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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8800만원 벌면 부자예요?'소득세 과표구간 논란

도일 남건욱 2010. 12. 24. 19:02
'아빠, 8800만원 벌면 부자예요?'
소득세 과표구간 논란
최고세율 인구 증가 추세 … ‘무늬만 부자’ 서민 늘어난다
이윤찬·최은경 기자 chan4877@joongang.co.kr

경기도 산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44)는 7년 차 사장이다. 연 매출액은 3억8000만원가량이다. 지역 상권에서 제법 장사가 잘되는 집으로 알려져 주변 상인들의 부러움을 산다. A씨는 “50㎡(약 15평) 되는 가게 앞에 줄을 선 손님을 볼 때면 절로 흐뭇해진다”고 말했다.

소득세 최고세율 35%의 압박
남이 보기에 억대 부자로 성공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번 만큼 나가는 게 많다. 인건비·재료비·임대료·관리비 등 나가는 경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중 재료비 규모가 가장 크다. 월평균 1400만원에 달한다. A씨는 “요즘은 재료가 조금만 달라져도 손님들이 금세 알아챈다”며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줄일 수 없는 게 재료 값”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채소 값이 워낙 많이 올라 마진이 더 줄 것 같다”는 A씨. 순댓국 가격은 그대로인데 국에 들어가는 무 값은 12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으로 많이 드는 건 인건비. 정직원 3명과 시간대별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하는 돈이 월 600만원 정도다. A씨는 “점심시간에는 나까지 쟁반을 날라야 할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족 도움을 받을 처지도 못 된다. 부인은 아이들 교육에 매여 있다.

임대료는 월 200만원이고 가스비 등을 포함한 관리비용은 월 100만원가량이다. 이런저런 경비를 빼면 순이익금은 9500여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A씨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기 어려운 자잘한 비용을 모두 더하면 매출액의 75%가 경비로 나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9500여만원 정도면 가계를 넉넉하게 꾸릴 수 있지 않을까. A씨는 “볼멘소리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에겐 토끼 같은 두 딸이 있다. 두 살 터울로 열다섯, 열세 살이다. 교육비만 월 250만원 든다. 아파트 대출이자 50만원, 관리비 20만원, 보험료와 연금 50만원도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주유비와 교통비로 50만원, 외식하고 생필품 사는 데 50여만원을 쓴다. 여기에 학원 수강료와 운동비가 추가된다. A씨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고 요리학원에 다닌다. 틈틈이 운동도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다.

A씨 가계의 총지출은 월 500만원 정도다. 연 1500만원은 저축할 수 있는 여윳돈이 생긴다. 그래도 A씨의 고민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두 딸 대학 등록금과 결혼비용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까지 내야 하니 때론 야속할 때가 있다. 더구나 A씨는 소득세 최고세율인 35%를 적용 받아 연 2000여만원(지방소득세 포함)의 세금을 낸다. 소득세 최고세율의 과표기준은 연 소득 8800만원 초과다. 그는 “버는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건 국민의 당연한 의무지만 좀 과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새 과표구간 설정, 존경심이 전제
A씨는 2012년까지 시행이 유예된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35%→33%) 방침에 기대가 컸었다. 소득세가 2%포인트만 줄어도 저축·소비 부담이 한결 줄어들 것으로 봤다. 요즘은 풀이 죽었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이 철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연방 ‘최고세율이 뭔지’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A씨에게 두 딸은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아빠는 왜 세금을 많이 내요?” “아빠가 그렇게 부자예요?”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 현재로선 철회될 가능성이 크다. 굳이 낮출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로 별다른 효과가 유발되지 않을 거라는 전망에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고소득층의 소비행태는 대개 감세와 무관할 때가 많다. 내키면 구입하고, 성에 차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최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방침은 유지,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는 철회’로 가닥이 잡히는 이유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주장하는 ‘안’이 이것이다. 문제는 이 안이 채택될 경우 법인으로 등록한 자영업자는 감세 혜택을 받고, 개인 자영업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세금 형평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경제연구본부장은 “개인 자영업자가 본의 아니게 차별을 받을 수 있다”며 “법인세 최고세율은 낮추면서 소득세 인하계획을 철회하면 일관성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연 소득 8800만원 초과 사업자가 과연 감세와 무관할 정도로 부자냐는 것이다. 2008년 과표구간 8800만원을 초과한 종합소득세 신고자는 12만6714명. 이 중 자영업자는 38%에 달한다.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있지만 음식점·상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상당수다. A씨처럼 말이다. ‘연 소득 8800만원 초과 사업자를 부자로 한데 묶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최고세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1996년 8000만원에서 2008년 8800만원으로 10% 올랐다. 이 기간 1인당 평균 소득과 소비자 물가는 각각 58%, 43% 뛰었다. 물가상승률·소득증가율에 발맞춰 40%만 올랐어도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은 1억2000만원이 된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새 과표구간 설정안’이 나온 배경이다. 고소득 인구가 증가한 만큼 또 다른 과표구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한국과 같은 35%지만 35만7700만 달러(약 4억원)가 넘을 경우 적용된다.

안 대표의 안은 ‘연 소득 8800만원 초과~1억원 이하(또는 1억2000만원 이하)’ 구간의 소득세율을 35%에서 33%로 계획대로 2%포인트 낮추고, 이를 초과하는 구간에 대해선 현행 소득세율 35%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높이자는 취지다. 안 대표 측은 “새 과표구간을 만들면 1억원 이하의 경우 매년 4600억원, 1억2000만원 이하는 3900억원의 세수가 증대된다”고 전망했다.

강원대 구정모(경제학) 교수는 “세율구간 축소 등 세제 단순화는 국제적 추세였다”면서도 “세율구간의 상향 조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과표구간을 설정할 땐 전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인천대 옥동석(경제학) 교수는 “소득세를 많이 납부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이 전제돼야 새 과표구간을 진통 없이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둘러싼 문제는 의외로 간단치 않다. 법인세 최고세율만 내리면 형평성에 금이 간다. 새로운 과표구간을 제때 만들지 않으면 ‘무늬만 부자’가 양산될지 모른다. 부자가 아닌데도 부자 세금을 내는 애꿎은 피해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 기준을 잘 세워야 줄이 반듯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