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색깔 따라 증세·감세 나뉘어선 안 돼
지난 11월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감세 논쟁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다. |
“2030년까지 장기 재정계획을 세워보면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 어디선가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한 말이다. 증세를 염두에 둔 듯한 이 말 때문에 곳곳에서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세금 더 받겠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노 전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증세를 밀어붙인 건 아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35%(2008년)로 낮춘 주인공이 그다. 감세 하면 흔히 보수정권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래퍼곡선’을 이론적 무기로 대대적으로 감세를 단행했던 레이건 전 미 대통령(공화당)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감세는 보수정권의 상징이 아니다. 증세가 떠오르는 진보정권에서도 감세정책을 편다. 노 전 대통령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다. 2001년 9월 김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10~40%였던 과표구간별 소득세율을 9~36%로 낮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아울러 한나라당의 법인세율 2%포인트 인하 제안을 수용했다. 여야 합의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참여정부 때도 감세 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 예상 밖의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이 만든 집권여당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증세론자였다. 복지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증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법인세·소득세 인하제안도 줄기차게 외면했다.
2004년 4월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자 정치권 안팎엔 ‘점진적 증세가 확실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도리어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이 나란히 낮춰졌다. 2004년 9월엔 소득세율을 구간별로 각각 1%포인트씩 인하했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였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세제개편의 핵심 키워드다. MB정부는 물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모두 세제개편 시기가 오면 이 원칙을 강조했다. 세율 합의과정에서 충돌을 빚거나 세율 인하폭을 둘러싼 이견은 많았지만 2000년 이후엔 감세 기조가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감세는 보수정권의 몫도, 진보정권의 의무도 아니다. 세율을 올리거나 낮추는 건 경제상황에 맞춰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가적 틀에서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경제가 산다. 한국외대 최광(경제학) 교수는 “요즘 벌어지는 감세 철회 논쟁을 보면 생산적이지 않다”며 “세금을 잘 모르는 국회의원이 나서 논란만 키우는 듯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 교수는 또 “정치인은 세율에 문제가 있다는 큰 판단만 하면 된다”며 세부적 대안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세금 결정 과정에 정치적 셈이나 이념이 침투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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