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독자편지] 중국인이 본 월드컵

도일 남건욱 2006. 7. 15. 04:24
[독자편지] 중국인이 본 월드컵

나는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축구에 관한 한 ‘공한증(恐韓症)’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다. 전 세계가 ‘월드컵 축제’에 몸살을 앓았던 지난 한 달, 한국민의 길거리응원과 월드컵 언론보도를 보면서 놀라고 느낀 게 참 많았다. 한국은 애석하게도 16강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언론을 보니 ‘17강’이라는 표현이 있어 재미있었다.

서울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붉은색 물결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붉은색 계통의 셔츠를 입고 일사불란하게 응원할 수 있을까, 그 동인(動因)이 너무 궁금했다. 붉은색은 중국의 고유색깔로 인식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4년 전 ‘붉은 악마’의 출현 이래 한국은 더 이상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아닌 ‘홍의민족’(紅衣民族)이 된 듯하다.

또 거리응원단이 전국 도처에서 100만 명을 웃돌았다던데, 그 응원 모습은 마치 한곳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받은 듯 정연하다는 데 놀랐다. 꼭짓점 댄스나 엇박자나 구호가 한결같았다. 이 역동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결코 시켜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로서는 생각지 못할 일이다. 상업적인 이유에서 그랬겠지만 편의점까지 대형 PDP 등을 갖춰 손님들을 끌고, 공공기관은 지하철을 연장운행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술집 주인들의 인심도 후했다. 대형 인파가 휩쓸고 간 길거리 쓰레기를 밤새 치우는 자원봉사단과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스위스전의 안타까운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 언론에서 축구대표단을 비난하는 대신, 한결같이 격려해주는 관용의 정신도 무엇보다 부러웠다. ‘국가적인 대사’로 생각한 16강 진출이 좌절된 허탈감을 딛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4년 뒤’를 기약하자는 다짐이 부러웠다. 월드컵 동안 한반도는 뜨거운 열기로 들끓었지만, 나로서는 이런 몇 가지 광경을 보면서 ‘이 나라 땅덩어리는 우리보다 작지만, 한번 한다 하면 기어코 하고 마는, 폭발력과 단결력, 열정이 정말 대단한 민족이구나’ 하고 느꼈다. ‘이것이 바로 10년도 안 돼 세계 IT강국이 되고 10위권 경제대국이 되는 저력’이라는 것을 이번에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개방체제로 들어서 성장일변도로 치달리는 ‘대국’인 중국도 한국인의 이런 특질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주메이 朱枚
·성균관대 동아시아학 석사과정
입력 : 2006.07.12 23:12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