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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차주·정부 ‘相生 바퀴’ 굴려

도일 남건욱 2008. 6. 29. 11:09
화주·차주·정부 ‘相生 바퀴’ 굴려
일본 사례로 본 해법
기름값 오르면 자연스럽게 분담 … 자민당 실력자가 ‘트럭 수송’ 책임 맡아

▶일본 후쿠오카 컨테이너항 전경.


일본 동북지방 아키타(秋田)현의 화물차 업체인 히노데 운수. 이 회사의 시마다 야스코(嶋田康子) 사장은 최근 화주(貨主)인 한 기업과 “유가 상승분을 화물 운송요금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경유 값이 치솟는 현 상황과 안전한 운송을 위해선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는 사정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였다.

시마다 사장은 “물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윈-윈(win-win)’의 관계다. 화주 입장에서도 비용 부담이 늘지만 이로 인해 물류가 원활하지 않을 때 치를 희생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현에서 60대의 화물차로 화물업을 하는 A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유 가격이 급등한 지난해 말부터 도무지 버티기 어려워 화주 기업에 운송비 인상을 상담했는데 올 들어 상당수 화주가 스스로 3~5%가량 인상해 주기 시작했다.

예컨대 인접한 사가(佐賀)현에 10t 차량이 한 번 가는 데 2만 엔이었는데, 여기에 1000엔을 더 얹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원유가가 급등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물류 대란을 겪고 있지만 일본은 비교적 조용하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화물차 운송료 체계는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일단 화물차 운송료는 신고제다. 화물차 업체들이 제각각 가격을 신고하고 영업한다. 반면 화주는 시장에서 가격 조건을 보고 업체와 계약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물차 업계에 화물연대 같은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기름값이 한국만큼 크게 오르지 않는 석유시장구조가 정착돼 있다. 일본의 석유시장은 기본적으로 자유경쟁체제다. 2001년부터 정유시장을 완전 자율화했다. 한국이 채택하고 있는 상표 표시제(폴 사인제) 같은 주유소 공급증명원 제도를 완전 폐지한 것이다.

완전 자율화를 시행하니 주유소들은 아무 정유사에서나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일부 주유소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외국업체에서 기름을 수입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그렇게 되니 주유소에 대한 정유사의 지배권이 대폭 약화됐다. 결과적으로 국제 유가가 올라도 정유사가 함부로 기름값을 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의 경유 값은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ℓ당 140(약 1330원)~150엔(약 1425원)가량이다. 2003년 ℓ당 65엔 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오르긴 했지만 한국(1912원)과 비교하면 상당히 싸다.

게다가 일본의 경유 유류세가 한국보다 저렴하다. 결과적으로 한국처럼 국제 유가 상승폭이 그대로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와 정치권이 원활한 물류 확보를 위해 계속 시장을 관찰하며 발 빠르게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점이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안에는 ‘트럭 수송진흥 의원연맹’이라는 조직이 있다. 유가가 오르면서 임시적으로 생긴 조직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물류의 중요성을 알고 설치한 조직이다.

이 조직의 회장은 자민당 간사장 출신으로 일본 정치권에서 셋째로 큰 파벌의 수장이기도 한 고가 마코토(古賀誠) 의원이다. 현재는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실력자다.

이 의원연맹은 올 3월 4일 긴급총회를 열고 화물차 업체의 어려움이 심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국토교통성과 공정거래위원회에 화물차 사업자의 구제조치안을 강구할 것을 긴급 건의했다.

이 건의를 받아 정부 측인 국토교통성이 ‘연료특별부가운임’ 가이드라인, 즉 “유가 상승분을 화물 운송요금에 적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명문으로 규정하는 대책을 마련, 같은 달 14일 공식 발표했다.

이는 화주 업체에 강제성 있는 규정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유가 상승분을 운송요금에 반영할 것을 지도·감독하는 것과 아닌 것은 명확한 차이가 있다.

마지막은 화주와 운송업자 간의 도의(道義)다. 이 또한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불문율처럼 사회에 관행처럼 뿌리 박힌 상생의 원칙이다. 오른 기름값을 화물 운송료에 반영하는 시장원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유가로 인한 비용 증가분의 60%는 화주가, 40%는 화물차 업자가 분담하는 식이다. 이는 굳이 화물 업계뿐 아니라 일본 경제계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업체로 성장한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가이젠(改善)’이라 불리는 철저한 원가 절감에서 추가 이익이 발생할 경우 부품 납품업체의 납품단가를 인상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공유한다. 고통도 이익도 분담하는 방식이다.


서로 공조하며 상도의 지켜

기업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비용 증가에 따른 부담을 화물차 업체에만 전가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대신 화주 입장에선 그 부담 증가분을 가격인상과 자체 합리화 구조조정 및 물류혁신을 통해 해결한다.

예컨대 일본의 대형 유통업체인 세이유(西友)는 다섯 곳의 대형 음료업체와 수도권에 공동으로 물류창고를 신설해 물류 단계를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였다. 물류 효율화를 통해 비용 증가를 극복하는 것이다.

또 소비자가격 인상으로 전가한다고 해도 그 폭은 최대한 억제한다. 유가가 오르면서 일부 품목의 소비자물가가 인상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 내 일각에서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주된 원인을 화물차 업체의 공급과잉이라고 지적한다. 맞는 지적이긴 하지만 이 또한 일본의 사례에 비춰보면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도 마찬가지로 1990년부터 규제를 완화해 기본적으로 화물차 공급과잉 상태다. 가격인상이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일본의 경우 화주나 화물차 업체, 그리고 정부가 공조해 자체적으로 노력할 것은 하면서 원만하게 중간점을 찾아가는 노하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굳어진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차이점이자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