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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휴전’일 뿐 ‘종전’ 아니다

도일 남건욱 2008. 6. 29. 11:08
잠깐 ‘휴전’일 뿐 ‘종전’ 아니다
정부 대책 실효성 있나
운송료 인상은 일시적 대책 … 정부가 의지 갖고 ‘다단계’ 없앨 시스템 만들어야
“참여정부 때도 말은 많았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큰 기대는 걸지 않는다. 다만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파업이 또다시 강행될 것이다.”

정부와 화물연대가 화물운송료 19% 인상 등에 잠정 합의한 6월 19일. 화물연대 관계자는 “속는 것도 이젠 지겹다”고 말했다. 정부 측이 내세운 표준요율제 조기도입, 화물차 공급억제 대책 등을 아직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화물연대 측이 불신을 갖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들이 대부분 공수표로 끝났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물류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입제(화물자동차를 소유한 차주가 운송회사 등에 등록하는 것) 폐지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표준요율제 도입, 화물차 면허자격 강화(공급 억제책), 종합 물류기업 인증제 등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절반이나마 지켜진 것은 지입제 폐지 하나뿐이다. 나머지 대책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참여정부 때 그랬듯 MB 정부 역시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그냥 밀어붙인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표준요율제를 실제로 도입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간 표준요율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정부가 운송비에 개입하게 되고 이는 곧 기업(대기업 화주) 규제가 될 것이라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국토해양부도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도입이 힘들다”며 대통령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11월 시행 합의를 이뤘던 표준요율제는 화물연대 파업이 있기 전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용역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야 마땅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되자 정부 입장이 180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 백승근 물류산업과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게 아니었다”며 “시행시기, 법률 내용 등에 대해 화주업체들과 의견을 조율하면서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명했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몇 개월 만에 입장을 바꾼 정부가 어떤 대안이 있어 표준요율제 도입을 결정했는지 모르겠다”며 “참여정부가 해왔던 과정을 다시 하려면 최소 2년 이상은 걸려야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금의 정부 행동은 파동을 가라앉히기 위한 하나의 ‘쇼잉(showing)’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표준요율제 도입이 능사는 아니다. 당초 취지대로라면 화물차 운전자들의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자칫 유명무실한 대책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화주가 부담하는 운송비 공개 여부가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화주의 운송비가 공개되지 않은 채 표준요율제가 도입된다면 화물유통의 고질적 문제인 다단계 고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주의 운송비가 얼마인지 계산되지 않으면 주선 및 알선업체, 운송업체들이 얼마나 수수료를 떼가는지 알 수 없다”며 “그럴 경우 표준요율제를 도입해 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차 공급 억제책도 현실성 없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까지 3600대의 화물차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대당 구입비용은 1500만~4000만원가량. 이를 통해 화물차의 공급과잉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화물차 운전자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t트럭을 10년 넘게 몰고 있는 이원철(38)씨는 “화물차 구입비만 5000만원가량”이라며 “화물차가 평생직장인데 단돈 4000만원에 차를 팔라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일 그만둘 사람 아니면 아무도 안 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급 억제책과 더불어 발표한 LNG차량 지원 역시 연료 효율성이 논란이다. 무거운 화물차의 경우 LNG가 경유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화물연대 측 주장이다.

이뿐 아니다. 흐지부지되거나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은 대책도 많다. 2004년 참여정부가 시행했던 허가제와 지입제 폐지도 흐지부지된 정책 중 하나다.

등록제가 허가제로 바뀌면서 시장 진입에 일부 제한이 생겼지만, 아직도 시장에는 3만여 대가량이 과잉 공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시중에 돌아다니는 화물차 수는 40만 대가량이다.


지입제도 아직 안 없어져

지입제 폐지도 표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업계 내부에 여전히 남아있다. 화물차 운전자들이 운수업체에 가입해 활동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입비(지입료)를 내는 게 실상이다. 지입이란 말만 안 쓸 뿐이지 관행은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종합물류기업인증제 확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종합물류기업인증제는 물류 업계의 다단계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여러 대책 가운데 중요한 해결책으로 주목 받았다.

2006년 참여정부가 시행한 이 제도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물류회사를 정리하고, 정부가 인증한 종합물류회사를 통해 제조업체의 물류 부분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도입됐다.

인증기업을 이용할 경우 제조업체는 세금감면 혜택까지 받게 했다.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목된 다단계 화물유통 구조를 철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 종합물류회사는 다단계 물류체계를 해소하는 역할을 일정 부분 하고 있다. 대한통운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화주→주선업체→운송업체→차주’로 이뤄져 있는 일반적 다단계 물류체계와 달리 ‘화주→대한통운→차주’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1단계 이상을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부 대기업은 정부로부터 인증 받은 종합물류회사를 이용하기보다는 물류자회사를 만들어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이 까닭에 ‘화주→물류자회사→(주선업체)→운송업체→차주’로 이어지는 구조가 고착돼 다단계 물류체계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종합물류기업인증제는 취지는 좋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다단계 물류체계가 개선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세금감면 혜택까지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 제시안 역시 빈틈이 많다는 게 전문가와 업계의 분석이다. 김상조 교수는 “우리나라도 미국, 유럽의 화물유통시스템(지입제가 아닌 운수업체에서 화물운전자를 노동자로 고용하는 방법)을 갖춰야 매년 벌어지는 물류대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화물연대 파업은 일단 진정됐다. 그러나 휘발성 높은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정부가 당장에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화주와 운수업체, 운전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파업이 끝났다고 손을 놓기보다 이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파업의 고리를 끊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내년 물류대란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