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칼럼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혼외정사 下

도일 남건욱 2006. 7. 12. 16:39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혼외정사 下
1997년 02월 01일 | 글 | 이인식/과학평론가ㆍ |
 
일종의 생명보험?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혼외정사에 더 적극적이라고 보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인류학자인 도널드 시몬스는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많은 자손을 남기고 싶어한다. 이스마일황제의 경우처럼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많은 자식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남자들은 성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남자들은 자연선택되어 그들의 후손에게 항상 새로운 여자를 유혹하는 유전적 자질을 물려주게 되었다. 오늘날의 남자들이 그들의 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들과 입장이 다르다. 배란기 이외의 기간에는 정부와 아무리 잠자리를 자주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설령 임신을 하더라도 또다시 임신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여자들은 새로운 상대를 물색함에 있어 남자들보다 생물학적으로 동기가 덜 부여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여자들은 출산 후에 아이를 돌보아줄 남자를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만일 여자가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다면 질투심 많은 배우자가 집을 나가버릴 가능성이 높다. 또 혼외정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면 그만큼 아이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진다. 이러한 여자들은 결국 자연도태되었으며 배우자에게 성적으로 충실한 여자들만이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날 여자들이 그들의 딸인 것이다.

시몬스의 이론을 요약하면, 남자는 천성적으로 여자보다 성적 다양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진화되었다. 요컨대 남자들은 타고난 난봉꾼들이다.

시몬스의 주장에는 허점이 없지 않다. 우선 혼외정사에 참여한 모든 여자가 남자보다 소극적이었을 리 만무하다. 시몬스는 유부녀가 혼외정사에 빠질 때 봉착하는 불이익만을 감안했다. 그러나 간통이 먼 옛날 인류의 암컷에게 생물학적으로 적합했을 이유가 적어도 세가지는 있다. 첫째 유부녀가 남편 몰래 혼자 돌아다니면 추파를 던지는 뭇사내들로부터 의식주에 관련된 많은 도움을 받게 마련이다. 혼외정사를 통해 매춘부처럼 생계에 보탬이 되는 재화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둘째 간통은 일종의 생명보험처럼 이용되었다. 남편이 사망하거나 가출했을 때 정부를 곧장 아버지의 자리에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째 남편이 시력이 나쁜 사냥꾼이거나 무능력한 가장일 때 혼외정사를 통해 유전적으로 우수한 남자의 씨를 잉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간통은 여유있는 생활, 남편 후보생, 좋은 유전자의 자식을 보장해주었으므로 여자의 조상들은 은밀히 혼외정사에 탐닉했다. 이들의 피를 물려받은 여자들은 오늘날 간통의 기회를 사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득히 먼 옛날 인류의 암컷이 화냥질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는 여성의 오르가슴이 제시된다. 남자는 사정과 동시에 절정감을 느끼면서 음경이 위축된다. 음경이 다시 발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자는 한 번의 성교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연속적인 오르가슴은 일부일처의 결속보다는 난잡한 성관계를 고무하기 위해 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인류학자인 사라 홀디는 시몬스와는 달리 여자가 혼외정사에 결코 피동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유인원과 원숭이의 암컷은 번식과 관련이 없는 교미를 일삼는다. 예컨대 침팬지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아들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수컷들과 교접한다. 홀디는 침팬지가 번식과 무관한 성행위에 열중하는 이유를 두가지로 보았다. 첫째 앞으로 태어날 새끼를 살해할지 모르는 수컷들과 우호적으로 지낼 필요가 있었다. 둘째 가능한 한 많은 수컷들이 암컷의 아이를 자신들의 새끼로 여기도록 속이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암컷들은 유아살해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난교를 일삼은 것이다. 암컷이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배란이 되지 않아서 수태가 불가능하므로 수컷들은 자신의 새끼를 갖지 않은 암컷의 어린애를 보면 곧잘 죽였다. 홀디에 따르면 인류의 암컷 역시 침팬지 암컷처럼 유아살해로부터 자식을 보호함과 아울러 자신의 새끼로 착각한 많은 수컷들로부터 양육에 필요한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수컷들과 난교를 했다.

그러나 일부일처제가 자리잡게 되면서부터 공개된 난교를 일삼던 암컷들은 은밀한 성교로 방향을 바꾸었다. 암컷들에 의해 창안된 혼외정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짝짓기가 비롯된 것이다. 홀디의 이론을 요약하면, 여자 역시 남자 못지 않게 성적으로 다양한 변화에 관심이 많도록 진화되었다.


혼외정사와 나이의 함수관계

혼외정사는 남녀 공히 나이와 뚜렷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부스가 펴낸 ‘욕망의 진화’(1994)에 따르면, 남편들의 혼외정사는 나이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반면에 아내들의 바람기는 생식능력의 영향을 받는다. 남자에게 있어 혼외정사는 평생을 통해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혼외정사는 16-35살의 사내들에게 성욕 배출수단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36-40살은 26%, 41-45살은 30%, 46-50살은 35%로 꾸준히 증가하여 말년에 이르러서야 조금 줄어드는 추세를 보일 따름이다. 혼외정사의 비율이 상승하는 이유는 동일한 배우자와의 반복적인 성관계가 권태롭고 늙어가는 아내의 성적 매력이 소멸되기 때문인 것 같다.

한편 여자들의 혼외정사는 생식적 가치가 가장 큰 시기인 16-20살에 6%, 21-25살에 9%에 머물지만 생식능력이 차츰 저하됨에 따라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26-30살에 14%로 증가하고 31-40살에는 17%로서 최고치를 기록한다. 생식기능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혼외정사가 절정을 이루는 까닭은 이 무렵의 여자들이 남편의 감시를 덜 받아 모험을 감행하는데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생식능력을 상실한 폐경 이후에는 51-55살은 6%, 56-60살은 4%로 떨어진다.

요컨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지속적으로 결혼생활 밖에서 성관계를 추구한다. 부스에 따르면, 미국 남자들은 평생동안 평균 18명의 성관계 상대를 원하는데 비해 여자들은 4-5명 정도를 희망한다. 혼외정사의 상대를 갈아치우는 빈도에서 남녀간에 현격한 편차를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도 남자들은 단 몇 시간 손해보는 것으로 불륜의 이부자리를 털고 나올 수 있지만, 그 결과로 여자가 임신을 하면 대가를 오랫동안 톡톡히 치루어야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유부남들은 혼외정사를 단순한 육체관계로 치부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유부녀들은 성욕 해소보다는 애정관계를 염두에 두게 마련이다.


목숨까지 요구하는 생식전략

정조대
혼외정사는 남녀 모두에게 재앙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정조 의무를 위배한 유부녀는 부정이 들통나는 즉시 십중팔구 이혼을 당한다. 엽색행각을 벌이는 남자는 성병에 걸리거나 질투심에 눈먼 여자의 남편에 의해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 질투심은 바람기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진화된 일종의 심리적 전략이다. 질투의 감정은 아내의 정부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배우자를 감시하는 행동을 유발시킨다. 모든 문화에 걸쳐 오쟁이진 남편들의 성적 질투심은 살인사건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또한 배우자의 외도를 막으려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만일 아내가 외간 남자와 통정하고 있다면 자신이 부양하는 아이가 반드시 자신의 자식이라는 보장이 없으므로 남자들은 온갖 방법으로 여자들의 성적 자유를 제한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조대가 여자를 천성적으로 음탕한 존재라고 확신한 남편들에게 신이 내린 선물로 생각되었다. 1930년대까지 사용된 정조대는 성교와 수음은 물론이고 강간을 방지하기 위해 여자의 가랑이 사이를 가로막은 금속틀인데 그 열쇠는 남편이 휴대했다. 회교사회에서 여자에게 베일을 씌우는 습관은 외간남자와의 눈맞춤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은 여자들이 오르가슴을 즐기지 못하도록 음핵을 제거하거나, 음경의 삽입이 불가능하도록 외음부를 꿰매어 닫아버렸다. 음핵절제와 음순봉합은 남성의 성적 질투심이 빚어낸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1993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로빈 베이커 교수는 국제항구인 리버풀을 대상으로 혼외정사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10%가량의 어린애가 친부가 아닌 사내에 의해 태어났음을 밝혀냈다. 열명의 남편 중 하나는 남의 자식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핏줄이라고 속고 있는 셈이다. 같은 항도인 함부르크나 싱가포르에서 똑같은 조사를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아무튼 일부일처제가 인류에게 허용된 유일한 결혼제도로 보편화되는 한, 남녀 모두의 성적 동기에 의해 혼외정사는 제2의 생식전략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