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에 한잔하고 ‘금’에 영화 본다
어떤 요일에 뭐가 잘 팔리나 책은 월요일에 2배 이상 팔려 … 노래방 등 유흥업소는 목요일에 장사 잘돼 |
정말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 일요일엔 자장라면이 잘 팔릴까. 장미는 ‘아니다’고, 자장라면은 ‘그렇다’다. 해당 회사에 따르면 다른 요일보다 30% 더 많이 팔린다. 똑같은 요일인데 잘 팔리는 것이 따로 있다? 요일마다 잘되는 사업을 살펴보면 변해 가는 라이프 스타일까지 알 수 있다. 주식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요일은? 누군가 ‘월요일’이라고 답했다면 미국 뉴욕증권시장의 ‘블랙 먼데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1987년 주가가 대폭락한 어느 월요일을 일컫는 이 말은 현재까지 투자자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먼데이 징크스는 이후 ‘월요일에 사서 금요일에 팔아라’ 혹은 그 반대의 ‘요일 효과’까지 만들어내며 투자자들의 기대와 불안을 배가해 왔다. 물론 요즘처럼 ‘남’의 사정에 따라 춤추는 증시에서 요일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월요병’이 존재하듯 생활 속 ‘월화수목금토일’은 각각 다르다. 온라인 ‘월화수’, 오프라인 ‘토일’ 출판사 고즈윈에서는 월요일 회의 때마다 분위기가 사뭇 화기애애하다. 다른 요일보다 1.5배에서 많게는 두 배까지 책 판매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출간한 자기계발서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는 하루 평균 20권 정도 나가는데 월요일 판매 부수는 40권을 웃돈다. 고세규 고즈윈 대표는 “그 전에 내놓은 인문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며 나름의 이유를 제시했다. 이유는 한 주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매년 1월 책 판매율이 높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 대표는 “과거에는 ‘독서’를 ‘공부하는 것’으로 인식했는데 2000년대 들어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여기면서 여가업종과 경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여가생활의 범위가 넓어지고 중요성이 더해지면서 여행을 가든지, 여행책을 사든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의 최근 두 달 동안 책 판매량을 살펴보면 ‘월요일 효과’가 고즈윈만의 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월요일 판매량은 기존의 ‘인기 요일’인 토요일과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우일 교보문고 차장은 “월요일을 시작으로 주초에 책이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토요일 판매가 강세다.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서점을 방문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은 얘기가 다르다. 온라인 서점 점유율 1위인 예스24의 요일별 매출점유율에 따르면 월요일이 18%로 판매율이 가장 높다. 오히려 금·토·일요일은 각각 13, 9, 11%로 저조하다. 임수정 예스24 마케팅팀 파트장은 “소비자들이 주말에 다른 여가를 즐기면서 주말 책 주문이 줄었다”고 말했다.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의 요일별 거래비율을 보면 역시 월·화·수요일이 17, 16, 16%로 높고, 토·일요일이 9, 12%로 낮다. 특히 월요일과 토요일은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김재돈 G마켓 팀장은 “주말 이전에 물건을 배송 받으려는 소비자가 많고 평일에 인터넷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관, 공연장도 금요일이 ‘대목’이다. 목요일에 개봉하는 영화가 늘면서 금요일 관객도 주말 관객 대열에 합류했다. 대학로에 있는 사랑티켓의 김영신 매니저는 “일요일 관객이 줄고 금요일 관객이 느는 추세”라고 공연장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금요일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는 것이다. 주유소 매출에서도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도심지 주유소에서는 주말 주유 차량이 줄고 대신 차량 유동성이 큰 월·금요일에 기름을 넣는 차가 늘었다. 지방 외곽 지역에 있는 주유소는 평일보다 토·일요일 매출이 높다. 주말을 이용해 지방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여행객들 때문이다. 주말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대기업 과장인 K씨는 월요일이 돌아오면 “술이 ‘땡긴다’”고 말했다. 금요일부터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고 가족에게 봉사했으니 월요일에는 직장 동료들과 ‘한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주5일제로 금·목요일 매출 쑥쑥 지난달 21일(월요일) 밤 9시, 직장인이 많이 몰리는 종로 일대에 나가 봤다. 부근 호프집들은 가볍게 ‘마시러’온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월요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 동안 밀린 일은 자연히 다음날인 화요일로 넘어가게 된다. 취업 포털 스카우트가 최근 직장인 5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가장 많이 야근하는 요일은 화요일 (23.73%)이다. 화요일에는 밀린 업무를 보거나 직장, 가족과 관계없는 개인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주말에 몰리던 ‘단체 모임’은 목·금요일로 당겨졌다. K과장은 “토요일에 애들 준비시켜서 어디 가까운 곳에라도 가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며 “다음날 새벽까지 회식이 이어질 때도 있어 금요일 회식 문화는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비씨카드가 주5일제가 시행된 2004년 4, 5월과 2005년 4, 5월의 소비행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단란주점, 맥줏집,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 매출 증가율은 목요일이 17.8%로 가장 컸다. 한 카드사 직원은 “현재까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해 금요일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결제까지 금요일 매출에 포함될 것을 감안하면 목요일 술자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 이벤트’의 대명사인 결혼식 일정도 달라졌다. 과거 주로 토요일 정오를 전후로 이뤄지던 결혼식은 금요일 저녁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재현 한국결혼박람회 차장은 “하객 위주에서 신랑·신부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신혼여행 일정을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라며 “하객들의 주말 스케줄을 고려해 ‘황금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결혼식은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바뀐 결혼 풍속도를 전했다. 이런 새로운 ‘요일 효과’는 마케팅에도 활용된다. 예스24는 신간 소개 등이 담긴 뉴스레터를 회원들이 월요일에 받도록 발송하고, 일요일에는 홈페이지 업데이트 작업을 한다. 백화점은 주로 주말에 세일을 시작하고 손님이 적은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반대로 온라인 쇼핑몰은 월요일에 세일 이벤트를 벌인다. 또 신문들은 주로 토요일에 북 섹션을, 금요일에 쇼핑 정보를 싣고 있다. 요일 효과로 구독률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선진국처럼 일 중심에서 여가 중심으로 생활 패턴이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과거에는 이런 패턴이 일부 중산층 이상에서 나타났지만 요일별 매출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는 것은 소비자의 다수가 비슷한 생활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 [937호] 2008.05.13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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