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세상이 바뀔 줄 누가 알았나.”
“우리 때는 노후에 대한 준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참 불행한 일이지.”
“우리야 부모 모시며 살고 애들 키웠으니까, 또 그 애들이 다시 모시고 살고 그런 줄 알았지…. 이렇게 세상이 바뀔 줄 누가 알았나?”
노후생활이 이젠 사회문제로은퇴 후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태반이 이런 얘기를 한다.
행복하게 은퇴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살기 위해서는 객관적 수치가 필요하다. 5년 전만 해도 노후 문제는, ‘실버산업이 주목받을 것’이란 정도의 기사거리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노후에 대한 정보나 기사 빈도 수는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할 정도다. 그래도 새삼 놀라는 이가 없을 정도로 노후는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실 현장에서 각 가정의 재무상담, 재무설계를 해주고 있는 나는 이 같은 변화를 생생하게 맨 먼저 느끼는 사람 중 하나다. 보통 ‘한 해 한 해가 다르다’고 성장의 빠름을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하루 다르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바뀌고 있다’는 말로 현장의 체감온도를 전하고 싶다.
당신의 은퇴 견적은 얼마입니까?’라는 광고가 세인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행복하게 은퇴하기 위한 주관적인 행복의 수치가 아닌 객관적 행복의 수치를 ‘은퇴 견적’으로 표현한 광고다.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이코노미스트 독자들의 은퇴 견적은 과연 얼마일까?
이 은퇴 견적은 퇴직금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경제활동을 끝내고 노후생활을 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경비를 말한다. 예를 들어 60세에 은퇴해 25년을 더 살고 매달 200만원의 생활비가 든다고 하면, 은퇴 시점(경제활동 마감 시점)에서 준비해야 하는 필요자금을 말한다.
많은 이가 노후생활과 준비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막연히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친다는 점이다. 이런 이가 대부분이다. “노후 준비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어느 노인의 말은 나중에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 “어떻게 준비를 하라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고 말이다.
“완주할 수 있을 거야.” 종종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표현을 우리는 듣기도 한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바라보고, 결국은 42.195km라는 종착점에 도달하는 것이 승부의 관건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마라톤을 뛴다고 가정해 보자. 뛰기 전에 점검해야 할 것이 많다. 마라톤에는 42.195km를 완주하는 풀코스가 있고, 20km를 뛰는 하프코스, 그리고 10km, 5km 코스가 있다. 태어나 처음 마라톤에 참여하는 사람이 풀코스를 뛰겠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할 것이다. ‘전에 뛰어본 적은?’‘평소에 운동은 하나요?’‘마라톤이 몇 km를 뛰는 건지 알고는 있나요?’
은퇴 견적을 먼저 계산하라은퇴 준비도 똑같다. 은퇴 후 노후생활이라는 인생의 종착역을 행복하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막연히 ‘완주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체력을 기르고, 5km를 먼저 완주하고, 10km에 도전하고, 차근차근 그 거리를 늘려가야 한다. 이게 합리적이다.
은퇴 준비든, 노후 설계든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 그리고 우리 가정의 상황을 먼저 점검하는 게 순서다. 막연히 퇴직금이 얼마이고, 현재 소득이 이 정도 되니까, 또 집값도 이 정도 되니까 된다는 식으로만 생각하고, 은퇴와 노후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러면 인생 완주 생각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게 좋다. 그 정도 준비만으로는 완주 자체가 쉽지 않기에 하는 얘기다.
30, 40대에 이렇게 돈 모아라.인생 완주를 준비한다면 현 상황을 당연히 점검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정상인의 혈압수치와 체온과 비교해 내가 열이 높다거나 혈압이 높다거나 같은 식의 사전 점검을 마라톤 뛰기 전에 미리 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행복하게 은퇴하거나, 행복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기준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그런 교육을 해주는 곳도 사실상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일종의 재무설계의 틀)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나의 나이(인생 주기, 생애 주기)와 자산의 축적도에 따라 ▶자산 형성기 ▶자산 축적기 ▶자산 운용기 ▶자산 보존기로 나누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먼저 30대 초반의 자산 형성기를 살펴 보자. 보통 결혼 전부터 자녀 출산까지를 자산 형성기 또는 가족 형성기로 분류한다. 자산 형성기에 사람들은 가족의 수입 기틀을 마련하고, 지출을 관리하며, 저축과 투자를 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정의 현금흐름과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인생 전반에 걸친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게 돈을 얼마나 모았느냐보다 중요하다. 그 다음 이어지는 게 자산 축적기다. 자산 형성의 틀을 바탕으로 자산이 꾸준히 축적되는 시기를 말한다. 보통 30대 중·후반과 40대가 이 시기에 속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부동산 구매, 저축, 투자 같은 방법을 통해 자산을 축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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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아직 가정의 수입이 가정의 지출을 초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때는 1, 2년의 짧은 시기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려 하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산 운용기는 40~50대에 찾아 온다. 인생 주기를 놓고 본다면 이때에 ‘경제적 정년’이 찾아온다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다. 경제적 정년은 40대 중반 이후에 가족의 필수지출(교육비 지출이 가장 크다)이 수입을 초과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퇴직이나 수입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지출규모가 소득 수준을 위협하기 시작하는 시기를 가리켜 ‘경제적 정년 시기’로 보는 게 합당하다.
아무튼 통상적으로 이때가 되면, 자녀의 대학 진학 같은 가정사가 발생하고, 이때를 전후로 소득보다 지출이 커지기 시작한다. 지출하고 남은 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지 않는다 해도, 이때가 되면 자산 축적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매월 소득의 일정 부분을 축적하는 것보다는, 이미 축적된 자산을 어떻게 잘 운용해야 하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마지막은 자산 보존기인데 50, 60대에 맞는 은퇴 시점 이후의 시기를 말한다. 이때가 되면 가정의 소득이 현격히 떨어진다. 자녀의 나이와 결혼 여부가 가정지출에 부담이 된다. 자산 보존기는 노후준비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과 퇴직금, 연금 같은 자산을 앞으로 살아가야 할 20~30년 동안 어떻게 관리하고 배분해야 할 것인가가 초점이 된다.
‘내 위치’ 먼저 파악해야 성공‘과연 당신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딱히 어느 시기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40대에 접어 들었는데 자산 축적이 이뤄지고 있지 않거나, 자산 운용이 된다 해도 딱히 부를 만한 자산이 없는 경우가 그렇다. 또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40대에 부채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도 있다. 거꾸로 이미 목돈을 운용하고 있는 30대도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이 자산시간표대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자산이 쌓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축적된 자산 없이 은퇴하면 자산 보존기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나이에 따라 확정되는 것은 자산 형성기와 자산 보존기뿐이다. 경제생활의 시작과 함께 자산 형성기를 자동적으로 맞이하기 때문이다. 또 은퇴 시점 전후로 자산 보존기를 누구나 맞이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자산 축적기와 자산 운용기는 나이와 사실상 무관하다. 나이보다는 오히려 가정의 자산 축적 정도, 현금흐름 구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40, 50대를 지나서도 자산 축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정은, 대부분 자산 형성의 틀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다. 상식이지만 축적된 자산 없이 자산 보존기로 넘어가는 건 극히 위험한 일이다. 노후에 이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자산 형성의 틀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앞으로 10배로 뛸 거라는 주식 정보보다도, 적어도 5000만원은 벌 수 있다는 부동산 물건 정보보다도 중요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먼저 자산 형성의 틀을 점검해야 한다. 깨진 독을 미리미리 수리하라는 얘기다. 이 독을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자산의 축적이 없는 상태에서, 엄청나게 길어진 노후를 맞이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