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모르거나 또는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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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믿는 게 늘 진실은 아니다. 다수가 믿고 싶은 게 더더욱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 그리고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험난한 경제상황에서 출발하게 되었지만 이제껏 해왔던 정책보다는 훨씬 더 거대 정부를 향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되돌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생각의 위기나 지식의 위기가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오늘날 경제민주화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은 재벌 문제와 동네북처럼 변한 자유주의에 대한 사실과 진실을 탐구한 책이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온 김정호 연세대 교수가 펼치는 대중경제 지식에 대한 반론이다. 식자층이나 정치인들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중경제 상식’의 상당 부분에 문제가 있고, 이런 문제에서부터 나오는 정책이라는 것도 틀릴 수밖에 없음을 예리하게 지적한 책이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사회의 명망가라고해서 복잡한 경제 현상을 그냥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흔히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실인양 착각하고 살아가기 쉽다.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그룹 매출이 국내총생산의 40~50%를 넘어서 부의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이런 발언은 동반성장위원장을 지낸 모 교수가 2012년 5월 울산대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이런 주장은 4대 그룹이 한국 경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착각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매출과 부가가치를 직접 비교하는 치명적 실수에 해당한다. 이런 오류는 재벌 감시역을 자임하는 경제개혁연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들조차 “30대 재벌 자산의 국내총생산 비중은 2002년 53%에서 2010년 88%로 증가하는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30대 그룹의 비중은 2000년의 44.1%에서 2010년에는 35.8%로 떨어지고 있다. 김 박사는 “자산과 매출, 어떤 데이터를 보더라도 최근 들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경제력 집중의 심화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잘 모르는 채 사용하고 있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 자료를 사용하고 있다면 대중을 속이는 셈이다.
잘못된 사실에 기초한 주장과 정책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을 두고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무지하거나 혹세무민하는 정치인과 지식인 때문에 한국인은 집단최면에 빠져들고 있다.”
저자의 이런 주장에도 당분간 우리 사회가 ‘경제민주화는 정의로운 일이다’는 믿음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편을 떠나서 옳은 것은 무엇이고 틀린 것을 무엇인가를 알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세를 편승하는 일은 쉽지만 다수의 믿음을 두고 “당신들의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올바르다는 주장을 듣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가 촉발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거대 정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지지를 받고 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복지 정책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는 반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인 통화 팽창 정책은 자유주의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방법 역시 통화 팽창이나 재정 팽창이 아니라 시장 기능을 더욱 원활히 하는 것이어야 했다. 잘못된 진단에 바탕을 둔 처방은 반복적인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40년간 개방과 자립정신을 기초로 성장했다. 그러나 근래에 우리 사회는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역주행을 시작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의료와 교육과 보육이 무상으로 주어질 전망이다. 저자는 무상의 파고는 주택으로, 문화 활동으로 그리고 휴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고 대중에게 밉보인 대기업들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통해서 공기업화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 50년 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역주행 길로 들어섰다”는 저자의 전망에 나는 동의한다.
저자의 책은 복잡하거나 어려운 책이 아니다. 대체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생각하는 믿음들이 객관적인 사실(팩트)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틀린 것이 많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선 고정관념 중에서 사회적인 문제는 좀처럼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거대 정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왜곡된 사실이 잘못된 생각을 낳고,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정책을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라도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기 이전에는 배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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