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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경험 한국서 꼭 살릴 것”“유학생 출신이 맨해튼 공공사업 건축·

도일 남건욱 2009. 3. 8. 12:37
“뉴욕 경험 한국서 꼭 살릴 것”
“유학생 출신이 맨해튼 공공사업 건축·조경 총책임자 맡아”
뉴욕시 마천루 바꾸는 건축가 윤희연·황나현씨
뉴욕=클레어 정 뉴욕 금융·부동산 자유기고가·clairej174@gmail.com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1.45마일(약 2.32㎞) 길이의 오래된 선로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바꾸는 뉴욕시 공공사업 ‘하이라인(Highline)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한인 건축가와 조경가가 맡고 있어 눈길을 끈다. 화제의 주인공은 맨해튼 소재 세계적 조경설계회사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의 윤희연·황나현씨. 그들은 누구인가?

뉴욕시가 새롭게 공원으로 조성할 폐선로의 과거 모습(오른쪽 위 작은 사진)과 완성 후 상상도.

하이라인 철로는 1990년대 당시 뉴욕시 전역에 육류와 우유 등 식료품을 실어 나르는 주요 운송수단으로 사용돼 오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트럭 운송이 발달하면서 점점 소용가치를 잃고 방치돼 왔다. 폐선로는 개발화의 물결 속에 수차례 철거 위기를 맞았으나 시민단체와 환경보존주의자들의 반대로 보존되어 오다 뉴요커들의 휴식처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하이라인의 보존은 1999년 비영리단체 ‘프렌즈 오브 더 하이라인(FHL)’의 설립으로 본격화된다. FHL은 하이라인 보존과 공공 공간으로의 활용을 주장하며 공원으로 변형시키는 계획을 제안해 급기야 뉴욕 시정부의 허가를 받아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탄생 배경이다. 제1~3공구로 계획된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2004년 디자인 작업을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이며, 제1공구가 이르면 올봄에 뉴요커들의 휴식처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뉴욕시 공원 조성 프로젝트가 한국사회에도 소개되는 것은 바로 프로젝트를 맡은 주춧돌 황나현 건축가와 윤희연 조경가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한인 1.5세, 2세가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계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유학생 출신이라는 점에서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명실공히 한국인의 작품이라 할 만하다.

황씨는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와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이수한 후 ‘필드 오퍼레이션스’ 입사 전 미국계 건축회사 ‘OMA/렘 쿨하스와 헐조그&디 뮤론’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윤씨는 서울대 조경학과 졸업 후 같은 학교 환경대학원과 펜실베이니아대 조경·지역 개발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조경·건축·도시 설계회사 ‘왈리스 로버츠&토드’ 근무 후 필드 오퍼레이션스에서 일하고 있다.

유학생 출신이 일궈낸 아메리칸 드림

프로젝트에서 이들의 역할을 살펴보면 황씨는 설계와 시공을 총괄하는 프로젝트 매니저, 윤씨는 프로젝트 매니저의 지시 사항을 받아 협력업체에 일을 배분하고 공사 도면 완성, 디자인 주도에 이르기까지 세부 작업 실행을 책임지는 리드 디자이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디자인부터 완성까지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 하이라인 프로젝트 진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인물이라는데 얼마나 관여하고 있나?
황나현: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시작된 2004년 1공구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해 오고 있다. 2공구는 2007년 여름에 시작해 현재 공사 수주 단계에 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21세기 센트럴 파크’라 불릴 정도로 뉴욕시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 및 기대가 크다. 현재 1공구 공사가 90% 완성돼 조만간 공개될 예정인데,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 공간 개장이 개인적으로도 많이 기대된다.

>>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현대사회 개발화의 물결 속에 옛것을 보존한 대표적 사례로도 각광받고 있다.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윤희연: 하이라인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옛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시민단체의 요구 사항을 적극 수용하는 것이었다. 과거 사용되던 철로에는 일일이 번호를 달아 재사용했으며, 철로 이용 중단 후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그 고유의 미적 가치가 높다는 판단으로 씨앗 수확 과정을 거쳐 다시 심어졌다. 또 철로 사용 당시에 이용되던 배수 시설과 녹슨 가드레일도 보존됐다. 디자인 작업에서 이 같은 제약이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옛것을 재활용하는 데는 더 많은 노력과 기술적 어려움이 수반된다. 이번 작업을 통해 보존을 중시하는 선진사회의 새로운 시민문화를 접했고, 그에 따른 설계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데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 도시개발 사업과 관련해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느냐 아니면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느냐는 건축가, 조경가로서 언제나 직면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주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타당성 검토 작업이 수반되는데, 개발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개발지의 역사적 가치는 금전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이에 대한 개인적 의견은?
황나현: 보존과 개발을 서로 상이한 개념으로 단정하는 사회적 관습이 문제다. 완벽한 물질적 보존이나 정확한 재현을 통해서만 역사적 가치가 보존되고, 기존 구조물의 철거를 통해서만 가치 있는 개발이 가능하다는 식의 이해 부족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화 이후 대부분의 도시가 당면한 상황(비건축지 감소, 인구 증가, 도시 기능 다양화 등)을 볼 때, 새로운 사회적, 기능적 요구를 무시한 일률적 보존이나 기존의 역사성을 무시한 무조건 개발은 문화적,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결코 성공적이지 못한 구상이다. 기존의 도시 맥락 위에 제안되는 디자인은 역사적 가치를 통해, 그리고 그것을 선택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때 의미가 있다.

 

윤희연(왼쪽)·황나현씨.

>> 한국에서는 서울 청계천 복원 사업이 역사적 구조물 복원의 대표적 사례로 기억된다. 청계천 복원 사업과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유사점 및 차이점이 있다면?
윤희연: 두 사업의 공통점은 역사적 유산의 보존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서의 이용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또 하이라인 건설(1934년 완공)과 청계천 복개(1965년)는 둘 다 문제점 해결이라는 과제에 대한 해답으로 시행되었으며, 훗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하이라인 재설계와 청계천 사업을 낳게 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하이라인 프로젝트와 청계천 복원 사업 둘 다 정부 기관이 주관한 프로젝트며, 그 시행 과정에서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 세력과 큰 마찰을 빚었다는 사실까지도 같지만 두 프로젝트의 결정적 차이점은 최후 승자가 누구였느냐에 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경우 승자는 시민단체다.

시민단체는 철거를 감행하려 했던 당시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를 고소하면서까지 하이라인을 고수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경우 삶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는 주변 상인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결국 정부의 의지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결과적으로는 흡사할지 모르나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역사의 어떤 면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느냐는 가치 판단의 차이는 정부기관과 시민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정부 입장에서 볼 때 1960년대 이전 청계천의 감성적인 풍경은 다시금 과시하고 싶은 역사였겠지만, 1965년 이후의 청계천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현세대의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역사적 장소였다. 하이라인의 경우 뉴욕 시민들은 1934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미트 패킹 디스트릭(250개가 넘는 정육점이 위치한 이곳은 미 전역으로 공급되는 고기를 저장·포장하던 곳)의 역사성과 30여 년간 버려져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던 옛 자취를 그들 역사의 일부로 생각했고, 그것을 고수해 결국 하이라인 구조물을 탄생시키는 데 이르렀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의견 관철이 개발을 지지하던 시정부의 의지를 꺾은 것이다.

>> 아직까지 뒷골목의 한산함이 대세지만 얼마 전부터 미트 패킹 디스트릭에는 레스토랑과 바, 호텔, 디자이너 부티크, 갤러리 등이 속속 생겨나 맨해튼의 새로운 쇼핑, 외식 지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윤희연: 그렇다. 하이라인 재설계가 공식화된 후 일대 지가는 폭등했으며 건물 신축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이라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미트 패킹 디스트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신축건물이 모두 전 세계 유명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됐다. 아마 수년 후 이곳은 현대 건축의 전시장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 두 사람 모두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향후 한국에서 일하게 된다면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보고 싶은가?
황나현: 지금까지 경력을 쌓아 온 문화시설 및 공공 공간 등의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좋겠지만 특정 건축 장르에 국한되기보다는 의미 있고 흥미로운 작업이라면 무엇에든 도전하고 싶다.

윤희연: 프로젝트의 종류에 상관없이 좋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서인지 서울시에 대한 애정이 크다. 뉴욕 맨해튼의 면적은 서울의 7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서울이 지닌 다양성 이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민족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이 크다고 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본다. 이는 조경가인 내게 하나의 연구 과제며, 나아가 한국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