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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논쟁 왜? 감세 논란에 ‘포퓰리즘’ 판친다세계는 감세 바람,

도일 남건욱 2010. 12. 24. 19:00
감세 논쟁 왜? 감세 논란에 ‘포퓰리즘’ 판친다
세계는 감세 바람, 거꾸로 가는 한국
OECD 국가 수준 복지 만들려면 100조원 이상 필요
이윤찬·장원석 기자 chan4877@joongang.co.kr
부자 감세 철회 논란이 정치판을 달군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을 뒤엎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복지예산을 늘릴지가 쟁점이다. 이참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수준으로 복지 규모를 키우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려면 100조원이 넘게 필요하다.
하지만 부자 감세를 철회해도 확보되는 재원은 연 5조원이다. 감세 효과 중 하나인 ‘미래 성장동력’도 잃는다. 곳간이 텅 빈 국가와 복지를 갈구하는 국민을 위한 금배지의 충정일까, 정략에 불과할까. 분명한 사실은 부자 감세 철회에 정치적 포퓰리즘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감세(減稅)’.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국민에게 박수를 받는 정책이다. 한 푼이라도 덜 내니까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정치판이 ‘감세 논란’으로 시끄럽다. 쟁점은 부자 감세 철회다. 2012년까지 실행이 유예된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의 백지화 움직임이다. 다소 낯설다. 표(票)에 살고 죽는 게 정치판의 속성이다. 감세만큼 인기 있는 카드도 없지 않은가.

감세 철회의 명분은 두 가지다. 국민 복지 추구와 재정 건전성 확보다. MB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세금을 덜 받다 보니 나라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국민 복지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거다. 실로 오랜만에 여의도 금배지들이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듯하다. 진심일까, 정략일까.

소득세·법인세의 과표구간부터 보자. 소득세 과표구간은 연소득 1200만원 이하(6%),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15%),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24%), 8800만원 초과(35%) 등 4단계다. 법인세 과표구간은 과표 2억원 이하(10%), 과표 2억원 초과(22%)다. 2012년이 되면 연 8800만원을 넘게 버는 사람과 과표 2억원 초과 기업은 세금을 덜 낸다. 예정대로라면 소득세(35%→33%), 법인세(22%→20%)의 최고세율이 2년 후 인하되기 때문이다.

이 감세정책은 도입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부자와 부자 기업만 혜택을 받는 것 아니냐.”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유예된 건 이 때문이다. 이른바 부자 감세의 첫째 시련이었다.

그러나 이는 또다시 벽에 부닥쳤다. 단초는 한나라당의 2010년 6·2 지방선거 참패였다. 이 선거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광역자치단체장은 불과 6명. 민주당보다 1명 적고, 4년 전에 비해 절반이 줄었다. 정치적 텃밭 경남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청와대는 물론 집권 여당은 뜻밖의 결과에 당황했고, 정책 방향을 180도 틀었다. 방향은 친(親)서민정책이었다.

올 10월 말 이 정책은 더 구체화됐다. 한나라당은 소득 7분위(70%)까지 아우르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70% 복지론’이다.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예 ‘복지국가’를 모토로 삼았다. 민주당도 뒤질세라 ‘보편적 복지’를 컨셉트로 내세웠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복지는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 모두의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감세 철회 논쟁에 숨은 정략
복지국가 비전은 나무랄 바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복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세율 인하는 곧 감세다. 복지의 전제는 세수 마련, 다시 말해 증세다. 70%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재원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여야의 높은 복지 목표를 달성하려면 OECD 국가 수준이 돼야 한다. OECD 평균 공공복지 지출 규모는 GDP(국내총생산)의 20.6%. 한국은 8.3%에 불과하다. OECD 수준으로 복지를 끌어올리려면 공공복지 지출 규모를 12.3%포인트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한 해 10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복지예산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국가채무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어렵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360조원에 달한다. 줄지도 않는다. 도리어 증가 추세다. 지난해 45조원의 재정적자를 냈고, 올해는 50조원에 가까운 부채가 더 쌓일 것이다. 국가채무에 잡히지 않는 공공기관 부채 377조원(2009년)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채무를 늘리는 건 ‘뇌관’을 건드리는 셈이다.

다른 방법은 증세. 세금을 늘려 복지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부자 감세 인하를 철회하면 재원 마련에 도움이 된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된 이유다. 그런데 이 역시 만족스럽지 않다. 규모가 너무 작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부자 감세를 철회하면 14조2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연간 4조7000억원 규모다. 100조원이 넘게 필요한 복지 수요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나라 곳간도 채우기 어렵다. 수백조원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15조원으로 메울 수 있겠는가.

 


6·2 지방선거 참패가 복지론 불러
복지와 나라 살림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부자 감세 철회’의 이면엔 얄팍한 정략이 숨어 있다. 부자 감세를 무너뜨리면 서민이 갈채를 보내고, 표심이 덩달아 꿈틀댈 거라는 셈법이다. 세율 인하를 둘러싼 논쟁은 어쩌면 정략적일 수밖에 없다. 서민을 지향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도 소득세 최고세율을 낮췄다. 국민의 정부 시절엔 소득세 최고세율이 40%에서 36%로 4%포인트 떨어졌다. 참여정부 땐 36%에서 35%로 인하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부자를 위한 정권’이었는가.

국회의원들이 감세에 대해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때그때’ 정략적으로 움직인다. 한 정치인의 행태를 보자. 그는 참여정부 시절엔 집권여당, 지금은 야당 의원이다.

# 2010년 11월 3일 국회 본회의장. 야권 A의원이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연방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감세정책은 대표적 반(反)서민정책이다. 감세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하는데, 투자와 일자리가 늘지 않는 불확실한 정책이다. 또 부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간다.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A의원은 감세정책의 폐해를 담은 영상자료까지 손수 공개했다. 여권의 부자 감세에 대한 질타였다. 이런 말도 했다. “감세정책은 당장 철회해야 한다.” A의원에게 감세정책은 정부 곳간과 민생을 축내는 주범이다.

#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소득세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찬반투표가 열렸다. 법률안의 내용은 이랬다. “민간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4단계 과표구간의 소득세율을 1%포인트 낮추겠다.” 골자는 감세였다.
이 개정안은 쉽게 통과됐다. 투표한 의원 236명 중 17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자 중엔 A의원도 있었다. 그의 철학대로라면 무조건 ‘반대표’를 던졌어야 옳다. 이번 감세 철회 논쟁이 정략에 지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패거리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의 철회 시도는 정략적이지만 깊이가 얕다. 부자 감세는 철회해도 세수 증대 효과는 크지 않다. 언급했듯 세수는 당장 늘겠지만 규모가 크지 않고 장기적 효과도 없다. 좀 더 현명한 정치인이 많았다면 최고세율 인하를 유지했을 거다. 감세를 유지하면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법인세 인하 효과를 보자.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율을 3%포인트 내리면 장기투자액이 7조5400억원 증가하고, 10조원에 달하는 생산이 유발된다고 분석했다.

또 GDP는 최대 0.59% 늘고, 11만39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거라고 내다봤다. 조세연구원은 감세의 이익이 소비자(17%), 근로자(8.5%), 주주(15%), 법인(59.5%)으로 분산될 것으로 진단했다. 감세가 투자·소비 확대→경제성장→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강원대 구정모(경제학) 교수는 “법인세 인하로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면 대주주는 물론 근로자,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세로 세수도 증가한다. 세율이 낮아져도 경제가 성장해 (개인·법인의) 소득이 많아지면 세수 역시 커진다는 말이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경제특보는 “세율을 올린다고 세입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뒤집으면 세율을 내린다고 세입이 감소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실례로 2009년 법인세 세율은 인하됐지만 세수는 도리어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2011년 법인세 세수가 올해보다 14% 늘어난 4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활성화 덕에 법인이 내는 세금이 많아졌다는 소리다.

물론 감세 효과를 둘러싸곤 이견이 많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낮춰도 소비가 진작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CJ경영연구소 김정호 상무는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을 고려하면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하해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사치성 고가 제품 및 서비스는 확대될지 몰라도 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효과는 미약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하가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기업이 법인세 인하로 남긴 돈을 투자하지 않고 쟁여 놓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세계 각국이 감세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게 중요하다. 영국은 2008년 28%로 낮춘 법인세를 향후 4년간 24%로 더 인하할 계획이다. 독일은 2009~2010년 500억 유로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는데 이 중 15%는 소득세 감세용으로 쓰인다. 중국은 2008년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8%포인트 낮췄다. 우리만 역주행할 필요는 없다. 구정모 교수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는 경쟁국 수준을 고려해 계속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감세 철회나 증세는 독(毒)이라는 얘기다.

추진한 일본 경제학자의 한탄
섣부른 증세책으로 큰코다친 나라도 있다. 일본이다. 1990년대 일본 정부 자문위원회를 이끌던 경제학자 히로시 가토는 부동산·주식 버블로 붕괴한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소비세를 3%에서 5%로 올렸다. 이참에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패착이었다. 경제회복 속도를 더디게 만들더니 급기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는 이렇게 후회했다. “우리의 죄가 많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배우길 바란다.”

일부 여야 정치인은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의 철회를 주장하면서 재정건전성과 복지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은 소규모 감세 철회를 통해 확보하기 어렵다. 감세를 통해 경제 규모를 키워 세수를 늘리는 게 능사다. 이게 어려우면 적극적으로 증세정책을 쓰든지 국가채무를 늘려야 한다. 더불어 재정 효율화를 모색해야 한다.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경제연구본부장은 “세금은 적게 걷으면서도 정부 지출은 줄여가는 방법을 택해야 재정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지출 억제를 통해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정수(행정학) 교수는 “부자 감세의 철회 여부를 두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건전하고 효율적인 재정운용 전략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복지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감세를 철회하기보단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게 먼저다. 서강대 곽태원(경제학) 명예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급하게 복지제도를 확충하고 예산을 확대했다간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견실한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걸 우선해야 한다.” 인천대 옥동석(경제학) 교수는 “복지는 가능한 한 민간의 자발적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면 목적세 신설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이는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자 감세 철회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이다. 그의 말은 이랬다. “고소득층과 대기업 감세를 갖고 우리가 부자 감세라는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 부자 감세 철회에 정략이 깔려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밝혔다. “감세 문제는 정치 문제다. 정치 문외한이 경제적 관점으로 보니까 꼬인다.” 하지만 반론이 더 많다. 한국외국어대 최광(경제학) 교수는 “세금을 정치적 논란으로 풀어가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인이 세금의 내부 콘텐트까지 신경 쓰니까 모든 일이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부자 감세 철회는 정략의 소산이다. 재정 건전성 확보, 복지 추구는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 부자 감세를 철회해 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겠나. 감세정책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때론 장기적이다. 그래서 정략적 판단보단 정책적 일관성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부자 감세 철회. 이 역시 정치적 포퓰리즘이다.

■ OECD 복지수준 가능할까
복지정책 목표부터 세워야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 복지수준은 어떨까. 숫자를 보면 낮은 게 맞다. OECD 국가의 평균 공공복지 지출 규모는 20%가 넘는다. 스웨덴은 29.4%, 일본은 18.6%에 달한다. 한국은 현재 8.3%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복지예산 규모가 과소평가됐다는 시각도 있다.

인천대 옥동석 교수는 “우리나라 복지예산에는 건강보험 지출, 공기업·공공기관의 사회복지적 지출, 그리고 복지적 성격을 고려한 공공요금 등 물가관리 노력 등이 제외돼 있다”며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낮은 것은 아니라고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현재 공공복지 지출 규모가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건 젊은 층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경엽 본부장은 “OECD와 비슷한 복지시스템을 가지고 있어도 재정수요는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복지예산을 서둘러 늘리는 건 금물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무척 빠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올해 11%에서 2020년에는 15.6%, 2050년 38.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예산을 굳이 늘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복지예산은 일단 도입되면 자동으로 늘어나는 속성을 지닌다. 조경엽 본부장은 “복지예산을 늘리려는 노력보다 장기적으로 전반적인 정책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