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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다

도일 남건욱 2008. 5. 19. 08:37
전사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다
로마 역사에서 배운다
산적 무리로 출발해 거대 제국 건설 … 철저한 실력주의로 과감한 도전 유발
경제학에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는 말이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하면 경제 발전이 더디고 사회 갈등도 심한 후진국에 머물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세계를 둘러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수긍할 수 있다. 풍부한 물질적 조건도 이를 활용할 정신적 요소가 부족하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역설적 현실이다.

반대로 기업가 정신은 자원이나 주변 여건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업가 정신이 투철한 개인은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안다. 일찍이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제국 역시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던 사회였다.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서 양치기와 산적 무리로 출발했던 약소민족 로마가 거대 제국이 된 것은 변방의 벤처기업이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주변 여건은 그리스, 카르타고, 이집트에 뒤졌지만 한계에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 않는 불굴의 투지, 패자부활전을 허용하는 합리성, 철저한 실력주의에 기초한 인센티브라는 소프트웨어에서 다른 민족을 앞섰기에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로마의 시작은 미미했지만 특유의 조직력에 기반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판도를 넓혀 나갔다. 이탈리아 반도 중부 산악지대의 강자였던 삼니움족과의 40년 전쟁기간(BC 326~284년)인 기원전 321년에 집정관을 포함한 전군이 항복하는 치욕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승리하고, 이후 10년에 걸쳐 남부 그리스 도시를 정복해 반도 전체로 세력을 확대했다.

다음 상대는 지중해 패권국 카르타고였다. 페니키아 민족이 세운 카르타고는 무역과 농업을 기반으로 강력한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었다.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은 1차로 22년(BC 264~242년), 2차로 16년(BC 218~202년)에 걸쳐 진행됐다.

전설의 명장 한니발을 이탈리아 본국에서 맞아 싸운 2차 전쟁에서 로마는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전쟁사 교과서의 단골메뉴인 칸나이 전투(BC 216년)에서 로마는 단 하루에 7만여 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했지만 재기했다.

비록 한니발에 대적할 명장은 없었지만, 지구전의 명수 파비우스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이 한니발을 번갈아 상대하면서 10여 년 동안 서서히 전세를 역전시켰다. 당시 로마의 지도층은 부동산을 제외한 전 재산을 헌납하고 전쟁국채를 모든 시민이 구입하는 총력체제로 대응했다.

작은 성공은 실패 없이도 가능하다. 그러나 큰 성공 뒤에는 항상 쓰라린 실패가 있게 마련이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로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에서 배울 줄 알았기에 성공했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했던 시스템

고대 세계에서 전쟁의 승패는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었다. 따라서 전쟁에 승리한 장수에게는 큰 상을 내렸지만, 전쟁에 패한 장수는 참수형이나 십자가형으로 죽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전쟁에 패한 장수를 죽이거나 처벌하지 않았고, 오히려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는 일조차 있었다.

1차 포에니 전쟁 당시인 기원전 255년이었다. 승리한 로마군이 230척의 배로 지중해를 건너는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엄청난 태풍을 만났을 때 지휘관의 판단 미숙으로 6만 명의 로마 병사가 수장되고 불과 80척만이 돌아오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다음 해에 카르타고와의 전쟁이 재개되자 로마는 의외의 인물을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한 명은 카르타고의 포로가 되었던 장군이었고, 두 명은 지중해 해난사고의 책임자였다. 그해의 전투는 지휘관 세 명의 패자부활전이 되었고 결과는 로마의 승리였다.

로마인은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세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휘관들이 잡다한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임무에 전념할 수 있었고, 실패 책임을 놓고 싸우면서 조직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아도 됐으며,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교훈을 조직의 무형자산으로 만들어 똑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로 가는 길』에서 피력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관점도 같은 맥락이다. “실패한 기업에 몸담은 경력이 있는 간부들을 의도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실패할 때는 창조성이 자극되게 마련이다. 밤낮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을 주위에 두고 싶다. 앞으로 마이크로소프트도 반드시 실패를 겪을 테지만,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빛을 발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실패를 회피하는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꽃피울 자리는 없다.

고대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처럼 로마도 신분제사회의 틀을 유지했지만 유동성이 인정되는 개방된 공동체라는 점에서 달랐다. 로마에서 신분 간 경계는 꽉 막힌 분리벽이 아니라 소통되는 삼투막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은…

1. 불가능에 도전했다
2. 실패를 용인했다
3. 개방된 공동체였다
신분에 대한 로마의 관대한 태도는 초기 왕정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6대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출신이 분명치 않았다. 가내노예의 아들로서 이름도 노예라는 뜻의 라틴어 ‘세르부스(servus)’였다.

44년간 재위하면서 출신을 둘러싼 논란을 실력으로 물리친 세르비우스는 “노예와 자유민의 차이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태어난 뒤에 만난 운명의 차이에 불과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공화정 말기의 정치지도자 카이사르는 해방노예에게 지방의회 의원이나 지방자체단체의 공무원이 되는 문호를 개방하고 본국과 속주의 행정 분야에 대거 등용했다. 제정 중기에는 해방노예의 아들이 황제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폭군 콤모두스가 살해되고 뒤이어 즉위한 페르티낙스의 아버지는 원래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이었다.

로마사 연구자인 제롬 카르코피노는 제정시대 로마 인구의 80%가량은 사실상 노예 출신이고, 대부분 신분 해방으로 자유민이 됐다고 한다. 그는 “지속적인 신분 상승은 사회 구성 요소들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꿔 로마사회에 자양분을 제공했고, 융합과 동화의 장 역시 끝없이 펼쳐져 있었기에 국가로서의 로마도 그처럼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조직은 곧 사람이고, 조직의 성공은 결국 사람의 성공이다.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력에 따른 보상구조가 핵심이다. 경영에 활력을 더해주는 인센티브는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한 자극이다.

인센티브를 잘 활용하면 상황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로마는 귀족부터 노예까지 공동체가 갖고 있는 자질을 철저한 실력주의 원칙으로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사회구조를 지향했기 때문에 번영할 수 있었다.

모험정신과 조직력으로 똘똘 뭉쳐

개방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투지와 실패를 두려워 않는 과단성으로 무장한 로마의 핵심가치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했던 베네치아로 이어져 내려온다.

5세기께 훈족의 침략 때문에 석호로 쫓겨난 베네치아의 초라한 시작은 기원전 7세기 양치기와 산적들의 무리로 미미하게 출발한 로마와 마찬가지고, 모험정신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패권국으로 성장한 점도 동일하다.

중세의 종말을 가져온 르네상스가 고대 문명과의 재회에서 출발했던 것처럼 서구 근대 자본주의의 기업가 정신도 로마의 법과 종교를 매개체로 한 로마인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다.

‘인간이란 쉬운 싸움에서 승리하기보다는 어려운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는 산악인 딕 베스의 경구처럼,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정신력이 강해지고 혁신의 계기를 잡는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도 물질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면 정신은 충분조건이라는 점을 로마제국은 웅변하고 있다.

2008년 한국 사회는 60년대와는 판이하다. 이미 기업은 거대해졌고, 전문가도 충분하다. 60년대에 비하면 여러 면에서 인적, 물적 자원이 풍족하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한국 기업의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자원의 저주’는 기업에도 있을 수 있다.