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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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높은 이자를 쳐줄 테니 특판 예금에 가입하라는 은행들의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나 우편물이 자주 날아 들어온다. 대놓고 길거리에 현수막을 내건 은행도 있다.
불과 몇 년 전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며 대출 받아 집 사라고 권유하고 다니던 은행들이 어쩌다 이렇게 돈 가뭄에 시달리게 됐을까. 바로 이런 무리한 자산 불리기 외형 확장 경쟁 때문이다. 그 부담은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부가 10·19 대책을 통해 은행의 대외채무에 지급보증을 서기로 했다. 은행들이 못 갚으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대신 물어내야 한다. 은행들의 주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달러 기근에 이어 원화 가뭄 현상까지 나타나자 자기네들이 찍어낸 은행채를 사달란다.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더러 돈을 찍어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다. 은행채는 연말까지 25조5000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온다.
국민은 11년 전 외환위기 때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은행 등 부실 금융기관에 대준 일을 기억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외환위기의 아픔을 너무 빨리 잊었고, 교훈도 새기지 않았다. 결국은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 지원으로 되살아난 은행들의 후진적 영업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예대마진에 기대 편하게 돈장사를 한다.
주택담보대출 경쟁을 벌여 부동산 거품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수수료 수입을 올리기 위해 멀쩡한 예금을 펀드 판매로 돌렸다. 그러고선 몇 조원씩 이익이 나자 임직원들이 나눠먹기 잔치를 벌였다. 지난해 금융업 종사자의 월평균 임금은 453만2000원으로 전 산업 평균(282만3000원)의 1.6배다.
외환위기 때 그만큼 혼났으면 정신 차릴 만도 한데 리스크 관리도 엉망이다. 단기 자금을 끌어와 장기로 운영하는 미스매치(만기 불일치) 영업 행태를 버리지 못했다. 2000년부터 해외에서 싼 이자로 단기 자금을 빌려다가 파생상품 시장에서 장기로 운용했다. 그러다가 국제 금융위기로 해외에서 달러를 거둬가자 내년 6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800억 달러를 갚는 데 허덕댄다.
은행들은 또 수수료를 더 챙기려고 환위험 회피 상품 키코를 거래 중소기업에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은 채 떠안겼다. 그러고선 자기네 사정이 어려워지자 기업들로부터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빼앗는다. 10·19 대책이 나온 사흘 뒤에야 은행장들은 뒤늦은 ‘반성문’을 썼다. 임원 연봉을 삭감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가계 고객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뻔한 내용이지만 그나마 전날 대통령이 “국민 세금으로 혜택 받는 은행들이 고임금 구조를 유지한 채 지원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한 데 대한 제스처였다. 일을 잘하면 연봉이 20억원이든, 10억원이든 누가 뭐라나. 일은 엉망으로 해놓고선 문제가 터지면 정부에 손 벌려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우니 뭐라고 하는 게다.
도대체 은행이 사고를 치면 그 뒤치다꺼리를 언제까지 국민이 해야 하나. ‘9월 위기설’이 괴담 수준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니만 ‘10월 위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1000억 달러의 빚 보증에 450억 달러를 은행에 직접 대주기로 했는데도 1년 전에 비해 주가는 반 토막 나고 환율은 두 배를 향해 치닫는다.
“코스피지수가 환율 같았으면”이란 말까지 나도는 이 지경에 확실한 금융지원책으로 ‘돈맥경화’를 풀면서 책임 소재를 가릴 때는 감독 당국이든, 은행이든 찾아 묻고 따져야 한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0월 23일 하원 청문회에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반대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정부 정책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잘못을 제때 인정하고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이다. 필요하면 사람도 바꾸고. 국민은 지금 믿음을 주는 정부와 정책 책임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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