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잔치 뒤 고통 기다린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 물가 등 각종 경제지표 악화 … 중국 정부는 올림픽 효과 낙관 |
개방 30년을 맞은 중국은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었다. 쉼 없이 달려온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더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국 경제에도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위기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올림픽 이후 거대 중국은 어떻게 될까? 현지 취재와 국내 전문가들을 통해 중국의 미래를 진단해 본다. 지난 7월 30일 오후 베이징 서역 대합실. 행색이 남루한 40대 남자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허(赫)씨라고 밝힌 이 남자는 베이징에서 일자리를 잃은 농민공(농촌 출신 일용 노무자)이다. 그는 “베이징에서 버티면서 돈벌이를 해야 하는데 일자리도, 잠잘 곳도 마땅치 않아 집으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7월 20일부터 두 달간 베이징 안팎의 3000여 개 공사 현장이 전면 공사 중단에 들어갔다. 허씨와 같은 농민공들은 고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간쑤(甘肅)성 징위안(靖遠)현 출신인 허씨는 6년 전 베이징에 왔다. 베이징이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뒤 전역에 대규모 토목공사 붐이 일 때였다. 허씨에게 매달 1500위안(약 23만원) 벌이는 큰돈이었다. 그는 “고생을 하면서도 매달 집으로 1000위안을 송금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허씨는 자신이 일하던 베이징 남부 펑타이(豊臺)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이 7월 17일 문을 닫은 뒤 베이징 외곽의 고향친구 집에 머물면서 막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허씨 처지의 농민공이 1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일감이 있을 턱이 없었다. 농민공은 베이징에서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올림픽을 앞두고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심검문에서 외지 출신인 농민공은 단속의 표적이다. 허씨는 “올림픽 덕으로 몇 년 생계 걱정 없이 잘 살았는데 올림픽 때문에 다시 일자리를 잃고 고향에 가야 한다. 이런 현실이 믿어지느냐”고 되물었다. 후진타오(湖錦濤) 국가주석은 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중화의 부활’이라고 선언했다. 19세기 서구의 침탈로 짓밟힌 중화제국의 자존심을 올림픽을 통해 드높이겠다는 의미다. 중국의 바람은 각각 1964년과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과 한국의 길을 따르는 것이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 후 국민총소득(GNI)이 23조4000억 엔(1964년)에서 49조9000억 엔(1969년)으로 뛰었다. 한국도 같은 기간 136조원(1988년)에서 290조원(1993년)으로 급증했다. 중국도 올림픽을 디딤돌로 경제성장을 지속해 2020년까지 중산층을 5억 명으로 늘리는 샤오캉(小康) 사회를 만드는 목표를 세웠다. 샤오캉 사회가 되면 허씨와 같은 농민공도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당분간 최소 8%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이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서 올해와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과 같은 국제기관에서부터 스탠더드차터드·리먼브러더스·크레디트스위스 등 다국적 금융회사들 모두 한목소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 최악의 경우 7.2%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내부에선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다. 문제는 하락이 완만할 것인가, 급격할 것인가다”(가오후이칭[高輝淸] 중국 국가정보중심 발전전략처장)는 비관론도 만만찮다. 올 벽두만 하더라도 이 같은 전망은 찾기 힘들었다. 지난해 중국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 11.4%, 국제수지 흑자 2622억 달러, 외환보유액 1조4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너무 잘나간 게 잘못이었다. 당장 경기과열 우려가 나왔다.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최소 1%포인트 상회한 것으로 분석된다(삼성경제연구소).
이후 강력한 긴축정책이 펼쳐졌다. 해외 인플레이션이 국내로 전이되는 부분을 흡수하기 위해 위안화 절상을 용인했다. 상반기 중 위안화 가치는 6.5% 올라 작년 연간 절상폭(6.9%)에 육박했다. 지난 7월 16일엔 달러당 위안화가 사상 최고치(6.8109위안)를 기록했다.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지급준비율도 올렸다. 올 6월 지준율을 0.5%포인트씩 두 차례나 인상했다. 중국인민은행은 이미 지난해 기준금리인 1년 만기 예금금리를 올 들어 6차례에 걸쳐 1.35%포인트 인상했다. 또 수출 증치세 환급률을 내렸다. 숨을 고르면서 이 참에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물가 상승이 좀처럼 안 꺾인 것이다. 고유가와 올 들어 잇따른 폭설·수해·지진 등 자연재해의 영향이었다. 베이징에서 7년 넘게 살았던 교민 이태희씨는 “지난해만 하더라도 100위안 갖고 세 식구 일주일 치 장을 볼 수 있었다. 요즘엔 어림도 없다. 쇠고기 1㎏이 15위안에서 30위안으로 올랐다. 한국에서 1만원 갖고 장 볼 엄두가 안 난다고 하는데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초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올 2월 8.7%를 찍은 뒤 6월 7.1%로 약간 내려갔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8.8%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PPI를 CPI의 3개월 선행지수로 평가한다. 중국에선 그보다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곽복선 KOTRA 베이징 무역관장은 “물가상승을 주도했던 돼지고기 값이 안정됐고, 정부의 강력한 가격통제 때문에 일단 진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압박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절상은 핫머니 유입을 가져왔다. 중국 공상은행은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액 1조8100억 달러(6월 말 기준) 중 5000억 달러 이상이 투기 성격을 띤 자금이라고 추정했다. 황규광 무역협회 베이징 지부장은 “핫머니는 감시를 피해 외국인직접투자(FDI)와 무역대금을 통해 유입되기 때문에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절상은 산업 고도화 정책과 맞물려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평균 수익률이 3.3~4%인 중국 의류산업의 경우 위안화가 1% 절상하면 수익이 4%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무역흑자 증가율은 올 4월 첫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6월까지 3개월 연속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6만7000여 개 중국 기업이 도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4년 40%에 달했던 연간 수출증가율은 올해 2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문제를 중국 지도부는 잘 알고 있다. 지난달 25일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치국회의에서 향후 거시경제 정책의 방향을 확정했다. ‘량팡’에서 경제성장을 유지하면서 물가는 통제하는 ‘이바오이쿵(一保一控:하나는 유지, 다른 하나는 통제)’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뚜렷한 성장 둔화세와 이에 따른 부작용 때문이다. 위안화 절상 폭도 조정될 조짐이다.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는 ‘위안화 환율 탄력성 강화’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인민은행이 위안화 절상속도를 늦출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불러왔던 대외여건이 안 좋다는 점이다. 지성규 하나은행 중국법인 부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만이 독야청청(獨也靑靑)하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외줄타기와 비슷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금리를 올릴 경우 주가·부동산의 추가 하락을 가져오고 핫머니 유입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물가를 잡으면서 성장을 지속하기도 만만찮은 목표다. 핫머니는 막고 투자를 풀기는 쉽지 않다. 박한진 KOTRA 중국팀 차장은 “한쪽을 막으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중국 경제에 민감한 한국으로선 올해와 내년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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