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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우“동북아 안보협력체 만들어라”
김덕중 “FTA 따른 산업구조 변화 살펴라”
87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를 속일 순 없는지 겉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얼굴과 달리 매우 원기왕성했다. 건강하다거나 정정하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할 정도였다. 요즘은 가끔 말실수를 한다지만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논리적이고 조리 있었다. 특히 기억력이 탁월했다. 남 전 총리와 이야기를 나눈 김덕중(77) 전 교육부 장관 못지않았다. 한국경제의 영원한 현역으로 뛰고 있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얘기다.
12월 14일 남덕우 전 총리와 김덕중 전 장관을 만나 한국의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분석과 조언을 들었다. 한국 사회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두 사람은 공직에선 같이 활동하지 않았지만 서강대 교수 출신의 경제계 인맥을 지칭하는 ‘서강학파’란 인연이 있다. 지금은 남 전 총리가 이사장인 한국선진화포럼에서 한 달에 한두 번 만나 다른 정·재계 원로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며 나라의 내일을 걱정하고 대안도 제시한다. 요즘은 북한의 도발로 불거진 연평도 사태와 예산 통과 문제로 난장판이 된 국회 얘기를 많이 한다. 남 전 총리는 북한 문제 해법으로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협력체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정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헌법을 바꿔 2원집정제로 가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인터넷으로 현안을 많이 챙긴다는 남 전 총리는 “옛날에는 정보 독점한 사람이 전문가였지만 지금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전문가”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인 남 전 총리는 2009년 9월 『경제개발의 길목에서』란 회고록을 냈다. 현재 고등기술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장관은 2010년 10월 희수 기념으로 『개발시대의 경제학자』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회고록 제목에 ‘경제’를 강조했듯 두 사람 모두 경제학자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남 전 총리는 “경제학을 배우고, 가르치고, 써먹은 인생”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김 전 장관 역시 “(경제학) 교수 김덕중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겨울을 하와이에서 보낸다. 김 전 장관은 12월 17일 출국했다. 남 전 총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2월 22일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제21회 시장경제대상 시상식에서 공로부문상을 받고 이튿날 하와이로 떠났다.
- 건강해 보이시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남덕우 아침에 눈뜨면 누워서 관절을 좌우로 열 번씩 돌리고 장 운동을 100번가량 합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집에서 가까운 헬스 클리닉에서 스트레칭, 걷기, 근육운동을 가볍게 합니다. 그래도 병원 다니는 게 일이야, 하하하.
김덕중 나도 여기저기 예전 같진 않죠. 가볍게 운동 다니고, 가끔 골프도 치죠.
남 전 총리는 인터뷰할 때 미리 질문서를 받아 직접 답을 한다. 시간을 아끼고 실수를 줄이려는 뜻에서다. 요즘은 말이 잘 나오지 않아 꼭 그렇게 한다. 갑자기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다지만 인터뷰 동안 거침없었다. 김 전 장관은 강단과 공직의 대선배 앞이라 “(남 전 총리 말에) 조금씩 보충만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 공직에도 같이 계셨나요?
김덕중 아뇨, 한참 차이 나죠. 나는 DJ정부 때 교육부 장관을 했어요. 이사장님은 훨씬 전에 총리를 했죠. 인연이라면 서강학파랄까. 1976년부터 2년 정도 서강대를 휴직하고 동생(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도와 대우에서 일한 걸 빼곤 거의 대부분 교수로 지냈습니다. 지금은 총리께서 이사장인 한국선진화포럼에 이사로 있죠.
공직 이야기가 나오자 남 전 총리가 과거를 떠올렸다. 시간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남덕우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경제특보를 그만뒀어요. 1980년 초 당시 KDI(한국개발연구원) 김만제 원장 도움으로 잠시 KDI에서 연구하다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에 있는 친구 조이제 박사가 객원연구원으로 초청했어요. 5·18 하루 전 도쿄에 있다가 하와이에 가 연구랍시고 하고 있었어. 8월쯤인가 친구인 이승윤 당시 재무부 장관이 전화를 했어. 외환 사정이 좋지 않은데 내가 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지.
서울에 와 이승윤 장관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나자고 해서 연희동 자택으로 찾아갔어. 전 위원장은 어쩌다가 중책을 맡게 됐다면서 경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 나는 아는 대로 답하고 정치 문제에 대해 한마디만 하겠다고 했지. 과도기의 혼란을 줄이려면 민주화 계획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했어. 단,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데 단번에 가면 혼란이 있을 테니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간다고 밝히라고 말했지. 예를 들어 당시 지방자치제도가 없었는데 제주도 한번 해보고 결과가 좋으면 다른 도에서도 하는 식으로 말이지. 결국 그대로 한 셈이야. 전 위원장은 자기 비서관에게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하더군. 그날 저녁 내 집으로 허문도씨가 찾아왔어.
그러곤 나는 하와이로 돌아갔는데 일주일 후 다시 서울에서 전화가 왔어. 유학성 중앙정보부장이었어. 8월 말까지 꼭 돌아오라고 부탁하더군. 뭘 조사하려고 그러나 싶어 논문을 미처 다 쓰지 못하고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있던 서정화씨가 지프로 비행기 승강대까지 와 나를 태우고 시내로 달리는 거야.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내일 총리가 되십니다’ 하더군. 난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허허.
전두환 대통령에게 민주화 계획 발표 조언
남 전 총리는 국무총리에 오른 배경을 설명하다 정치 현안을 꺼냈다. 연평도와 국회 문제였다. 남 전 총리는 나라의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난장판으로 변한 국회의 상황을 개탄했다. 그는 “평양은 다음에 기습할 남한의 취약점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회가 싸움터가 되지 않으려면 원내 폭력을 근절하고 타협과 다수결의 원칙이 보장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회에서는 무슨 재방송하듯 때만 되면 난장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후배들 불러서 야단이라도 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덕우 야단은 무슨. 근데 정치 분야 선진화가 절실하죠. 폭력 국회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 예전에 일본이 좀 그랬다고는 하는데.
김덕중 대만 국회도 가끔 우리와 비슷한 풍경이 벌어집니다.
남덕우 동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다음 선거 때 떨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이 달라져야죠. 내가 찍어서 당선된 의원이 엉망이면 다음 선거에서 아웃시켜야 하는데 또 찍어주는 게 문제예요. 국민의 정치의식도 선진화돼야 합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다음 선거에 나오지도 못할 텐데. 대의정치가 발전하려면 국민 스스로 각성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선진화에서 가장 뒤떨어진 정치권이 큰 문제죠. 정치권에서 국회법 고친다는데 폭력을 쓴다거나 인신공격 하는 것 등은 국회에서 스스로 배제해야 합니다. 그걸 법으로 딱 만들어 실행해야죠(※정미경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국회의장, 사무총장,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요구 시 경찰을 국회에 파견해 질서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국회폭력방지법을 12월 23일 발의했다).
김덕중 말씀대로 국민이나 국회의원 모두 문제입니다. 국민의 정치 수준이 뜻밖에 낮습니다. 국회의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 없이 단체행동을 하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의원들도 거수기 노릇을 하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 같진 않아요. 언론도 문제입니다. 다른 일은 그렇게 집요하게 파고들면서도 국회 문제는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죠.
난장판 국회 해법은 결국 국민의 손에
- 난장판 국회를 풀 방법은 없을까요?
남덕우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먼저 협상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잘하죠. 그러나 결국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표결로 가야 합니다. 다수결 원칙에 따르라는 겁니다. 다수결로 결정됐으면 승복해야죠. 그걸 무시하니 난장판이 되죠. 수틀리면 몸싸움이나 하고. 타협과 다수결 원칙이 국회를 지배해야 합니다.
김덕중 타협하고 협상하는 문제의 타깃을 어디에 두느냐도 중요합니다. 재선이나 당의 이념에만 둔다면 문제죠. 나라와 국민이 타깃이라면 이견을 좁히기 쉬울 텐데 말이죠. 임무를 염두에 두고 당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공천이니 뭐니 다 연결돼 있으니….
- 다수결 원칙이 중요하긴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등 선거 때마다 어떤 이슈가 나오면 표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습니까?
남덕우 그래서 정치 발전의 열쇠를 국민이 쥐고 있다는 겁니다. 선거 때 잘 반영해야죠.
선거 이야기는 개헌 문제로 이어졌다. 개헌 문제는 정권마다 뜨거운 감자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선 세종시 문제가 개헌의 불씨였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의 전도사로 나섰다. 남 전 총리는 헌법을 바꿔 이원집정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덕우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에서 개헌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어. 1979년 1월에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될 때 검찰총장을 지낸 신직수씨가 법률담당 특별보좌관이 됐어. 뭔 법률 특보까지 두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 밀명을 받고 헌법 개정안을 만들더라고. 이원집정제를 염두에 두고 프랑스와 대만의 사례를 조사했더군. 입이 무거운 분이라 우리에겐 절대 말하지 않았지. 나중에 박 대통령이 슬쩍 얘기해줘서 알았어.
최규하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지. 이원집정제를 채택해 권력을 분산하는 게 신념이었어. 국무총리로 취임한 지 4일 후인 1980년 9월 6일 개헌심의위원회 제9차 전체회의를 주재했어. 그해 3월에 최규하 대통령이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발족했지. 8차 회의까지 경위는 알 수 없었고 10월에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보고만 받았어요. 결국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을 대통령으로 추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도 우리나라는 이원집정제가 맞다고 생각했지. 옛날부터 어떻게 하면 우리 정치를 성장 친화적이고 경제 친화적으로 만드느냐가 고민거리였어. 지금은 세종시 문제와 개헌이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9개 부처가 가는데 국무회의 할 때마다 장관이 서울에 올라와야 해. 화상전화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보안 문제는 어떻게 풀 건가?
그럴 거면 차라리 국무총리의 역할을 명확하게 해야 해. 세종시에서 국무총리 주재로 회의를 하는 식으로 말이지. 그러려면 국무총리의 역할을 바꿔야 하는데 헌법 개정이 필요하지. 현재 헌법에서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각 부 장관을 총괄한다’고 돼 있어. 대통령 명령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한다는 얘기야. 헌법을 바꿔야 해. 아울러 이원집정제로 가든지. 일상적인 국가 운영은 총리가 맡고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만 책임지는 식으로. 국무총리 역할을 재정립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이왕 손질하려면 아예 정체를 재정립하는 것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봐.
김덕중 총리 말씀은 지금까지 언론 등에서 흔히 나온 내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입니다. 대개 대권 문제와 관련돼 개헌이 부각됐잖아요? 실제로 총리를 해보셨으니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하신 겁니다.
정치 이야기가 길어지자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그래서 화두를 경제 쪽으로 돌렸다. 두 사람 모두 개발시대 한가운데서 뛰었던 주역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경제를 보면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남 전 총리는 “개발시대는 정부, 기업과 근로자, 공무원이 한 덩어리가 돼 경제발전을 위해 온갖 정열을 쏟았던 장대한 드라마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경제학자·교육자·기업가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다채로운 이력 중 특히 경제학자로서 긍지가 대단하다. 그는 “한국경제가 1970~80년대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경제학자로 작은 보탬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과 이들이 함께 뛰었던 수많은 사람 덕에 한국경제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G20 회의를 개최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회복 속도 역시 빠르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모습이다. 예컨대 2007년 환율 덕분에 잠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것을 제외하면 1995년 1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15년 만인 2010년에 겨우 다시 2만 달러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뭐가 문제일까? 남 전 총리는 달러표시 소득 수준에 연연하지 말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힘을 쏟으라고 주문했다.
남덕우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 속도는 경제성장률에서 인구증가율을 뺀 수치로 표현됩니다. 금액으로는 달러로 표시되는 게 관례입니다.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돌파한 후 오늘까지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보다 높았으니까 1인당 소득은 증가 추세에 있었지만 달러표시 1인당 소득은 환율 변동 때문에 답보 상태입니다. 환율에 좌우되는 달러표시 소득에 개의치 말고 경제성장률을 높게 유지하는 게 국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기본 조건이에요.
남 전 총리의 해법이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전체 파이가 커져도 사회 전반적으로 심각한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남덕우 파이가 커지기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지는 게 아니라 커지는 파이를 나누는 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파이가 커질수록 분배 문제를 해결하기 쉬워요. 공평한 분배가 요즘 화두인데 경제학에서는 두 가지 원리를 중요하게 봅니다. 첫째는 이득과 대가의 원리이고 둘째는 균형의 원리예요.
개헌해 2원집정제로 바꿔야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대가가 무엇이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가정에서 소득을 무시하고 돈을 너무 많이 쓰면 집안이 거덜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인기영합적으로 복지정책을 확대하면 적자 재정 탓에 결국 나라가 파산으로 몰릴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를 보세요. 복지를 외치던 유럽의 많은 나라 사정은 어떻습니까?
지금 형편으로는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최선의 복지정책인테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법은 투자와 수출을 주축으로 경제를 키우는 방법밖에 없어요. 복지정책으로 투자가 위축된다면 경제성장이 저해돼 실업자가 늘어나 오히려 서민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다만 첨단산업일수록 고용 흡수 효과가 작기 때문에 관광, 의료, 교육, 행정 부문의 고용 확대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어떤 보고서를 보니까 2010년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6% 넘게 늘었더라고. 투자는 답보 상태인데. 큰일이야. 투자가 줄어드는 건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여야지요.
경제성장과 복지는 같이 가야 해. 사회보장제도란 게 그때그때 경제성장에 발맞춰 마련됐어요. 어떤 사람은 과거에 정부가 성장만 외치고 사회복지를 돌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명백한 오류입니다. 물론 지금도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하지 않지만 말이에요.
김덕중 양극화다 뭐다 말이 많은데 지금 잘되고 있는 걸 유지하면서 아래를 끌어올리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부족해요. 잘하는 사람 끌어내려 불만세력 만들면 됩니까? 다만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을 잘 파악하고 복지 전달체계를 다시 점검할 필요는 있습니다.
-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요즘 논란인 FTA(자유무역협정) 확대는 어떻게 보십니까?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로선 최선의 선택인가요?
김덕중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입니다. 대외경제가 성장의 원동력이죠. 당연히 FTA를 확대해야 합니다. 다만 FTA 때문에 국내 농업을 비롯한 산업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죠. 당장은 농산물이 문제지만 자동차 분야도 어떤 영향을 받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사전에 이런 가능성이 있고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푸느냐를 잘 따져 준비해야 합니다. 한·미 FTA도 경제보다 안보와 동맹에 초점을 맞춰 보는데 옳지 않습니다. 총리 말씀처럼 대가와 이득 측면에서 계산기를 두드려야죠. FTA가 우리 경제에 플러스가 된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 정치는 물론 경제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로 중국이 꼽힙니다. 연평도 사태 탓에 G2로 떠오른 중국과 미묘한 관계에 놓였습니다. 중국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남덕우 연평도 사건에서 보았듯 중국은 북한을 감싸고 돌기만 하고 경제대국에 걸맞은 국제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을 괄시할 수도 없고, 동맹국인 미국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사면초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우리 안보·외교의 기본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오다가 몇 년 전부터 지금의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협의체로 발전시키라고 주장해 왔어요. 그나마 6자회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북핵 문제에서 발언권을 갖고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앞으로 통일 문제도 다자 간 협의 없이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일 겁니다.
2010년 12월 6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일한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서 서울대 주철주 교수가 동북아 안보협의체가 필요한 이유와 가능성을 설명하는 발제를 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선진화포럼에서도 이 문제를 심층 토론할 계획입니다.
11월 30일 도쿄에서 열린 도쿄서울포럼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어요. 미리 정하지 않았는데 이구동성으로 중국을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로 모아졌죠.
그런 가운데 나온 얘기가 자유진영 국가가 결속해 공동체를 만들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였죠. 예를 들어 TPP라는 게 있어요. 인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참여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협의체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하와이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전까지 한국과 일본도 이 협의체에 참여시키겠다고 공언했어요. 한국과 일본 정부도 긍정적이고요.
이런 협의체가 힘을 발휘하면 중국도 들어오지 않을 수 없겠죠. 왕따 당하기 싫다면. 협의체에 들어오면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겠어요? 미국이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니까 중국이 그 규범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난 그게 해법이라고 봐요.
김덕중 중국은 한번 정책 방향을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아요. 오래 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중국 공산당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만난 얘기를 합디다. 키신저는 저우언라이와 오랜 시간 토론했지만 결국 합의한 게 하나도 없고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만 합의했다고 하더군요. 최고 정치 지도자조차 자기 입장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동북아 안보협의체로 북한·중국 움직여야
중국 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남 전 총리는 북한 문제 역시 특정 협의체를 만들어 다자 간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덕우 독재 체제가 영속할 수 없다는 게 역사적 법칙입니다.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남한이 흡수 통일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에요. 중국은 결코 그것을 방관하지도 용납하지도 않을 겁니다.
북한 체제가 붕괴하면 이해관계가 다른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외교적 대립이 불가피합니다. 거기에 러시아와 일본까지 끼어들면 남북통일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질 겁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할 때 한국이 일대일의 양자 간 외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협력체로 발전시키면 그 틀 안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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