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 못한 ‘이무기의 눈물’ 되나
아시아 경제 벼랑 끝에 서다 잘나가던 중국·인도·베트남 ‘주춤’… 한국 투자자들 손실 ‘눈덩이’ |
잘나가던 아시아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베트남의 위기가 특히 심각하다. 올림픽을 앞둔 중국 경제도 주식시장이 얼어붙는 등 침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분석가들은 올림픽 이후가 더 문제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아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와 투자자들의 타격이 크다. 아시아 경제 위기의 실상을 짚어봤다. 아시아 경제가 힘을 잃으면 중국·베트남 등에 투자한 한국 펀드가 직격탄을 맞는다. 이미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설정액 10억원 이상 중국펀드 87개의 6개월 평균 수익률은 이달 초 -25.91%로 악화됐다. 지난 5월 22일 기준 -11.42%에서 더 떨어진 것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년2개월여 만에 3000선을 내준 데 이어 지난해 고점 대비 50% 이상 떨어졌다. 잘나간다던 인도 펀드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26개 인도펀드의 6개월 평균 수익률은 -26.36%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보다 성장 잠재력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했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베트남펀드 9개의 6개월 평균 수익률은 -36.96%다. 한때 제2의 중국펀드로 불렸지만 한 달 가까운 하락 행진 속에 이젠 펀드시장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가 위기임을 알려주는 신호음은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가장 비관적인 평가가 나온 곳이 HSBC다. 6월 12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HSBC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어 아시아 신흥시장의 주식투자 비중을 ‘0’까지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도에 따르면 HSBC홀딩스의 투자전략가 리처드 쿡슨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계속되는 인플레이션으로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아시아 신흥시장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며 이같이 충고했다. 한마디로 투자하지 말라는 소리다. 그는 세계 경제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며 “선진시장에 대한 투자의견도 ‘비중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하고 현금비중은 6%에서 11%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성장세는 악화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린다면 경제성장률과 기업수익성이 악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아시아 경제는 침체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유가와 곡물 등 원자재 값 상승→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위험 증가→중앙은행의 금리 인상→경제성장 둔화 우려→기업의 이익 성장 둔화→주식투자 매력 감소→외국인 매도→주가 하락이 그 악순환 구조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상승을 막거나 완화해 보려고 은행 금리를 올렸다. 그러다 보니 시중에 돈줄이 말라 주가가 내리고, 기업도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성장세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이 통화나 환율을 조절해 인플레를 막으려고 나서면서 주식시장이 급격히 냉각하고 있다. 6월 10일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하루에 7.7% 폭락해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이를 완화하려고 지급준비율을 1%포인트 올리는 등 통화 긴축조치를 취한 것이 원인이 됐다. 중국의 물가 상승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전년동기 대비 물가상승률이 2006년 초만 해도 1% 미만이던 것이 올해 8%를 넘었다. 기름값 폭등이 찬물 끼얹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인플레 속에 금리를 인상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과 비슷한 처지다. 요즘 아시아에서 가장 어렵다는 베트남은 정부가 환율에 개입했다. 6월 10일 자국 통화 가치를 미국 달러화 대비 2% 가까이 평가 절하했다. 물가상승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은 5월 소비자물가가 25.2%나 올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베트남은 인플레이션의 급격한 상승을 우려해 10대 생필품을 대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유가가 워낙 빠른 속도로 오르는 바람에 한계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에선 석유를 다량 소비하는 버스, 철도, 항공 등 물류 운송 분야가 대부분 국영기업이라 정부가 나중에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정책에도 유가는 올해중 35%나 올랐다. 중앙정부가 국영석유회사에 주는 보조금이 바닥나 더 이상 가격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은 금리도 크게 올렸다. 5월 19일 중앙은행 기준금리가 8.75%에서 12%로 오른 데 이어 21일 만인 6월 10일에 다시 14%로 올렸다. 기준금리가 14%가 되면서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21%, 수신금리도 19% 내외를 오르내리고 있다. 중국에 버금가는 고성장을 지속하던 인도도 5월 물가 상승률이 8%를 넘었다. 주가는 올해 들어 27%나 빠졌다. 인도 중앙은행은 이달 초 인플레이션에 대처할 목적으로 단기 대출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8%로 끌어올렸다. 달리는 코끼리가 휘청거리는 코끼리가 된 것이다. 올 초만 해도 경제전망기구들은 미국의 경기 침체를 걱정했을 뿐 아시아는 약간의 부침에도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고유가가 촉발한 일련의 어려움 속에 속속 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미국도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다는 이유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을 정도다. 실제로 6월 6일 2.4%이던 2년 만기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이 10일에는 2.9%로 상당히 올랐다. 하지만 금리를 인상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WSJ는 “인플레에 대한 전형적인 대응 방법은 금리 인상이지만 이는 경제성장에 타격을 주고 증시에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수출 주도형 국가는 통화 안정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에선 유가 인상으로 대표되는 물가 불안이 정치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6월 13일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정부의 유가 인상 조치에 항의하며 압둘라 아맛 바다위 총리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공공 집회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앞서 8일에는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이끄는 야당연합이 쿠알라룸푸르 축구경기장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열고 대규모 시위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 같은 집회와 시위를 촉발한 것은 내수용 기름값 인상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최근 내수용 휘발유 가격을 41%, 디젤 가격을 63% 올렸다. 이 조치는 4.2%의 물가상승을 불러왔다. 이는 지난 10년래 가장 높은 수치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에너지 보조금이 이미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내수용 유가를 잡아둘 수만은 없다며 이 같은 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수천 명의 시위대는 기도일인 금요일을 맞아 쿠알라룸푸르 빈민가의 한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집단 기도를 올린 뒤 총리 퇴진 구호를 외치며 중심가 초고층 빌딩인 페트로나스 타워까지 행진했다. 페트로나스 타워는 말레이시아 경제발전의 상징으로 통하는 곳이다. 유가 인상으로 대표되는 인플레이션이 그간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 있던 빈부 갈등을 표출시킨 것이다. 이날 말레이시아 경찰은 폭동진압 경찰을 대기시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압둘라 총리는 지난 총선에서 안정 의석 확보에 실패한 터라 이러한 시위는 그에게 큰 압력이 되고 있다. 다급해진 압둘라 총리는 “올해 더 이상 유가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해 장관들부터 급료를 깎겠다”고 발표했지만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는 유가를 올리는 대신 소형차와 오토바이를 모는 서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할 계획도 있다고 발표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이래저래 압둘라는 고유가에 따른 경제 위기로 2003년 10월 총리에 오른 이래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참고로 말레이시아는 석유 수출국이다. 말레이시아에선 정권 퇴진 압력 국제유가는 올해 들어 이미 여러 차례 기록을 갈아치웠다. 잠시 진정된다 싶더니 다시 오르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다. 이달 초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 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장중 역대 최고치인 배럴당 139.12달러까지 치솟은 것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150달러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지만 그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은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끔찍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가스프롬 최고경영자(CEO)인 알렉세이 밀러가 직접 한 발언이다. 그는 6월 10일 프랑스 도빌에서 열린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기자들에게 “가까운 장래에 원유 가격이 배럴당 250달러에 이를 것으로 생각한다”며 “주요 요인은 투기가 아니라 수요 증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석유업자의 ‘희망’일 수 있지만 세계는 고유가 공포에 떨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의 대표적 민간 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쯤 기름값이 지금의 반 토막이 될 것이라고 예측(이코노미스트 942호 보도)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경고음을 내고 있다. 올해 아시아 지역 인플레이션율이 5.1%나 돼 지역 경제성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6월 15일 경고한 것이다. 이날 쿠알라룸푸르에서 이틀째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 세계경제포럼에서 라자트 나그 ADB 전무는 “우리가 제시하는 올해 아시아 지역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10년래 가장 높은 5.1%”라며 “이것조차 4월에 예측한 수치로 곧 전망치를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중앙은행의 라자트 이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그는 이달 초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0.25%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인플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가장 나쁜 형태의 세금”이라고 말했다. 인플레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각국 정부가 경제적 이유는 물론, 국내 유가 인상에 따른 서민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계속 높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물가 불안이 자칫 빈곤층의 반정부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권위주의 정부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든 정권이 불안해지는 요인이 된다. 어느 나라 지도자라도 피해 가고 싶은 상황일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 지역에선 경기 위축과 주가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 (ciimccp@joongang.co.kr) | [943호] 2008.06.23 입력 |
'일반경제기사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 넘는 고성장은 ‘아 옛날이여!’ (0) | 2008.08.29 |
---|---|
흥겨운 잔치 뒤 고통 기다린다 (0) | 2008.08.29 |
화주·차주·정부 ‘相生 바퀴’ 굴려 (0) | 2008.06.29 |
잠깐 ‘휴전’일 뿐 ‘종전’ 아니다 (0) | 2008.06.29 |
다단계 사슬에 ‘물류 동맥’ 끊긴다 (0) | 2008.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