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부터 미국으로 이민을 간 시카고대
교수의 자본주의에 대한 단상입니다.
정실주의의 대표주자인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글입니다.
#1.
나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근본적으로 불공정 시스템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이탈리아를 떠나 1988년 여기로 왔다.
이탈리아는 족벌주의Nepotism라는 용어를 만들고 정실주의Cronyism의
개념을 완성한 나라로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승진이 된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유는 미국이 내 조국 이탈리아보다 엄청나게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1988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어떤 목표든지 이룰 수
있다는 마치 취한 것 같은 느낌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마침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능력에 의해서 꿈의 한계가
정해지는 나라에 당도한 것이다.
#2.
당신이 정치적 이념의 스펙트럼 그 어디에 서 있든지, 당신이
보수적인 공화당원이건 혹은 진보적인 민주당원이건 혹은 그 중간의
어디에 속하든지, 실제로 실력주의와 경쟁이 죄악으로 간주되지 않는
나라에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당신을 결코 가늠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점잖게 말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는 응급실의 의사마저도 능력 대신 정치적 우호관계에
의거하여 승진한다. 젊은이들은 공부하라는 말보다 힘 있는 사람들의
가방을 나르라는 말을 듣는다. 어머니들은 딸들에게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의 팔에 안기라고 재촉한다. 그녀들은 이것이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능 선발 과정 역시 너무나 엉망이어서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1990년까지 이탈리아의 회사들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공모하여 고객을 속일 수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모하고 있으나 예전보다 덜 공개적인
뿐이다. 부자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정치적 연줄을 얻거나 정부계약을
따는 것이다.
#3.
이러한 시스템에 반대하는 유일한 시위자들은 급진적 좌파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사회주의적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다. 출생에 기초한 특권으로 가득 찬
나라에서 좌파들은 출발점의 평등을 위해 싸우는 대신 모든 선발
메커니즘들을 제거하기 위해 싸웠다.
또한 그들은 선발 메커니즘이 가지지 못한 자를 차별한다고 여겼다.
이에 따른 결과 중 하나가 대학들이 입시 전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성적에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모든
대학의 수준이 낮아졌다. 이러한 평등주의에 예기치 못한 결과는
대부분 무지한 졸업생들을 획일적으로 배출했다는 것이다.
일할 사람을 찾는 회사들은 신뢰할 만한 채용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작동하는 유일한 시스템, 즉 개인적 연고에 의존하여 고용을 했다.
#4.
그래서 나는 대신 미국의 대학에 진원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 계획조차도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다. 다니던 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교수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졸업논문의 지도교수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뛰어난
학업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지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지원을 받는 다른 급우를 지도하는 일에
그 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 후 그 교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러 갔을 때 그의 비서로부터 추천서는 그가 지도한 학생에게만
써준다는 말을 들었다.
할 수 없이 더 열심히 공부했고, 마침내 MIT에 입학했다. 별로 긍정
적이지 못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나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했다. 시카고 대학이 나를
채용 중이던 바로 그 무렵 어떤 이탈리아 교수가 나에게 이탈리아
부교수직을 위한 국가 공모에 냈던 신청서를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시카고
대학의 조교수가 된다면 이탈리아 부교수직을 두고 최소한 경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내 신청서가 폐기되는 정도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5.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내 경력 내내 따라다닐, 나에 대한
소름끼치는 보고서를 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추측하건대,
실제 이유는 내가 젊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내야 할 수수료를
지불한 이탈리아인 후보자보다 더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가 그 경쟁에 뛰어드는 걸 원치 않았고, 그래서 노골적인
위협을 했다.
이탈리아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6년 후 나는
시카고 대학에서 종신재직권을 얻었다. 이탈리아에서라면 종신재직권을
얻는 데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가족의 연줄을 이용하지
않고도 경력을 쌓을 수 있고, 선임자라고 해서 아첨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거둔 성공보다도 나는 더 많은 것을 미국에 빚지고 있다.
생명을 빚지고 있다. 이 나라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탈리아 시스템이
주는 좌절감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치적 논쟁을 꽤 멀리했다.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시스템보다 미국 시스템이 훨씬
좋아보여서, 그저 이러한 행운에 감사하는 것 말고는 그 이상의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미국보다는 문제점이 훨씬 많고 앞서
언급했던 시스템으로 아직까지 내쫒지 못한 몇몇 유능한 사람들
마저도 절뚝거리게 하는 내 조국 이탈리아의 공공의 광장에
참여함으로써 조금 더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6.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점점 이탈리아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
같았다.
2008년 금융위기에 이르러서야 나는 미국의 공공 논쟁에 무언가
기여할 것이 있다고 느꼈다. 프리드리이히 하이에크가 그의 1994년
저작 <노예로 가는 길 The Road to Serfdom>에서 “어떤 사람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거처를 옮기면서 때로는 유사한 지적 발달
단계를 두 번 지켜볼 수도 있다.“라고 썼듯이.
내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미국 금융이 이탈리아 스타일의 정실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변형되는 것이었다. 실로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시스템이 이탈리아의 것보다 더 나쁘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인
들과는 달리 미국인들은 한 명의 나쁜 놈을 지목하여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것은 우리의 돈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다. 정실주의는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공부하려는 인센티브를 없애며 취업의 기회를 위태
롭게 한다. 이것이 내 조국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잠재력을 강탈했다.
나는 이것이 미국의 자유마저 강탈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책은 한문적인 책도 아니고 최근의 경제학적 발견을 요약한 개요서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서술이고 변화를
위한 열정적 외침이다. 이 외침은 미국이 언제나 상징해왔던 행복
추구의 자유 때문에 미국을 사랑하는, 자유시장 시스템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외침이다.
#7.
다행스럽게도 미국은 스스로 개혁할 능력을 DNA속에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시민들과 달리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경쟁의 힘’에
대해 강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겠지만, 경쟁은
선(善)을 위한 엄청난 원천이다. 경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경쟁을 필요로 한다. 포퓰리즘이 민중선동이나 독재자를 의미
하는 다른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은 힘없는 자들을 보호하는
긍정적인 포퓰리스트 전통을 가지고 있다.
추후에 더 설명하겠지만, 이 포퓰리즘의 특성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다른 어떤 형태의 자본주의들보다 더 좋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위한
자본주의‘는 모순된 어법이 아니라 희망이다. 미국 포퓰리스트
전통의 최고의 것과 미국의 강한 친시장적 태도를 융합함으로써
스스로 자신들의 시스템이 퇴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이다.
-출처: 루이기 진갈레스, <사람을 위한 자본주의>,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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