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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한국 경제 투기자본에 짓밟히나

도일 남건욱 2008. 11. 8. 13:01
“한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한국 경제 투기자본에 짓밟히나
헤지펀드들 공공연히 밝혀 … 정부 당국자들 ‘입’ 통해 정보 새기도
한정연·임성은 기자·jayhan@joongang.co.kr
10월 30일. 한국 정부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코스피지수는 사상 최대로 폭등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칭찬했다. 청와대에는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청와대 밖 분위기는 달랐다. 복수의 미국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대놓고 한국 시장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 한 달여 동안 한국 경제 위기론을 펼친 외신도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문제 없다는 한국 정부의 말, 문제 있다는 외신과 국제자본의 말. 과연 무엇이 맞는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들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연례회의 참석차 10월 14일 뉴욕을 방문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이번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에 큰 영향을 끼친 로버트 루빈 전 미 재무부 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체결로 외환시장이 다소 진정된 것은 알겠지만 이것으로 (한국의 금융위기가) 끝난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10월 30일 오전. 뉴욕에 본사를 둔 헤지펀드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연계돼 있기는 하지만 외환시장의 호재가 증시에 즉각 반영되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이런 심리적인 요인이 증시를 급격하게 부양시킨다는 것 자체가 한국 시장의 불안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30일은 FRB와 한국 정부가 300억 달러 규모 통화 스와프에 합의한 날이다. 이날 한국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177원 폭락한 12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뉴욕 역외선물환시장에서도 원-달러 1개월 선물은 1360원으로 20원 떨어졌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5.75포인트(11.95%) 폭등해 1084.72로 장을 마쳤다. 1998년 6월 이후 최대 폭의 상승이다.

모처럼 정부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같은 시간 헤지펀드는 ‘한국 시장은 불안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했다. 서울의 축제를 바라보는 월가의 자본은 냉정하기만 하다. 또 다른 헤지펀드 관계자는 “불안정한 외환시장이 통화 스와프 합의로 다소 진정되겠지만 증시는 전체 시장의 동의에 의해 움직이는 건데 환율정책 하나만으로 안정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분간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1~2주가 지나면 또 한국 시장에 출렁임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축제가 끝나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올 것을 믿는 듯했다.

이빨 빠진 ‘헤지펀드’ 무시 못해

헤지펀드의 위력은 IMF 외환위기 때 겪어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청산하는 헤지펀드가 속출하는 등 활동이 위축된 것도 사실이다. 헤지펀드 분석기관인 유레카헤지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헤지펀드 규모가 현재 1조8000억 달러로 연초보다 1000억 달러 줄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올해 9월에만 투자손실과 투자자 이탈로 헤지펀드 자금 790억 달러가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활동 중인 전체 헤지펀드의 수도 지난해 8000여 개로 정점을 찍은 후 현재 7000여 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 헤지펀드의 자금줄 시타델인베스트먼트그룹이 10억 달러의 포트폴리오를 폐쇄했다는 외신은 헤지펀드의 몰락을 예고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조지 소로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자금력은 레버리지로 고무줄처럼 수십 배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뉴욕 기반 헤지펀드인 퍼트리의 태이 문 애널리스트는 “헤지펀드의 운용자금은 언제든지 불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펀드에 투자된 자금도 대개 2~3년 정도 회수를 못하도록 계약을 맺는데다 자금 운용 기간도 4~5개월 정도로 짧기 때문에 투자할 곳에 돈이 부족해 투자를 못하는 헤지펀드는 드물다”고 말했다.

맘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조지 소로스가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략한 데 쓴 돈은 110억 달러였다. 그러나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이 당시 다른 헤지펀드를 포함, 총 1조 달러 이상의 자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영진 농협중앙회 자금시장부 차장은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서 문제지 몰려드는 분위기는 아니다”며 “헤지펀드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타이밍은 아니다”고 말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도 “(헤지펀드의 한국 공격설이) 이번에는 틀릴 것”이라며 “투기자본에 의해 변동은 있을 수 있지만 과거처럼 경제 시스템 자체를 망가뜨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헤지펀드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외환 현물시장은 규모는 작고 규제는 많기 때문에 주로 홍콩이나 뉴욕 시장에서 (선물환을) 사고팔면서 동시에 다른 파생상품으로 헤지를 하는 게 정석”이라고 말했다.

태이 문 애널리스트도 “누구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을 넘은 시점에서 차익을 노린 단기투자자금이 이미 개입한 듯한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을 안정시키고 투자심리를 회복하려는 정부에 또 하나의 복병은 바로 외신. 정부는 외신과의 전쟁을 선포한 듯, 외신 기사에 일일이 대응하며 우리 시장의 안정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10월 한 달만 봐도 끊임없이 한국 경제 위기론은 확대 재생산됐다.

 


원-달러 환율은 올 9월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왔다. 외환은행 딜링룸 모습.

외신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먼저 영국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 FT는 10월 6일 “한국이 아시아에서 금융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도한 데 이어 14일 ‘가라앉는 느낌’이란 기사에서 “단기 대외채무가 과다해 한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0월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단기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국, 멕시코, 브라질, 동유럽 국가들이 지원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10월 24일은 코스피지수 1000선이 붕괴된 날이기도 하다.

FT와 WSJ 등 영·미계 유력 언론들이 잇따라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적 기사를 내보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위기 극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외신 기사 중에는 오보로 판명되거나 실상과 동떨어진 악의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근거 없는 ‘한국 때리기’란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제 금융계의 우려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데다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까지 외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설득’이라기보다는 ‘자극’이었다. 정부가 반박 성명을 내자 WSJ는 즉각 “한국 관료들이 각종 어려움이 나타나는 데도 경제가 탄탄하다고 주장한다”고 보도했다. ‘IMF 구제금융설’을 타전한 WSJ의 에반 람스타드 한국 특파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3주 전부터 우리를 비롯한 외신을 비난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견을 궁금해 한 것은 이코노미스트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외신과 소통을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람스타드 기자는 “KBS, MBC, YTN은 항상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면서 국제 문제(foreign affairs)가 발생하면 정부 주장을 그대로 전달(transmit)하기만 한다”며 근거 없는 한국 때리기라는 정부 측 주장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멕시코 같은 나라와 한국을 묶으니 솔직히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을 멕시코 등과 함께 이머징마켓으로 분류하는 경제학자도 적지 않다.

헤지펀드 정보창고 ‘강만수 장관’

정부와 외신이 얼굴도 못 본 채 벌인 싸움은 10월 29일 끝이 났다. 이날 IMF가 “신흥시장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단기유동성 지원창구(SLF)인 달러 통화 스와프를 만든다”고 공식 발표한 것. 그러나 한국 정부의 반박이 사실과 달랐다는 점은 화제가 되지 못했다. 정부의 말이 시장에서 무게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뉴욕 헤지펀드의 한 매니저는 “헤지펀드가 WSJ 보도 하나로 투자전략을 만든다면 비싼 몸값을 주고 이른바 ‘금융 용병’과 같은 우리를 왜 쓰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외신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정부 관계자가 입조심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충고했다. 태이 문 애널리스트는 “한국 시장을 리서치하면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흘리는 말로 한국 정부의 정책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한 나라의 정책을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지 소로스는 영국, 일본, 태국 외환시장을 공략하면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이용해 ‘말’로 시장을 교란하고 다른 헤지펀드가 공격에 동참하는 신호탄을 쐈다. 세계 금융계에서 10월의 마지막 밤은 부활 전야다. 헤지펀드는 미국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1월부터 옷깃을 여미고 새해를 연다.

 

인터뷰 헤지펀드 퍼트리의 태이 문 애널리스트
“한국 시장 공략 전략회의 있었다”

태이 문 애널리스트는 6조원대 자금을 운용 중인 뉴욕 기반 헤지펀드 퍼트리에서 운영전략과 투자은행과의 협상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전화와 e-메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내려졌을 뿐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또 “한국 통화(currency)는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3~5개월 정도 단기 투자로 차익을 실현해야 하는 헤지펀드에게는 기회가 많은 시장이지만 그만큼 시장을 읽기가 어려워 투자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퍼트리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주식, 외환 등 다양하다. 이 가운데 외환 부문은 최근 혼란한 유럽 시장에서 꽤 높은 수익을 올렸다. 태이 문 애널리스트는 “우리 회사에서도 한국 외환과 주식 등과 관련된 투자 전략회의가 열렸다”고 밝혔다.

-헤지펀드들은 한국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변동성이 커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도 크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장관이 경제정책을 공개하는 발언을 자주 하는데 이는 결정을 못 내리는 국제자본에는 출발 신호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작은 시장이다. 헤지펀드 종사자이기에 앞서 한인으로서 장관이 원화정책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보고 걱정했다.”

-헤지펀드가 한국 외환시장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나.
“원화의 문제는 헤지펀드 때문에 생긴 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빌린 돈을 갚아야 했고, 금융위기로 해외은행들이 대출을 피하면서 이를 외환시장에서 구해다 써야 했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내려간 것이다. 이 시기에 투기자본이나 헤지펀드가 차익을 노리고 시장에 들어가 더 악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주요 원인은 아니다. 경제 펀더멘털의 문제다. 우리 중 일부는 한국이 일본의 1980년대 버블 붕괴로 가는 과정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은행은 원화 가치 하락과 관련한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다.”

-한국 대기업들의 재정 상황은 어떻다고 보나.
“외국 대기업은 자국 통화로 돈을 빌리는 일이 거의 없다. 미국 은행에서 달러를 빌린다. 그래서 별문제가 안 생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자국 은행에서 원화로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환율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나. 론스타를 봐라. 그들이 한국에서 다소 논란이 될 만한 여지를 줬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한국에 외국인들이 직접투자를 잘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론스타와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회수를 할 수 없는 곳에 누가 투자를 하겠나.”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보나.
“절대로 먹힐 리 없다. 한국뿐 아니라 어떤 나라도 공개 외환시장에서 환율을 움직일 수는 없다. 한국 정부가 보유한 외환으로 원화를 사봤자 보유한 외환이 얼마인지 이미 다 알려진 상황 아닌가. 정부가 예산이나 교역, 은행 시스템이 잘못됐을 때는 다소 개입할 수 있지만 공개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국과 미국이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에 합의했다. 외환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보는가?
“향후 어떠한 결과가 있더라도 헤지펀드를 욕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고 먼저 밝히고 싶다. 이번 합의로 원화는 단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다. 하지만 1~2주 정도 지켜보자는 게 회사 내 분위기다. 부티크 IB(소규모 투자자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투자은행이지만 자금력이 막강한 경우도 많다)나 대형 헤지펀드에서 일하는 친구들 얘기도 비슷하다. 미국이 7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헤지펀드 업계에서는 이 효과가 현재까지는 별로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말이 안 먹히는 상황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 정부의 말도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통화 스와프 체결 전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원-달러 환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었다.)”

-헤지펀드가 한국을 ‘기회의 땅’으로 보지 않게 되는 조건은 뭔가.
“우린 단기투자이기 때문에 GDP는 많이 안 본다. 안정된 시장을 기회라고 보진 않는다. 생각보다 한국 대기업과 관련된 파생상품을 보유한 헤지펀드가 많다. 현재 한국 시장 상황에서 헤지펀드를 원천봉쇄하려면 외국기업 전체에 대한 규제를 심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공개돼 있는 시장을 닫는 것은 장기투자자까지 모두 한국에서 나가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 정부는 규제할 방안을 갖고 있지도 않고 정부 규제가 자본시장의 올바른 흐름도 아니다. 그러나 원화보다 중요한 통화도 많고 유럽 시장에서 계속 기회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당장 국제자본의 타깃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한국 정부가 시장의 신용을 빨리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인터뷰 에반 람스타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은 워스트”

지난 3개월간 정부의 약발이 먹히지 않은 것은 국내 증시나 환율뿐 아니다. 금융시장에 외풍으로 작용했던 외신도 포함된다. 지난 8월 이후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깎아내리기’ 보도를 쏟아냈다. 정부는 이런 보도들에 대해 몇 차례 “근거 없는 왜곡 보도”라고 정면 대응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오죽하면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외신에 반박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 주장대로 “한국 경제 문제 없다”면 외신은 어떤 배경에서 ‘왜곡’ 기사를 쓴 것일까. 대놓고 물어보니 외신에서는 ‘어떤 언론이든지 왜곡 의혹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금융시장 안정을 바라보는 서구 외신의 잣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가 우리 경제 실상을 왜곡한다는 푸념을 하기 전에 외신이 어떻게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외신은 한국을 외국에 전달하는 창일 뿐 아니라 외신 기자들의 취재원 중 해외투자자도 포함된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부가 대응은 했을지언정 외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적어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에반 람스타드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한국에서 2006년부터 근무했으며 쇠고기 파동, 최근 경제상황 등 한국 주요 이슈에 대해 다뤄왔다. 최근 WSJ는 “ IMF는 지원 대상 국가로 멕시코·브라질·동유럽 국가와 함께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가장 크고 은행들의 예대율 136%는 아시아 평균 82%를 크게 웃돈다” 등의 내용이 담긴 기사를 실었다. 한국 정부는 이에 즉각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유독 한국의 위기설을 과대포장하는 것 같다.
“외신이 한국 위기설을 부각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 정부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인정한 후, 위기에 대한 금융시장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했다. 보다 민감해졌다. 리먼 파산이 있기 전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부채수준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달라졌다. 마치 90~100점을 받은 학생에게 A를 주었던 잣대가 95~100점을 받은 학생만이 A를 받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말하자면 93점짜리 학생과 같다. 예전엔 A학점이었지만 지금은 B학점인 것이다. 외신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보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아직도 ‘우리는 A’라고 주장하고만 있다. 둘째는 서구 경제학자, 외신들은 대체로 세상을 세 지역으로 나눠 바라본다. 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주지역. 확실히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아시아 나라들은 금융위기에 대처를 잘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은 가장 높은 부채(external dept)와 예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은 ‘베스트’ 중에 ‘워스트’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행히 언론과 투자자는 한국을 가리켜 ‘아시아 중 가장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보다 낫다고 말하기보단 말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사실(fact)조차 다른 경우도 있었다. 확인 안 했는가.
“같은 용어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같은 수치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WSJ의 지난 10일자 ‘Korea shouldn’t follow Iceland’ 제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WSJ는 ‘은행들의 예대율 136%는 아시아 평균 82%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으나, 재정부는 9월 말 현재 국내은행(일반은행)의 예대율(CD포함)은 103.2%로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이 기사를 쓰진 않았지만 논쟁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문제는 예대율에 CD(양도성예금증서)를 포함하느냐, 안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많은 (서구의) 경제 전문가가 예대율을 말할 때 CD를 포함하지 않는다. CD는 고객이 돈을 다른 곳으로 빼낼 수 있으므로 일반 예금과 같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CD를 포함하지 않으면 예대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민이 CD를 팔기보단 사놓기 때문에 예금에 포함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외신 입장에서 한국 정부의 태도를 어떻게 느끼는가.
“외신을 통하는 창구가 부족할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자국 언론에 초점을 맞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외신을 통하는 창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외신을 공격하는 태도는 하나의 전술처럼 보였다. 정부가 한국 국민에게 ‘우리는 문제가 없는데,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이 위험하다는 듯 대하는 것은 문제’라는 식으로 말하기 위해 외신을 공격한 것처럼 여겨졌다. 만약 정부가 시장의 소리를 듣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해외) 투자자들은 더 이상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