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

[한국축구 2010 프로젝트] (3)어려서부터 '승리기계' 전락…실수하면서 기량 쌓게 해야

도일 남건욱 2006. 7. 15. 14:36
[한국축구 2010 프로젝트] (3)어려서부터 '승리기계' 전락…실수하면서 기량 쌓게 해야
운동장 수십바퀴 기합·잦은 합숙
커서도 자제하는 법 못배워 도태
김동석기자 ds-kim@chosun.com
김소희 인턴기자 서울여대

입력 : 2006.07.13 08:45 09'

▲ 어려서부터 축구를 즐겨야 기량이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사진은 유소년클럽 '리틀 FC서울'의 어린이들.
한국축구는 2006 월드컵을 통해 ‘체력과 조직력’으로 세계에 도전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배웠다. 개인 기량의 향상이 절실하다는 점도 알게 됐다. 하지만 개인 기량이 꽃피려면 지금처럼 승리만을 위한 축구, 철저하게 통제된 학원축구만으로는 어렵다. 클럽 시스템을 도입해 유소년 때부터 축구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기량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수는 어린 선수들의 특권

SBS 해설위원인 민병직씨가 털어놓은 독일 지도자 연수기간의 경험담 하나. 그는 독일 쾰른 지역 유소년팀 감독으로 있던 2003년, 지역 토너먼트 대회 도중 경기장에서 큰 실책을 저지른 골키퍼를 교체해 승리를 거뒀다.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튿날 감독과 코치, 트레이너 총괄 매니저들이 모인 평가 토론회에서 그는 “당신은 트레이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심한 질책을 받았다. “어려운 경기를 이겼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하자 독일인들은 말했다. “당신은 청소년에게서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어린 선수들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큰 선수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청소년기를 거치겠는가.” 그는 여기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한국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고교 대회는 선수와 감독, 학부모가 합심해 벌이는 전투장이다. 여기에는 실수를 위해 남은 공간이 없다. 축구는 즐기는 것이며 실수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라는 원론적 이야기는 낄 자리가 없는 것이다.

훈련은 괴로워

축구명문인 A대학 3학년 선수의 말을 들어보자. “초등학교 시절엔 경기에 지고 나면 맞는 것이 두렵고 기합받는 것이 두려웠다. 중·고교 때는 가둬 놓고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 자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대학이나 실업팀 가서 망가지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지방 A프로구단 2군에서 뛰고 있는 B선수의 말이다. “중·고교 때 다른 학교와의 경기에서 지면 한 골당 5바퀴씩 운동장을 돌았어요. 졌으니 뛰어라 하는 얘기 너무 듣기 싫었죠.” 이 선수는 “즐겁고 창의적인 축구를 하면 자연스레 골로 연결이 된다”면서 “하지만 압박감 때문에 창조적인 경기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유소년 훈련도 최근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전근대적인 훈련이 이어진다. 많은 청소년 선수들에게 축구는 즐거운 것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것이다.

해답은 역시 클럽 시스템

한국처럼 축구가 대학입시와 직결되는 풍토에서는 축구를 즐기며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공부와 축구를 병행할 수 있는 클럽 시스템의 도입이 계속 거론돼 왔다. 그러나 현재 프로축구 14개 구단 중 유소년 클럽을 3단계(12세, 15세, 18세) 연령별로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구단은 울산 전남 포항 등 3곳 정도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규정상 프로구단들이 모두 연령별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규준 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훈고 감독)은 “입시가 전제가 된 현재의 학원축구는 오직 이기는 경기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축구를 즐길 수 있는 클럽 시스템을 축구협회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