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이 뒤집히다’라는 말은 앞뒤 가리지 않고 화를 낸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주로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를 표출한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을 상대로, 또는 친구들 간의 싸움에서 노골적으로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은 젊은이들 특유의 것이라는 인상 말이다.
2.
하지만 요즘은 중장년, 특히 남성들 가운데 눈이 뒤집혀 행동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통계조사 결과는 없지만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
또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이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나도 그런 현장을 볼 때가 있다. 가장 자주 목격하는 곳은 지하철역과 같은
공공장소다. 오십에서 육십 대로 보이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 지하철이
지연됐다고 역무원을 무릎 꿇게 만들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3.
이렇게 툭하면 눈이 뒤집힌다는 말을 듣는 중장년층이 이른바 단카이 세대
(団塊世代) 에 많이 몰려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쉽게 폭발하는 중장년층을 모조리 단카이 세대로 묶어버리는 일은 옳지
않다. 단카이 세대와 조금 더 늦게 태어난 세대까지 포함한, 어느 정도 폭넓은
연령층에 쉽게 분노를 표출하는 그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4.
제1차 베이비붐 세대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당사자들이 살아온
역사도 연관돼 있을 것이다. 고도 경제성장기는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대였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답이 뒤따른다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커졌고, 동시에
자존감과 권리의식도 강해졌다.
5.
의학적인 요인도 짚어보자.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단카이 세대는 넉넉하고
배부르게 먹었다.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었고 전쟁 전에 비해 부쩍 사치스러운
식생활이 이어졌다. 이런 식습관의 영향으로 당뇨병과 고지혈증 환자들이 늘었고
뇌에도 ‘생활습관병’이 발생한 것이다. 즉 고혈당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식생활에 영향을 받아 뇌 동맥이 경화되고 뇌 신경세포가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뇌 손상 상태는 뇌졸중이나 치매처럼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
단층촬영(CT) 결과에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검사로는 알 수 없어도
나이가 듦에 따라 조용히 뇌 손상이 진행될 수 있다.
6.
그러므로 감정조절 능력을 잃어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즉석에서 참기 힘든 정신적 압박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나쁜 정신적 압박을 어떻게든 좋은 정신적 압박
으로 바꾸는 방법을 익히는 편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를 때까지 참지 않을 수 있는
지름길 이다. 좋은 정신적 압박은 작업 효율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길게 보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묘약이기도 하다.
다시 반복하겠다. 나쁜 정신적 압박은 눈이 뒤집히기 직전에 켜지는 노란불이다.
노란불이 켜졌을 때 무리해서 교차점을 통과하려고 하면 교통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7.
개인이든 기업이든 눈 깜짝할 사이에 평판이 떨어질 수 있다. 성질이 급하면 자기
손해라는 말이 짧지만 대단히 무거운 말이기도 한 까닭이다. 순간의 신경질적인
행동으로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실질적인 평판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온 사람이라면 특히 더 주의해야 한다.
순간 흥분해서 잃어버리는 것들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또한 크게 신경질을
부렸을수록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 역으로 부정적인 우울함이 습격해 올 수 있다.
출처:니시다마사키(정신과 의사),[갑자기 폭발하지 않는 기술],윤재 역,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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