문에 문 닫는 중소기업 줄 이어 … 세율 높아 편법·탈법도 난무
부의 대물림이냐, 가업승계를 통한 기업의 지속적 안정이냐. 경영권 세대교체를 둘러싼 상속세 논쟁이 뜨겁다. 요즘 중소기업인들에게 상속세는 가업승계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를 절박한 현실이다. 상속세를 마련하느라 눈물을 머금고 30~40년에 걸쳐 일군 회사를 남의 손에 넘겨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상속세에 대해서는 폐지나 존치, 또는 완화 논란이 많다. 어떤 게 맞는지 여부를 떠나 중소기업인들에게 상속세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다. 이코노미스트가 중소기업인들이 겪고 있는 상속세 두려움을 현장 취재했다.
#장면1 = 인천 남동공단에서 화공약품 제조업체 S사를 운영하고 있는 A회장(91). 서울에서 일류 대학을 나와 기업을 일군 지 올해로 40년째다.

S기업을 매출 5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그에게 요즘 큰 고민이 생겼다. 고령이라 몸도 힘들고 이제는 사업에서 발을 빼고 싶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내야 할 증여세 때문이다.

비상장회사인 이 회사의 액면가 5000원인 현재 주식 평가 가치는 주당 최소 5만원. A회장이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100억원 정도다. 살아 있을 때 증여 받고 증여세를 내든지, 사후 물려받고 상속세를 내든지 A회장 아들은 똑같은 비율의 세금을 내야 한다.

현재 증여세율(30억원 초과분 50%)로 계산했을 때 각종 공제를 빼고도 30억원 정도는 납부해야 한다. A회장의 아들이 당장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선 주식을 파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자칫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다.

#장면2 = 정밀기계에 들어가는 내장용 콘센트 개폐기 제조업체인 M사. 남동공단 내 공장 부지 9900㎡(3000평)를 가지고 연간 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견실한 기업이다.

중국과 베트남 투자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 기업 창업자인 B회장은 1년 전 회사를 처분했다. 30년 동안 알토란처럼 일궈온 기업이라 미련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역시 상속세가 원인이었다. B회장은 ‘괜히 사업을 넘겨주면 자식들이 대대로 세금 문제로 고통을 받을 게 뻔하니 아예 기업을 팔아 현금으로 주고 상속세 공포는 본인 세대로 끝내겠다’는 심산이었다. 현재 그의 자녀들은 해외에서 살고 있다.

4000여 개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인천 남동공단이 요즘 상속세 문제로 시끄럽다. 나이가 많은 창업 1세대들이 가업승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동공단이 주목 받는 이유는 가업승계 작업이 중소기업에 치중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업승계 예정 기업의 기업재산 규모 분포에 따르면 300억원 이하인 기업이 85.2%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 창업자들의 최대 고민은 높은 상속·증여세율이다. 2000년 1월 1일 이후 개정된 상속·증여세 법정세율 구조는 1억원 이하 10%, 5억원 이하 2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는 50%까지 납부해야 한다.

지난해 말 가업 상속 세제개편법률이 개정돼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기업인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여전하다. 가업 상속 공제 확대와 세금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제도 등이 개편안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높은 상속세율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 쓰던 아들에 ‘상속세 폭격’

기업이 자금 문제로 힘들어지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은행이다. 5월 14일 남동공단에서 만난 기업은행 김영규 지점장은 “요즘 상속세나 증여세 납부로 고민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고충을 듣고 세금 납부를 위한 대출 상담을 하는 게 주된 일”이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증여세와 상속세로 골치를 앓게 되자 미련 없이 30, 40년 된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며 “정부에서 은행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책적으로 증여세와 상속세 완화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동공단 상공회의소에서 중소기업인 고객을 상대하는 김진석 세무사도 “요즘 기업인들의 최대 관심이 증여·상속세 문제”라며 “기업들은 현금을 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속세를 내기 위한 저축 상품에 가입하거나 우회 방법을 묻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김 세무사는 “특히 창업자 사망 직후 2세가 바로 상속세를 내야 하는 법 제도 때문에 기업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 생긴다”며 “사망 당시 바로 상속세를 과세하지 말고 상속 재산을 처분할 때 과세하는 제도로 바뀌면 기업인들의 부담을 좀 덜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름의 해법을 내놨다. 법인의 주식은 평가액이지 당장 현실화된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과세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대구에서 동양종합식품㈜을 운영하고 있는 강상훈(44) 대표. 그는 “3년 전 가업승계 과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강 대표의 부친은 3년 전 갑자기 악화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친 사망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그는 상속세에 대해 무지했고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 6개월 만에 세무서로부터 세무조사 통보를 받았죠. 회사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니 6개월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세무조사는 부친 사망 1년 후에 받게 됐는데 조사 기간만 꼬박 45일이 걸렸죠.”

부친으로부터 받은 재산은 100억원 상당. 그나마 배우자 공제와 자녀 공제 등 기초공제를 많이 받아 상속세는 15억원 안팎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15억원도 큰돈이었다. 당장 이 돈을 납부할 현금이 없었던 것.

강 대표는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하고 이것도 모자라 세무서에 주식을 현물 납부했다(올 1월 세제개편에 따르면 상속·증여 때 물납 대상에서 비상장 주식을 제외했지만 상속의 경우 다른 재산이 없을 때 허용하고 있다).

강 대표는 “세무서가 자산관리공사로 넘긴 우리 회사 주식 8%가 다른 사람에게 매각될 경우 경영권 위협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정밀기계업을 운영하는 C사장(29). 그는 2년 전 부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뒤부터 다리를 뻗고 자 본 적이 없다. 2년 전 은행 대출로 낸 상속세 이자부담 때문이다.

C사장은 부친이 암으로 갑작스레 사망해 15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물려받아 35억원 상당의 상속세를 내야 했다. 그는 부친이 사망하기 전까지 물려받을 재산이 얼마인지, 내야 할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몰랐다. 본인은 돈이 없어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형편이었다.

문제는 부친이었다. 부친은 사망하기 2년 전부터 차명계좌에 현금을 돌려 놓고 2년 동안 수천만원씩 수차례 10억원 가까이를 빼냈다. 이 사실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 부친이 빼낸 현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아들인 C사장은 몰랐다고 한다.

결국 세무서에 자금 흐름에 대한 소명 자료를 내지 못한 C사장은 10억원에 대한 세금까지 고스란히 상속세로 낼 수밖에 없었다. 현금이 전혀 없었던 그는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35억원 전부를 은행 대출로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 대출 이자는 연 6%. 연 이자만 2억1000만원 상당으로 월 1700만원가량의 이자를 지급하며 근근이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게다가 C사장은 잠깐 부친이 경영하던 기업의 평사원으로 일했을 뿐 경영 수업을 정식으로 받은 적도 없다. 경영은 경영대로 힘들고 매월 내야 할 돈은 끝이 없으니 한숨이 늘 수밖에 없는 것. 150억원대 유산을 물려받은 그를 다들 부러워했지만 정작 자신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절삭공구 제조업체로 연 매출 500억원을 올리던 D사. 창업자가 갑작스럽게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2세 경영자가 할 수 없이 경영을 승계 받았으나 상속세 부담으로 결국 회사 문을 닫았다.

2세는 회사의 비상장 주식을 포함한 총 200억원의 재산을 상속받게 됐지만 1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물어야 할 상황에 직면했던 것. 역시 가지고 있던 돈이 없던 2세는 고민 끝에 40억원의 세금은 주식으로 물납하고 나머지는 부동산 담보대출로 처리했다.

창업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거래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종업원들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아 거래처 주문이 끊어지고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회사 문을 닫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GM대우 하청업체로 40년 된 자동차 부품회사인 K사의 경우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익금을 주주들에게 모두 배당하고 직원들에게 퇴직금도 미리 줘버렸다. 여차하면 회사 문을 닫을 심산인 것이다.


주식으로 상속세 내고 회사 문 닫아

상속세 과다 과세는 불법·편법을 통한 탈세를 양산하고 있다. 제대로 상속세를 내는 기업인이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로 편법 상속은 암묵적으로 승인되고 있다. 심지어 경제단체인 상공회의소 직원들조차 공공연하게 편법 과세를 인정하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인천 상공회의소 한 직원은 “어느 기업이 미련하게 상속세를 다 내고 기업을 운영하느냐”며 “만약 모든 기업이 상속세를 제대로 꼬박꼬박 냈다면 문 안 닫을 기업이 몇 군데나 있겠나. 모두 자체 세무사를 통해 편법으로 상속한다”고 말했다.

기업 분할을 통한 소유권 이전이나 차명계좌 사용을 통한 재산 은폐 등 불법 탈세 방법도 동원된다. 일부러 주식 가치를 떨어뜨려 증여세율을 낮추는 기업들도 있다.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는 투자 설비를 줄이고 영업 이익을 줄여야 한다. 기업 성장동력을 찾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기업인들이 세금 줄이는 방법을 찾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남동공단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기업인들은 전담 세무사를 통해 수천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고 가업승계 컨설팅을 받지만 이도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박사는 “기업의 라이프사이클에서 승계 과정은 지속적 성장을 위한 주요한 단계”라며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기업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승계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마련해 편법 상속의 유인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가업승계지원센터에 가 보니…
“상속세 어떻게 하나” 전화 빗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4월 말부터 여의도 본관 로비 1층에 ‘가업승계지원센터’(전화 02-2124-3186)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5월 15일 오전에 찾아간 가업승계센터에는 이른 아침부터 가업승계 컨설팅을 문의하는 기업인들의 전화가 울려댔다.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지원실 임승종 과장은 “가업승계센터 문을 열자마자 매일 수십 통씩 문의전화가 빗발친다”며 “그동안 중소기업인들의 가업승계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증여와 상속세 부담이었기 때문에 기업인들의 문의내용 대부분이 증여와 상속세 절세 방안”이라고 밝혔다.

가업승계지원센터는 단계별 가업승계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경영자들에게 배포하고, 가업승계 계획부터 사후 관리까지 가업승계 전반에 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는 기업들의 가업승계를 위한 세제지원센터가 운영 중이다. 일본엔 ‘사업승계협회’, 독일엔 ‘넥스트프로젝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