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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에 농락당한 약사들 '울며 겨자먹기' 불법까지

도일 남건욱 2012. 5. 11. 11:32

[기획특집] 도매자본의 침투와 약사사회(중)

도매업자들이 거대 자본을 이용해 약국시장에 침투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약국 사정과 시장의 흐름을 훤히 알고 있는 도매업자들이 목 좋은 자리를 선점해 사들이거나 임대해 약사들에게 전세 혹은 전전세를 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들이 불법을 일삼기 보다는 갖은 편법을 동원해 법망을 피해간다는 점이다.
이에 광주지부가 이런 도매자본의 약국 잠식에 칼을 빼들고 엄중 대처하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사태의 심각성과 그 외 도매자본이 약국을 상대로 부리는 횡포에 대해 알아보고 대안은 없는지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 약국자리와 도매상의 불편한 관계
<중> 도매상에 주눅 드는 개국약사들
<하> 도매자본 약국 잠식에 대한 해결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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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이전만 하더라도 약국이 이렇게 입지에 목매달 필요는 없었다. 동네 구석에 위치해 있더라도 전문성을 기반으로 동네주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만 있었다면 경영 활성화는 담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약분업은 약국 개설의 패러다임을 일순간에 바꿔버렸다. 처방전 수용은 입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약국들은 치열한 자리선점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약국 입지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왠만한 자본이 없고서야 안정적 수입을 담보하는 위치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일부 약사들은 도매상이 주인인 건물에 입주할 수 밖에 없었고, 업체가 내세우는 조건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약국의 주인은 약사였지만 거래선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고, 무리한 임대료를 맞추기 위해서는 호객행위와 무자격자 판매행위도 불사해야만 했다.

더구나 일부 약사들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생계를 위해 도매직영 약국의 면대약사 역할을 선택하기도 했다.

해당 약사들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약사직능의 추락에서 오는 후유증은 오래 갔다.

본지가 도매가 직영하는 약국의 면대약사와 도매업체가 건물주로 있는 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약사들을 만나 그들의 심정을 들어봤다.

△병원과 도매에 농락당한 경북 A지역 면대약국 "돈도 안주고 나가라더라"

현재 70세가 넘은 고령의 약사는 의약분업 직후부터 약 8년간 경북 A지역 B병원 앞에서 면대약사로 일해왔다. 면대약국의 실제 주인은 병원과 도매업체였다.

당시 이 약국은 처방규모가 하루 500~600건으로 전국 10위권에 속했고, 직원은 10명이 넘었었다. ATC기계만 4대에 달했다.

하지만 면대 당시 A약사의 역할은 없었다.

약국의 관리와 처방조제 내역은 B병원과 실시간으로 연결된 프로그램으로 낱낱이 공개돼 있었다. B병원은 친인척 관계인 C도매상으로부터 알아서 약을 들여왔다.

심지어 일반 직원이 장기처방을 조제해도, 일반의약품을 판매해도, 카운터가 고객에게 비싼 건강식품을 떠다 안겨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이후 A약사는 면대 사실이 지역 내에서 확산되자 결국 2008년경 B병원과 C도매상의 힘을 빌어 은행으로부터 약 50억원의 어음을 끊어 이 약국을 인수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과 도매자본을 빌린 역시 면대약국인 셈이었다. 역시 거래는 C도매와만 해야만 했다.

그러나 병원과 도매의 횡포는 계속됐다. 심지어 병원의 세무 기장료 수백만원을 약국에 전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주위에 경쟁 약국이 늘어나자 병원과 도매가 약국을 권리금을 받고 정리하려 했고, 이 약사는 약사 명의로 끊은 어음도 정리돼지 않은 상황에서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갈등은 계속되면서 C도매와의 거래를 줄이자 도매는 병원측과 입을 맞춰 C사의 독점품목을 처방토록 했고, A약국에는 의도적으로 공급하지 않았다. 물론 대체조제도 차단시켰다.

그리고 2년여가 넘도록 어음 50억원 중 4억 5천만원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 약사는 “약사로서 창피한 것을 안다. 하지만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병원과 그 친인척인 도매가 행사하는 횡포가 말할 수 없다. 매일매일이 스트레스다”고 토로했다.

△"우리 약만 써" 약국 떡 주무르듯

"알면서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속만 타들어갑니다. 아는 사람이 더 하다는 말이 딱 맞네요."

경기도 고양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L약사는 약국을 떡 주무르듯 하며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도매상 건물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L약사는 2년 전 지금의 약국을 개설했다. 도매상을 하고 있는 건물주 A씨는 당초 예정에도 없었던 1억 2500만원의 권리금을 약사에게 요구했다.

권리금은 대게 이전에 가게를 하던 사람에게 주는 돈이기 때문에 건물주에게 1억이 넘는 돈을 건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L약사는 건물주가 원하는 금액을 주지 않으면 다른 약국을 유치하겠다고 압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올 때 받아 나올 셈으로 일단 돈을 건넸다.

이후에도 A씨는 이 약국에 자기 약을 공급하기 위해 약국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했다. 또 3달 전에는 같은 건물 바로 옆 칸에 새로운 약국이 개설됐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약사는 건물주에게 제대로 된 항의도 하지 못한 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 L약사의 설명이다.

L약사는 "도매상 건물주들이 약사가 어쩔 수 없이 약을 쓰게끔 부당한 옵션을 걸기도 한다"며 "이렇게 중소규모의 도매를 하면서 본인들 건물을 몇 채 가지고 부당한 옵션을 제시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는 이 약사가 A씨에게 준 권리금을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권리금은 계약기간 내에 소멸되기 때문에 이를 강제해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하지만 당시 약사는 이를 명확히 권리금이라고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대차보증금 확인 판결이나 영업이익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하면 건물주에게 건넸던 권리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게 된다.

L약사는 "기본적으로 권리금 명목의 돈을 지급한 데는 물론 약국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렇게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특약이라는 대여금의 의미이기도 했다"며 "도매상들이 약사들의 목줄을 손에 쥐고 자신의 입맛대로 떡 주무르듯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약국 외에도 비슷한 사례로 피해를 겪고 있는 약국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며 "건물주가 도매상인 것처럼 특별한 상황에는 이에 맞는 제도나 규제가 생길 필요도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도매상 건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B씨는 "그나마 나는 신사적인 도매상 건물에 약국을 개설해 별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로 울며 겨자먹기를 하는 약사들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B약사는 이어 "건물주가 도매상이다 보니 어느 정도 선까지는 옵션을 달 수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는 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제안했다.

△임대료 맞추려 카운터·호객행위 불사

익명을 요구한 경기 A지역 약사 역시 도매업체 대표가 건물주로 있는 건물에 약국을 개설했다.

약 1년여 전부터 클리닉이 밀집하기 시작하며 약국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뒤늦게 들어선 탓에 도매가 선점해 놓은 요지에 위치한 건물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임대료는 주변 약국의 3배 정도라고 귀뜸했다.

결국 이 약사는 과도한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호객행위를 시작했고, 카운터를 늘렸다고 한다.

이 약사는 “우리 약국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알지만 일단 경영이 정상화 될 때까지만 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