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NGO 때문에 멍드는 시장경제”

도일 남건욱 2006. 7. 7. 01:07
“NGO 때문에 멍드는 시장경제”
김광두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장
이익집단에 약한 정부 문제 … “노 대통령 시장경제론자인지 판단 어렵다”

1970~80년대 국가 경제성장 전략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서강학파가 다시 뭉쳤다. 올 초 청와대로부터 ‘서강학파는 끝났다’며 부관참시를 당했던 그들이다. 대부격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서강대 교수, 경제연구소 소장 등 70여 명이 모였다. 이유는 분명하다. 시장경제 기본질서가 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6월 27일 출범한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정부 규제’와 ‘NGO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일차적 연구과제로 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초대 연구소장으로 선임된 김광두 교수는 “시장경제의 대안이 없다는 것은 역사적, 논리적, 통계적 경험을 통해 증명됐는데 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대로 경제정책이 계속된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대학교 내 ‘경제연구소’ 출범인데, 여론의 주목이 좀 과다한 것 같다. ‘서강학파의 승계’라는 슬로건이 작용한 것 같은데.

“우리도 의외다. 경제가 안 좋다 보니 그런 것 아니겠나. 정부가 강조하는 ‘분배’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으로는 힘들다는 생각을 많은 분이 하고 계신 것 같다. 오히려 압축성장 시대의 성장 우선 정책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서강대가 시의적절하게 ‘시장경제연구소’를 출범시키면서 주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신(新) 서강학파의 출현으로 해석해도 되나.

“꼭 그렇게 규정할 필요는 없다. 서강학파는 60년대 일본에서 공부했던 학자가 많던 시절, 미국에서 경제를 공부하고 돌아온 서강대 교수들이 시장경제 기본이론을 체계화하고 정부 정책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학파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소득수준도 많이 달라졌다. 정치체계, 산업구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서강학파 이론을 그대로 이어받는다기보다는 ‘시장경제’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교수마다 경제관이나 이념이 다 다를 텐데, 경제학과 24명이 모두 참여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 대한 컨센서스(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경제운용의 기본틀에 문제가 있다고 공감했다는 것이다.”

올 초 청와대가 ‘서강학파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 연구소 출범의 계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복지’ 중심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 원칙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어서 연구소를 출범시킨 것이다. 시장경제로 보면 성장이 중심이고 복지는 보완이 돼야 한다. 복지가 지속 가능하려면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남미국가들을 보라. 충분히 성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원을 복지로 돌리면서 경제 전체가 안 좋아졌다. 시장경제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영국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들의 힘이 커지면서 ‘복지는 권리’라는 인식이 퍼졌고, 결국 60~7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경제성장률이 최저 수준이었다. 이후 대처 총리가 나오고 다시 시장경제체제로 가면서 성장으로 돌아섰다. 그렇지 않았던 프랑스, 독일은 계속 어려웠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보더라도 ‘성장’이 ‘복지’에 앞서는 정책이 옳다.”

그렇다면 왜 청와대 사람들은 그런 역사적 경험을 부정한다는 것인가.

“정부의 핵심 사람들이 아직도 80년대의 대한민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독재·재벌·미국에 반감을 가졌던 운동권들이 집권하면서 그 당시 상황 속에서 가졌던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않고, 시장경제에 반감이 있으니까 자꾸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려 드는 것이라고 본다.”

김대중(DJ)정부부터 정책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 ‘학현학파’와 곧잘 비교되는데.

“DJ정부, 노 정부에서 일한 경제학자들을 ‘학현학파’라고 굳이 규정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학현학파가 70~80년대 남덕우(전 국무총리), 김만제(전 경제부총리) 교수와 같은 역할을 했나. 김태동(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정우(전 청와대 정책실장)씨가 어떤 역할을 했나. 학현학파로 분류되는 학자 중에 ‘경제부총리’가 한 사람도 안 나왔다. 적극적으로 정부 정책에 참여했던 서강학파와는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을 반시장경제주의자로 보나.

“노 대통령은 어느 때는 시장경제 옹호론자 같고, 어떤 때는 반시장경제주의자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시장경제주의자인가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출범식을 통해 경기 침체의 원인이 시장경제 질서 훼손이라고 규정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정부가 복지에 근간을 두고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려 한다. 구조적으로는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너무 크다. NGO가 이 정권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무슨 정책을 하려 하다가도 NGO가 반대하면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시장경제를 제대로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서강학파가 주도한 불균형 성장 전략이 양극화의 원인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데.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개발시대 당시 우리 자원은 사람뿐이었다. 시설재, 중간재 들여다가 조립 생산에서 수출하는 게 전부였다. 공장으로 사람이 모이다 보니,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수출기업 간의 격차도 생겼다. 하지만 소국이 세계시장에 나갈 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초기 경제성장 단계에서 소위 선택과 집중을 하는 불균형 성장 전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한 명이라도 집중해 대학을 보내느냐, 다섯 자녀를 다 초등학교만 보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양극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80년대 초와 지금의 지니계수가 거의 비슷하다.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는 것은 틀린 얘기다. 양극화라는 것 자체가 정치적 구호일 뿐이지만, 양극화에서 심각한 ‘부의 분배’ 문제는 오히려 현 정부에서 더 나빠졌다. 난센스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고 하지만,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안정 등 몹시 나쁜 성적표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4년간 전반적으로 세계 경제가 호황기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더 높은 경제성장률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물가가 안정적인 것은 중국산 제품의 영향이 크다. 세계적으로 저물가 시대다. 심각한 것은 미래투자가 현저하게 낮다는 것이다. 또 고용문제도 임시직이 많은 등 취업의 질로 보면 매우 좋지 않다.”

현 정부를 평가한다면.

“작지만 강한 정부가 있고, 크지만 약한 정부가 있다. 현 정부는 후자에 가깝다. 몸집은 키워가면서도 이익집단에는 아주 약한 정부다. 또 시장에는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작은 정부를 추진하는 세계 질서에 벗어나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작동하려면 침묵하는 다수가 일어나야 한다. 아주 잘 조직된 소수의 이익집단이 시장경제의 작동을 막고 있다. 지금식으로 시장경제 기본 질서가 훼손된다면 경제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투자나 소비 뭐 하나 잘 되는 게 있나. 기업을 존경해줘야지 투자를 한다. 기업인이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신이 나야지 일하는 것인데, 기업인들 잡아 가두고 ‘왜 너만 혼자 잘났느냐’는 식으로 정부가 기업을 대해서는 안 된다.”

서강대 시장경제연구소는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시장경제가 훼손되는 것에 대해 교육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현 경제와 정부 정책에 관한 대안을 제시하고, 리포트만 내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 co. kr [845호] 2006.07.0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