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의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은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입신(立身)할 수가 없고,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남을 알아볼 수가 없다”고 기술되어 있다(子曰 不知命이면 無以爲君子也요,不知禮면 無以立也요, 不知言이면 無以知人也니라). 지명(知命), 지례(知禮), 지언(知言)의 삼지(三知)가 수많은 철학적 교훈 중에 동양고전의 가장 기본서인 논어에 왜 마지막 문장으로 채택되었을까. 일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삶의 지렛대로서 되새김 해보곤 한다.
첫째가 지명(知命)으로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것, 즉 본인의 소임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진정성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최고경영자라면 고객과 주주, 임직원을 위한 기업가 정신을 실현해야 하며, 스포츠인이라면 스포츠맨십을, 교육자라면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더 나은 교육을 펼칠 수 있는 교육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본연의 책무를 망각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 조작이 일어나고 사회 지도층이 각종 비리에 휩쓸리고 교육자가 선거에 몰입하는 일이 흔하다. 모두 본인의 소명의식을 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둘째는 지례(知禮)로 ‘예의를 지키고 예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과 차별화된 점은 상대적으로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 전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매스컴 상에 오르내리는 뉴스를 보면 예의지국에 걸맞지 않는 무례한 언행을 종종 접한다. 공연장에서 휴대전화를 끄지 않거나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 탓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언행을 하는 경우, 국민에 대한 예의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언(知言)은 ‘말을 적절하게 하고 들을 줄아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해석해보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과 같이, 말로써 큰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각종 언론 매체에 연일 오르내리는 정치, 경제 분야의 유명 인사나 스타 연예인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유명인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젊은이들이 연애할때나 결혼 후 평소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작은 불씨로 번져
이별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삼지(三知)는 논어의 가장 마지막 내용으로 기록되었을까? 이를 되풀이하여 음미해보았을 때, 필자는 공자의 세 가지 말씀이 어떤 상황에도 적절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는 고객과 임직원을 대할 때, 경영자로서 ‘맡은 바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예의를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적절한 언행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할것이다. 사회의 리더에게는 ‘리더로서의 국가관과 사회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가?’, ‘대중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적절한 언행을 하고 있는가?’를 끊임 없이 고민하게 할 것이다. 또한 가정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삼지(三知)를 ‘자기경영’의 근간으로 삼는다면, 개개인이 발전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 세련되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